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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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무는 소설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진달, 양춘과 의형제를 맺고 소화산의 산적 두목으로 활동했다. 사가촌 습격 사건으로 사진과 인연을 맺고, 양산박 합류를 권유하는 노지심을 만나 사진을 구출한 뒤 양산박에 들어갔다. 양산박 108성 집결 이후 오용과 공손승을 보좌하는 부군사로 활약했으며, 방랍의 난 평정 후 벼슬을 거부하고 도술을 배우기 위해 공손승에게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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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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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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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신기군사 |
출신 | 정원 (현재의 안후이성 딩위안 현) |
소속 | 양산박 |
지위 | 참모 |
랭킹 | 37위, 72지살 중 지괴성 |
무기 | 쌍검 |
인물 정보 | |
등장 시기 | 2장 |
역할 | 산채 두령 (소화산) |
2. 생애
주무는 안후이성 딩위안현(定遠) 출신으로, 도교 사제와 같은 복장에 학의 깃털 부채를 들고 다니는, 빛나는 눈과 긴 수염을 가진 미남으로 묘사된다. 그는 군사 전략과 군대 배치에 능숙하여 "지략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진달(陳達), 양춘(楊春)과 의형제를 맺고 산시성 화현 남동쪽 소화산(少華山)에서 산적 생활을 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인근 현과 마을을 약탈했다. 108성 집결 이후 오용(吳用)과 공손승(公孫勝)을 보좌하는 부군사(副軍師)로 임명되었으며, 진형(陣形)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 여러 전투에서 양산박의 승리에 기여했다.
방랍(方臘)의 난을 평정한 후 양산박 군이 해산되자 무혁랑(武奕郞) · 도통령(都統領)에 천거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번서(樊瑞)에게 도술을 배운 뒤 공손승의 제자가 되어 도교 수행의 길을 걸었다.
2. 1. 소화산 시절
진달(陳達), 양춘(楊春)과 의형제를 맺은 뒤 소화산(少華山)의 산적 두목으로 있었다. 어느 날 진달이 사가촌(史家村)을 습격하려 하자, 사가촌에 사진(史進)이라는 뛰어난 무예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만류하였다. 하지만 진달은 듣지 않고 공격했다가 결국 사진에게 사로잡혔다. 이에 주무는 사진의 의협심을 이용해 진달을 구출할 작전을 세웠다.주무는 양춘과 함께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은 채 단둘이서 사진을 찾아가 진달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의리에 감탄한 사진은 진달을 풀어주었고, 이후 셋은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관원에게 알려지면서, 결국 관원들과 싸움이 벌어져 사가촌은 불타버렸다. 주무는 진달, 양춘과 함께 사진을 두령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사진은 이를 거부하고 방랑길에 올랐다.
그 후 방랑을 마치고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이하였고, 이후 사진에게 양산박(梁山泊)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魯智深)을 만났다. 그러나 사진은 화주(華州)의 태수(太守)에게 붙잡혀 있었고, 이에 주무는 노지심 등 양산박 호걸들과 함께 사진을 구출하였다. 그 뒤 사진, 양춘, 진달과 함께 양산박에 합류하였다.
2. 2. 양산박 합류
진달(陳達), 양춘(楊春)과 의형제를 맺은 뒤 소화산(少華山)의 산적 두목으로 있었다. 진달이 사가촌(史家村)을 습격하려 할 때, 주무는 사가촌에 있는 사진(史進)의 소문을 듣고 만류했지만, 진달은 습격했다가 사진에게 붙잡혔다. 주무는 사진의 의협심을 이용해 진달을 구출할 작전을 세웠다. 양춘과 함께 무기 없이 사진에게 가서 진달을 풀어달라고 요청했고, 이들의 의협심에 감동한 사진은 진달을 풀어주고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들의 친분이 관원에게 알려져 싸움이 벌어져 사가촌이 불탔고, 주무는 진달, 양춘과 함께 사진을 두령으로 삼으려 했으나 사진은 방랑길에 올랐다.이후 전국 방랑을 마치고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이했고, 사진에게 양산박(梁山泊)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魯智深)을 만났다. 하지만 사진은 화주(華州) 태수(太守)에게 붙잡혀 있었고, 노지심 등과 함께 사진을 구출한 후, 사진, 양춘, 진달과 함께 양산박에 들어갔다.
108성 집결 이후에는 오용(吳用)과 공손승(公孫勝)을 보좌하고 군무 및 기밀을 담당하는 부군사(副軍師)로 임명되었으며, 오용에 비해 진형(陣形)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 적장이 쓰는 진형을 잇달아 간파했다.
2. 3. 양산박에서의 활약
진달(陳達), 양춘과 의형제를 맺은 뒤 소화산(少華山)의 산적 두목으로 있었다. 진달이 사가촌(史家村)을 습격할 계획을 꾸미자, 사가촌에 있는 사진의 소문을 들은 주무는 진달을 만류했다. 하지만 진달은 습격을 강행해 결국 사진에게 붙잡혔고, 주무는 사진의 의협심을 이용해 진달을 구출할 작전을 구상했다. 이후 양춘과 함께 아무런 무기 없이 단둘이서 사진에게 가 진달의 석방을 요청하였고, 이들의 의협심에 반해 진달을 석방해 준 사진과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들의 친분이 관원에게 발각되어 결국 관원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여 사가촌을 불태웠으며, 주무는 진달, 양춘과 함께 사진을 두령으로 삼으려 했으나 사진은 이를 거부하고 방랑길에 나섰다.그 뒤 전국 방랑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아들였으며, 이후 사진에게 양산박(梁山泊)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魯智深)과 만났다. 하지만 사진은 화주(華州)의 태수(太守)에게 붙잡혀 있었고, 노지심 등 양산박의 호걸들과 함께 사진을 구출했으며, 이후 사진, 양춘, 진달과 함께 양산박으로 들어갔다.
108성 집결 이후에는 오용(吳用)과 공손승(公孫勝)을 보좌하고 군무 및 기밀을 담당하는 부군사(副軍師)로 임명되었으며, 오용에 비해 진형(陣形)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 적장이 쓰는 진형을 잇달아 간파했다. 방랍(方臘)의 난을 평정한 뒤 양산박 군이 해산한 이후에는 무혁랑(武奕郞) · 도통령(都統領)에 천거되었으나, 이를 거부하고 번서(樊瑞)에게 도술을 배운 뒤 공손승에게 입문했다.
2. 4. 방랍의 난 이후
방랍의 난을 평정한 후 양산박 군이 해산되자, 주무는 무혁랑(武奕郞) · 도통령(都統領)에 천거되었으나 이를 거부했다. 이후 번서(樊瑞)에게 도술을 배운 뒤 공손승(公孫勝)에게 입문하여 도교 수행을 했다.3. 평가
주무는 108성 집결이라 불리는 대집결 이후 오용, 공손승의 보좌로 임명된다. 요나라의 침략군과 송나라 영토 내 반란군에 맞선 싸움에 참여했는데, 이는 송 휘종 황제가 양산에 사면령을 내린 후였다. 주무는 군사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양산이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모든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영웅 중 한 명인 주무는, 생존자들이 포상을 기대하며 황도 동경으로 돌아갈 때 번서와 함께 공손승의 지도를 받아 도교 수행을 하기 위해 무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소설에 따르면 그는 도교 신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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