조 그린
1. 개요
조 그린은 1946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미국의 전 미식축구 선수이다. 노스 텍사스 대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69년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입단하여 1981년 은퇴할 때까지 수비 태클로 활약했다. 스틸러스의 '스틸 커튼' 수비진의 핵심 선수로 4번의 슈퍼볼 우승을 이끌었으며, NFL 최우수 수비 선수, 프로볼 선정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은퇴 후에는 코치와 선수 인사 담당 특별 보좌관으로 활동했으며, 1979년 코카콜라 광고 "Hey Kid, Catch!"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NFL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프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 대학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의 등번호 75번은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포지션 | 디펜시브 태클 |
|---|---|
| 등번호 | 75 |
| 출생지 | 미국, 텍사스주, 템플 |
| 고등학교 | 던바 (템플, 텍사스) |
| 드래프트 연도 | 1969 |
| 드래프트 순위 | 1라운드, 4순위 |
| 대학 | 노스 텍사스 주립 대학 (1966–1968) |
| 팀 | 피츠버그 스틸러스 () |
|---|
| 팀 | 피츠버그 스틸러스 () |
|---|---|
| 직책 | 디펜시브 라인 코치 |
| 팀 | 마이애미 돌핀스 (1991–) |
| 직책 | 디펜시브 라인 코치 |
| 팀 | 애리조나 카디널스 () |
| 직책 | 어시스턴트 코치 |
| 슈퍼볼 우승 | 4회 (IX, X, XIII, XIV) |
|---|---|
| NFL 올해의 수비 선수 | 2회 (1972년, 1974년) |
| NFL 올해의 수비 신인 선수 | 1969 |
| 월터 페이턴 올해의 남자 | 1979 |
| 올-프로 퍼스트팀 | 5회 (1972–1974, 1977, 1979) |
| 올-프로 세컨드팀 | 3회 (1971, 1975, 1976) |
| 프로 볼 | 10회 (1969–1976, 1978, 1979) |
| 피츠버그 스틸러스 영구 결번 | 75 |
| 대학 풋볼 올-아메리카 | 컨센서스 (1968) |
| 노스 텍사스 민 그린 영구 결번 | 75 |
| 출전 경기 수 | 181 |
|---|---|
| 선발 출전 경기 수 | 172 |
| 펌블 리커버리 | 16 |
| 인터셉트 | 1 |
| Pro-Football-Reference | GreeJo02 |
|---|---|
| 명예의 전당 | joe-greene |
| 대학 명예의 전당 | 1858 |
-
템플 (텍사스주) 출신 -
립 톤
1956년 영화 《아기 인형》으로 데뷔한 미국의 배우 립 톤은 《맨 인 블랙》 시리즈의 'Z' 요원, 드라마 《래리 샌더스 쇼》의 '아티'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로드웨이와 텔레비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1996년 프라임타임 에미상 코미디 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1946년 출생 -
엘리자베스 슬레이든
엘리자베스 슬레이든은 잉글랜드 배우로, BBC SF 드라마 《닥터 후》에서 사라 제인 스미스 역을 맡아 세 번째, 네 번째 닥터의 컴패니언으로 출연했으며, 이후 스핀오프 드라마 《사라 제인 어드벤처》에서 주연을 맡았다. -
1946년 출생 -
변인선
변인선은 평양 출신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인으로, 인민군 상장까지 진급하여 제7군단 및 제4군단 사령관, 당 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나, 2014년 예편 후 목함 지뢰 도발을 일으켜 2015년 총살형을 당했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대학 시절
찰스 에드워드 그린은 1946년 9월 24일 텍사스주 템플에서 태어났다. 템플의 던바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미식축구를 했지만, 당시 남서부 컨퍼런스의 인종차별적인 환경으로 인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노스 텍사스 대학교(당시 노스 텍사스 주립 대학교)에서 미식축구 장학금을 받고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오더스 미첼 감독 아래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3시즌 동안 팀은 23승 15패 1무를 기록했고, 수비 태클로 39경기에 출전하여 경기당 평균 2야드 미만으로 상대팀의 러시를 막아냈다. (노스 텍사스 주립 대학교는 상대팀이 1,276번의 러시로 2,507야드를 기록하는 것을 막아냈다.) 그린은 3번의 미주리 밸리 컨퍼런스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3학년 때, 노스 텍사스 주립 대학교의 학생이자 댈러스 사업가의 딸인 아그네스 크래프트와 결혼했다. 돈이 부족했던 그들은 크래프트의 언니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노스 텍사스에서 그린의 팀 동료였고 나중에 스틸러스에서 NFL에서도 함께 뛰었던 척 비티가 신랑 들러리를 맡았다.
