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혜왕
1. 개요
주 혜왕은 기원전 677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652년까지 재위한 주나라의 왕이다. 즉위 후 숙부 자퇴 일파를 탄압하고 대부들의 재산을 침해하여 반란을 겪었으며, 정나라와 괵나라의 도움으로 복위했다. 제 환공에게 패자의 지위를 하사하고, 후계 문제로 갈등을 겪다 사망했다.
| 왕위 계승 | 주나라의 왕 |
|---|---|
| 재위 기간 | 기원전 676년 – 기원전 652년 |
| 이전 통치자 | 주 희왕 |
| 다음 통치자 | 주 양왕 |
| 전체 이름 | 성: 기(姬) 이름: 낭(閬) 또는 문(聞) |
| 가문 | 기씨 |
| 왕조 | 주(동주) |
| 사망일 | 기원전 652년 |
| 시호 | 혜왕(惠王) |
| 아버지 | 주 희왕 |
| 배우자 | 진귀 주 혜후 |
| 자녀 | 주 양왕 감 소공 왕 계 |
| 시호 | c2: "혜" p2: Zhōu Huì Wáng w2: Chou Hui-wang l2: "주의 자애로운 왕" |
|---|---|
| 간체자 | 周惠王 |
| 병음 | Zhōu Huì Wáng |
| 이름 | 혜왕 |
|---|---|
| 대수 | 17대 |
| 칭호 | 왕 |
| 왕조 | 주 |
| 재위 기간 | 기원전 676년 - 기원전 675년 기원전 673년 - 기원전 652년 |
| 도읍 | 왕성(낙읍) |
| 휘 | 희 낭 |
| 시호 | 혜왕 |
| 아버지 | 희왕 |
| 사망년도 | 기원전 652년 |
| 비고 | 기원전 652년 훙거는 『사기』 주본기에 따름 『춘추좌씨전』에서는 기원전 653년 훙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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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중국 사람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7세기 중국 사람 -
제 환공
제 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제후이자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초나라의 남진을 저지하는 등 춘추 시대 초반 질서 확립에 기여했으나, 관중 사후 정치적 혼란과 후계자 다툼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
기원전 7세기 중국의 군주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7세기 중국의 군주 -
제 환공
제 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제후이자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초나라의 남진을 저지하는 등 춘추 시대 초반 질서 확립에 기여했으나, 관중 사후 정치적 혼란과 후계자 다툼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
주나라의 왕 -
주 무왕
주 무왕은 서주를 건국하고 상나라를 멸망시켜 천자가 된 왕으로, 강태공, 주공단 등 인재를 등용하고 은나라 유민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쳐 주나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사후 성왕으로 추앙받고 도교에서는 영보천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
주나라의 왕 -
주 성왕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주공 단의 섭정을 받은 주 성왕은 삼감의 난을 진압하고 낙양을 건설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오랑캐 부족을 정벌하여 국경을 안정시키고 아들 강왕과 함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2. 생애
기원전 673년, 정과 괵이 협력하여 자퇴와 그 일당 다섯 대부를 죽이고 혜왕을 복위시켰다. 혜왕은 정에는 호뢰 동쪽의 땅을, 괵나라에는 주천 이북 땅을 주었다. 괵공에게 정여공보다 더 좋은 하사품을 준 것은 훗날 주나라와 정나라 사이가 벌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기원전 667년, 혜왕은 제의 환공에게 패자(방백)의 지위를 하사했다.
기원전 652년, 혜왕은 사망하였다.
2.1. 즉위 이전
기원전 677년, 아버지인 희왕이 사망하자 기원전 676년에 혜왕이 즉위했다. 혜왕은 할아버지 주 장왕의 애첩 왕요의 아들로 장왕에게 사랑받던 작은아버지 자퇴(子頹)의 일파를 탄압하여, 자퇴의 스승 위국 등 대신들의 장원을 빼앗아 유(짐승을 기르는 곳)로 만들었다. 또 대부 자금(子禽), 변백(邊伯), 축궤(祝跪), 첨보(詹父)의 재산을 침해했다.
