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복양강후)
1. 개요
진서(복양강후)는 전한 고제를 따라 종군하여 항우를 친 공로로 복양후에 봉해진 인물이다. 문제 10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강이라 하였으며, 아들 진가가 작위를 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관련 기록이 전하며, 고조공신후자연표에서 49위를 차지했다.
진서 (복양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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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고제를 따라 설(薛) 땅에서 졸병으로서 종군하였고, 우사마(右司馬)가 되어 항우를 친 공로로 복양후(復陽侯)에 봉해졌다.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죽어 시호를 강(剛)이라 하였고, 아들 진가가 뒤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군 경력
고제를 따라 설(薛) 땅에서 졸병으로서 종군하였고, 우사마(右司馬)가 되어 항우를 친 공로로 복양후(復陽侯)에 봉해졌다.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죽어 시호를 강(剛)이라 하였고, 아들 진가가 뒤를 이었다.
2.2. 복양후 책봉과 사망
고제를 따라 설(薛) 땅에서 졸병으로서 종군하였고, 우사마(右司馬)가 되어 항우를 친 공로로 복양열후(復陽侯)에 봉해졌다.
문제 10년(기원전 170년)에 죽어 시호를 강(剛)이라 하였고, 아들 진가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