4학년 때 그린은 1968년 올 아메리카 팀의 수비 태클로 컨센서스 픽을 받았고,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UPI), 뉴즈페이퍼 엔터프라이즈 어소시에이션, 그리고 더 스포팅 뉴스 등에서 1군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대학 코치인 로드 러스트는 "조의 성공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그는 큰 수비 플레이를 하고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둘째, 그는 훌륭한 추격 선수가 될 수 있는 속도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프로 스카우트는 "그는 거칠고 잔인하며 사람을 치러 온다. 그는 좋은 킬러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활동적이고 적대적이다."라고 말했다.
3. 별명
"Mean Joe" Greene이라는 별명은 노스 텍사스 대학교의 운동팀 별명인 'Mean Green'에서 유래했다. 그린이 이 별명을 얻게 된 과정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가 대학교에 처음 왔을 때, 대학교의 별명은 이글스(Eagles)였다. 1966년 그린이 버시티 팀에 합류하면서 팀은 "Mean Green"이라는 별명을 채택했다.
이 별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노스 텍사스의 스포츠 정보 국장 아내인 시드니 수 그레이엄이 UTEP과의 경기 중 그린의 태클을 보고 "That's the way, Mean Greene!"이라고 외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빌 머서 전 노스 텍사스 경기 해설자는 그레이엄이 이 별명에 담았던 생각은 Mean Green 수비였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학생 구역에서 노스 텍사스 농구 선수 윌리 데이비스와 아이라 다니엘스가 열정 없는 관중들에게 불만을 품고 "Mean Green, you look so good to me"를 부르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곧 관중 전체가 따라 불렀고, 데이비스는 "그 후로 우리는 매 경기마다 이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데이비스는 이 별명이 Fouts Field에서 그 토요일 밤에 있었던 단순한 구호에서 시작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이 그린이었기 때문에 이 별명을 조와 연관 짓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린은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프로 경력 내내 이 별명이 따라다녔지만, 실제로는 이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진정한 성격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사람들이 나를 정말로 못된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선수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Joe"라는 이름은 그의 이모가 붙여준 것이다. 그린은 2014년 NFL 필름과의 인터뷰에서 이모가 그를 조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가 당시 헤비급 챔피언으로 12년간 군림하고 있던 복싱 영웅 조 루이스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린은 "그녀는 내가 조 루이스라고 불릴 만큼 튼튼하고 덩치가 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4. 프로 미식축구 경력
조 그린은 1969년 척 놀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여러 번 패배 시즌을 경험한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1969년 NFL 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지명되었다. 당시 스틸러스는 NFL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팀 중 하나였다. 놀 감독과 구단주 루니 가문은 팀 재건을 위해 수비 라인 구축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그린을 지명했다.
팬들과 언론은 이 선택에 대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경쟁심이 강했던 그린은 잦은 패배로 유명한 팀에 지명된 것에 실망했다. 그러나 놀 감독은 그린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그를 드래프트했다. 그린은 곧 리그에서 가장 지배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1969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을 1승 13패로 마쳤지만, 그린은 AP NFL 올해의 수비 신인 선수로 선정되었고, 1970년 프로볼에 초청되었다.
전 동료 앤디 러셀은 그린을 "의심할 여지 없이 70년대 NFL 최고의 선수"라고 칭찬했다. 그린과 놀 감독은 스틸러스의 부흥을 이끈 주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틸러스는 1970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 5승 9패, 1971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 6승 8패를 기록했고, 그린은 두 시즌 모두 프로볼에 초청되었다. 1972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에는 피츠버그가 11승 3패를 기록하며 첫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그린은 AP NFL 올해의 수비 선수로 선정되었다.