이듬해인 기원전 675년 가을, 위의 다섯 대부와 사(士) 석속이 소자에 의지하고 자퇴를 옹립해 반란을 일으켰다. 혜왕측은 한 번은 반란군을 소자의 영읍인 온으로 쫓아냈으나, 연과 위 두 나라가 자퇴를 지원하여 혜왕이 쫓겨났다. 혜왕은 온(현재의 허난성 자오쭤시 원현 남부)으로 피했고, 정의 여공은 자신이 13년간 망명할 때의 근거지인 역(현재의 허난성 위저우시)에서 혜왕을 맞이했다. 자퇴는 겨울에 주왕으로 등극했다.
2.2. 즉위와 반란
기원전 677년, 아버지인 희왕이 사망하여 혜왕이 즉위하였다. 기원전 676년 혜왕은 할아버지 주 장왕의 애첩 왕요의 아들인 작은아버지 자퇴(子頹)의 일파를 탄압하고, 자퇴의 스승 위국 등 대신들의 장원을 빼앗아 유(짐승을 기르는 곳)로 만들었다. 또한 대부 자금(子禽), 변백(邊伯), 축궤(祝跪), 첨보(詹父)의 재산을 침해했다.
기원전 675년 가을, 위의 다섯 대부와 사(士) 석속이 소자에 의지하고 자퇴를 옹립해 반란을 일으켰다. 혜왕측이 한 번은 반란군을 소자의 영읍인 온으로 쫓아냈으나, 연과 위 두 나라가 자퇴를 지원해 혜왕이 쫓겨났다. 혜왕은 온(현재의 허난성 자오쭤시 원현 남부)으로 피했고, 정의 여공은 자신이 13년간 망명할 때의 근거지인 역(현재의 허난성 위저우시)에서 혜왕을 맞이했다. 그해 겨울, 자퇴는 주왕으로 등극했다.
기원전 673년, 정은 괵과 협력해 자퇴와 그 일당 다섯 대부를 죽이고 혜왕을 복위시켰다. 혜왕은 정에는 은상으로서 호뢰(현재의 허난성 싱양시) 동쪽의 땅을 하사했으며, 괵나라에는 주천 이북 땅을 주었다. 혜왕은 괵공에게 정여공보다 더 좋은 하사품을 주었고, 이는 주나라와 정나라 사이가 벌어져, 나중에 주 양왕과 정 문공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2.3. 복위와 통치
기원전 677년 아버지인 희왕이 사망하여 혜왕이 즉위하였다. 혜왕은 할아버지 주 장왕의 애첩 왕요의 아들인 작은아버지 자퇴의 일파를 탄압하고, 여러 대신들의 재산을 침해했다.
기원전 675년, 이에 반발한 다섯 대부와 사(士) 석속이 자퇴를 옹립해 반란을 일으켰다. 연과 위 두 나라가 자퇴를 지원하여 혜왕은 쫓겨나 정의 여공에게 의탁했다. 그해 겨울, 자퇴는 주왕으로 등극했다.
기원전 673년, 정은 괵과 협력해 자퇴와 그 일당을 죽이고 혜왕을 복위시켰다. 혜왕은 정에는 호뢰 동쪽의 땅을, 괵에는 주천 이북 땅을 주었다. 이때 혜왕은 괵공에게 정여공보다 더 좋은 하사품을 주었는데, 이는 훗날 주나라와 정나라 사이가 벌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기원전 667년, 혜왕은 제의 환공에게 패자(방백)의 지위를 하사했다.
기원전 652년, 혜왕은 사망하였다.
2.4. 후계 문제와 죽음
혜왕은 할아버지 주 장왕이 첩복인 자퇴를 총애하여 자신을 왕위에서 쫓아냈던 경험에도 불구하고, 후처 혜후의 아들 숙대를 편애하여 장자 정(주 양왕)의 왕위 계승을 위태롭게 했다. 혜왕은 태자를 폐하고 숙대를 세우려 했으나, 제 환공은 이를 막기 위해 혜왕 22년(기원전 655년) 회맹에서 왕세자 정을 불러 제후들과 만나게 하여 태자 지위를 안정시키려 했다. 혜왕은 제 환공에게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고, 회맹에 참여한 정나라를 이탈시키고 초나라, 진나라와 연합하려 했다. 정 문공은 왕명을 따라 회맹을 배반했다. 혜왕 23년(기원전 654년) 제 환공이 주도하는 제후연합군의 정나라 공격은 초나라가 허나라를 공격하여 실패했으나, 혜왕 24년(기원전 653년) 다시 공격을 받은 정나라가 제 환공에게 굴복하면서 혜왕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혜왕 25년(기원전 652년), 혜왕이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