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정왕
1. 개요
주 정왕은 주 경왕의 아들로, 형 광왕의 뒤를 이어 기원전 607년에 주 왕이 되었다. 재위 기간 동안 초 장왕의 구정의 무게를 묻는 도전에 왕손만을 통해 대응하며 왕실의 권위를 지키려 했다. 또한 제나라에 왕후를 구하고 노나라, 진나라 등 주변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기원전 586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희이가 뒤를 이어 간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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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중국의 군주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7세기 중국의 군주 -
제 환공
제 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제후이자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초나라의 남진을 저지하는 등 춘추 시대 초반 질서 확립에 기여했으나, 관중 사후 정치적 혼란과 후계자 다툼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
주나라의 왕 -
주 무왕
주 무왕은 서주를 건국하고 상나라를 멸망시켜 천자가 된 왕으로, 강태공, 주공단 등 인재를 등용하고 은나라 유민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쳐 주나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사후 성왕으로 추앙받고 도교에서는 영보천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
주나라의 왕 -
주 혜왕
주 혜왕은 동주 시대 제17대 왕으로, 자퇴의 난으로 쫓겨났다가 복위했으며, 제 환공에게 패자의 지위를 하사하고 후처의 아들을 총애하여 태자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
기원전 6세기 중국의 군주 -
초 영왕
초 영왕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왕으로, 조카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후 쇠퇴한 초나라의 패권을 재건하려 했으나, 쿠데타로 자결했다. -
기원전 6세기 중국의 군주 -
주 경왕 (개)
주 경왕은 주 영왕의 손자이자 주 경왕의 아들로, 형인 도왕 사후 기원전 520년에 즉위하여 왕자조의 난 등을 겪고 성주로 천도했으며 기원전 476년에 사망했다.
2. 생애
주 경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607년 10월 을해에 형인 광왕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주 왕으로 즉위했다.
기원전 606년 초나라 장왕이 낙수에 이르러 구정의 무게를 묻는 등 주 왕실의 권위에 도전했으나, 왕손만을 보내 슬기롭게 대응했다. 이후 제나라에서 왕후를 맞이하고, 노나라에 사절을 파견하는 등 여러 활동을 했다.
기원전 586년 11월 기유, 정왕은 사망했고, 아들인 희이 (간왕)가 뒤를 이었다.
2.1. 초나라 장왕의 도전과 대응
기원전 606년 봄, 초나라 장왕이 대군을 이끌고 육혼(陸渾)의 융(戎)을 정벌하고 낙수에 이르렀다. 정왕은 왕손만(王孫滿)을 파견하여 장왕을 위로했는데, 이때 장왕은 주나라 구정의 무게를 물었다. 이는 주 왕실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된다. 왕손만은 "천명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는 말로 장왕의 질문을 কৌশ묘하게 회피하며 주의 권위를 지키고자 했다.
2.2. 기타 활동
기원전 603년 여름, 정왕은 자복(子服)을 제나라에 보내 왕후를 맞이하게 했다. 그해 겨울, 소환공이 제나라에서 왕후를 맞이했다.
기원전 600년, 정왕은 사자를 노나라에 파견했고, 노나라의 중손멸은 주나라에 사절로 갔다.
기원전 599년, 정왕은 동생 유강공을 노나라에 파견했다.
기원전 593년, 진나라 경공이 사회를 보내 주나라 왕실의 내분을 조정하게 하자, 정왕은 사회를 위해 향응을 베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