1972년 수비 태클 어니 홈스가 드래프트되면서, 스틸러스는 그린, 홈스, L. C. 그린우드, 드와이트 화이트로 구성된 "스틸 커튼" 수비 라인을 구축했다. 그린은 1973년 프로볼에 초청되었다.
그린은 1974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 이후 두 번째 AP NFL 올해의 수비 선수 상을 수상했다. 그는 가드와 센터 사이의 날카로운 각도로 정렬하는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여 상대 블로킹을 방해했다. 이 전술은 버팔로 빌스와의 디비전 챔피언십 경기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오클랜드 레이더스와의 AFC 챔피언십 경기에서 그린은 올-프로 센터 짐 오토와 격돌했고, 쿼터백 켄 스테이블러를 색하는 등 활약했다. 스틸러스는 슈퍼볼 IX에서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16–6으로 꺾고 첫 번째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그린은 인터셉션, 강제 펌블, 펌블 회복을 모두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린은 1975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에 신경 압박으로 인해 4경기에 결장했다. 1975년 12월, 그와 스틸 커튼 멤버들은 Time 잡지 표지에 등장했다. 스틸러스는 슈퍼볼 X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꺾고 두 번째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1976 시즌 초반 허리 부상으로 결장했던 그린은 복귀 후 팀의 9연승을 이끌었다. 1976년 스틸러스 수비진은 경기당 평균 10점 미만을 허용하며 9연승 동안 5번의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다.
1977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에 그린은 스틸러스 수비의 주장이 되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효율성이 감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78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에 복귀하여 팀 내 라인맨 중 태클 선두를 달렸고, 4개의 색과 5개의 펌블 회복을 기록했다. 스틸러스는 슈퍼볼 XIII에서 카우보이스를 35–31로 꺾고 세 번째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1979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에 그린은 프로 풋볼 작가 협회와 프로 풋볼 위클리에서 1군 올-프로로 선정되었으며, 마지막 프로볼에 초청되었다. 그는 필드 밖에서의 공헌을 인정받아 NFL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휴스턴 오일러스와의 AFC 챔피언십 경기에서 스틸러스는 얼 캠벨을 15 러싱 야드로 묶었다. 이후 피츠버그는 슈퍼볼 XIV에서 로스앤젤레스 램스를 꺾고 네 번째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그린은 네 번째 슈퍼볼 링을 얻었고, "one for the thumb"(다섯 번째 챔피언십 우승을 암시)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그는 1981년 피츠버그 스틸러스 시즌 이후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통산 181경기에 출전하여 77.5개의 색과 16개의 펌블 회복을 기록했다.
4.1. 경기 스타일 및 태도
조 그린은 맹렬하고 위협적인 선수로 묘사되었으며, 격렬한 플레이로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1979년 휴스턴 오일러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오일러스의 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그린은 휴스턴 쿼터백 댄 파스토리니에게 "엔드존으로 들어오면 널 흠씬 두들겨 패주고 죽여버릴 거야!"라고 경고했다. 파스토리니는 무릎을 꿇는 것으로 응답했고, 그린은 웃으며 "네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지."라고 말했다.
스틸러스 초창기에는 통제 불능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5년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와의 경기에서 쓰러진 브라운스 라인맨 밥 맥케이를 여러 번 발로 찼고, 덴버 브롱코스의 오펜시브 가드 폴 하워드를 주먹으로 때리고 쿼터백 프랜 타튼에게 침을 뱉기도 했으며, 심판과 자주 충돌했다.
하지만, 그린은 미들 라인배커 잭 램버트와 함께 피츠버그 수비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는 1977년 수비팀 주장을 맡았으며, 그의 리더십은 와이드 리시버 린 스완과 같은 공격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5. 연기 경력
조 그린은 1979년 코카콜라 광고 "Hey Kid, Catch!"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광고는 1979년 10월 1일에 처음 방송되었고, 1980년 1월 20일 슈퍼볼 XIV에서도 방송되었다. 1980년 클리오상을 수상했으며, 역대 최고의 텔레비전 광고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광고는 "Mean Joe"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다가가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던 그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 그린은 코카콜라 광고 외에도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의 초기 영화 출연작 중 하나는 The Black Six이며, 이 영화에는 렘 바니, 윌리 라니에, 칼 엘러 등 다른 NFL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도 함께 출연했다.
| 연도 | 제목 | 역할 |
|---|---|---|
| 1975 | 레이디 코코아 | |
| 1980 | 스모키 밴디트 2 | 본인 ('Mean Joe' Greene) 역 |
| 1981 | 더 스틸러 앤 더 피츠버그 키드 | |
| 1981 | 캘리포니아 돌스 |
스모키 밴디트 2에서 그는 버트 레이놀즈가 연기한 "밴디트"를 추격하는 보안관 버포드 T. 저스티스 (재키 글리슨 분)에게 테리 브래드쇼가 "저 차를 태클하라"고 명령하자, 저스티스의 순찰차를 "태클"하여 완전히 뒤집는 역할을 맡았다.
1979년에 그린이 출연한 코카콜라 광고는 큰 화제를 모았으며, 2004년 영화 미라클에서 해당 광고가 방송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 광고는 제43회 슈퍼볼 경기 중 스틸러스의 트로이 폴라말루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6. 코치 경력 및 이후의 삶
NFL에서 은퇴한 후, 그린은 1982년에 NFL on CBS의 컬러 해설자로 활동했으며, 1987년에는 척 놀 스틸러스 감독 밑에서 보조 코치를 맡았다. 이후 16년 동안 피츠버그 스틸러스(1987–1991), 마이애미 돌핀스(1991–1995), 애리조나 카디널스(1996–2003)에서 보조 코치로 활동했다. 2004년, 스틸러스의 선수 인사 담당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에서 그는 스틸러스가 슈퍼볼 XL에서 우승하면서 다섯 번째 슈퍼볼 반지를, 슈퍼볼 XLIII에서 여섯 번째 반지를 획득했다. 그린은 루니 가문 외에 처음 6번의 챔피언십 시즌에서 슈퍼볼 반지를 받은 4명 중 한 명이다. 2013년에 스틸러스 프런트 오피스에서 은퇴했다.
2014년, 그린은 NFL 네트워크 다큐멘터리 시리즈 A Football Life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그의 삶과 경력을 기록했다. 2024년 현재, 텍사스주 플라워 마운드에 거주하고 있다. 47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세 자녀를 둔 아그네스 부인은 2015년에 사망했다. 이후 샬롯 그린과 재혼했다. 그린은 일곱 명의 손주들에게 "파파 조"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자서전 Mean Joe Greene: Built by Football을 출간했다.
2018년, 고인이 된 아내를 기리기 위해 아그네스 루실 크래프트 그린 기념 장학금을 설립했다. 이 장학금은 부모가 암과 싸운 텍사스 출신 학생들에게 매년 수여된다.
7. 유산
조 그린은 NFL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 라인맨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가 활약했던 스틸 커튼(Steel Curtain) 수비는 역대 최고의 수비 그룹 중 하나로 꼽힌다. 2013년 9월 L. C. 그린우드의 사망으로, 그린은 스틸 커튼의 마지막 생존 멤버가 되었다.
1984년, 그린은 대학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노스 텍사스 대학교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 영예를 안았다. 1987년에는 프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이 해에는 래리 손카, 렌 도슨, 짐 랭거, 돈 메이너드, 진 업쇼, 존 헨리 존슨 등이 함께 헌액되었다.
그는 NFL 1970년대 올-디케이드 팀에 선정되었고, 1994년에는 NFL 75주년 기념 올타임 팀에 선정되어 NFL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2019년에는 NFL 100주년 기념 올타임 팀에도 선정되었다. 1999년, 더 스포팅 뉴스는 그를 역대 14번째 최고의 선수로 평가했고, 2010년 NFL 네트워크의 NFL 역대 최고 선수 100인에서는 13위에 랭크되었다.
그의 등번호 75번은 노스 텍사스 대학교와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그는 어니 스타우트너와 프랑코 해리스에 이어 스틸러스에서 등번호가 정식으로 영구 결번된 세 번째 선수이다.
그의 모교인 노스 텍사스 대학교는 2018년 아포지 스타디움 밖에 그의 동상을 공개했다. 2015년에는 그의 고향인 텍사스주 템플에 Mean Joe Greene Community Football Field가 그의 이름을 기려 헌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