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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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소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누이 박씨가 한 문제의 어머니인 효문태후가 되면서 외척으로 활동했다. 고제 때 낭이 되어 종군했으며, 문제 즉위 후 중대부, 차기장군, 장군 등을 역임하며 지후에 봉해졌다. 회남왕 유장의 행동을 간언하고 주발의 무죄를 호소하기도 했으나, 조정의 사자를 살해한 죄로 자결했다. 그의 작위는 아들 박융노가 이었으며, 한 문제가 죄 있는 외척을 주살할 때 박소의 사례가 언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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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박소는 한 고조의 아들 유항을 낳은 언니 박씨가 유항이 대왕으로 세워지자 함께 대나라에 살았다. 고조 7년(기원전 200년)에 낭(郞)이 되어 종군했으나, 언니를 따라 대나라로 갔다.

여후 8년(기원전 180년), 여후가 사망하고 여씨의 난으로 여씨 일족이 멸망하자, 대왕 유항이 황제로 옹립되었다. 이가 곧 문제이다. 박소는 중대부로서 문제를 대에서 맞이했고, 즉위 후에는 차기장군이 되었다.

문제 전원년(기원전 179년)에는 장군이 되었고, (軹侯)에 봉해져 1만 호를 식읍으로 받는 등 문제의 신임을 받았다. 주발에게서 받은 금 5천 근과 1만 호의 영지를 받기도 했다.

문제 전 10년(기원전 170년), 박소는 조정의 사자를 살해한 죄로 자결했다。 지후 작위는 아들 박융노, 손자 박량으로 이어졌다. 박소를 자결시킨 일은 황제가 죄 있는 외척을 처벌할 때의 전례로 자주 인용된다.

2.1. 초기 생애와 문제 즉위

누이 효문태후는 고제와 혼인하여 유항을 낳았다. 박소는 고제 때 낭(郞)이 되어 종군하였는데, 유항이 대나라 왕으로 봉해졌을 때 효문태후와 함께 대나라로 갔다.

고후 8년(기원전 180년), 고후가 죽고 여씨가 주멸되어 유항이 황제로 추대되었다(문제). 중대부(中大夫) 박소는 문제를 영접하였고, 문제 즉위 후 거기장군이 되고 (軹侯)에 봉해져 식읍 1만 호를 받았다.

회남여왕이 교만하게 행동하니, 박소는 문제의 명으로 회남여왕을 간하는 글을 보내게 하였다.

2.2. 회남왕 유장 간언

회남여왕 유장이 교만하고 불손한 모습을 보이자, 문제는 박소에게 유장을 간하는 글을 보내게 하였다.

2.3. 주발 구명

문제 즉위 후, 박소는 황태후가 된 언니 박씨를 대에서 맞이하는 역할을 맡았다. 여씨의 난 이후, 문제는 주발로부터 금 5천 근과 1만 호의 영지를 하사받았는데, 이를 그대로 박소에게 주었다. 훗날 주발이 투옥되자, 박소는 언니 박태후에게 주발의 무죄를 주장했다.

3. 죽음

문제 10년(기원전 170년), 조정의 사자를 죽인 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작위는 아들 박융노가 이었다.

박소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씨(鄭氏)와 여순(如淳)이 서로 다른 일화를 기록한 것이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각각 이러하다.

* 박소가 조정의 사자를 죽였는데, 문제는 차마 그를 죽일 수 없어서 공경들을 시켜 박소와 함께 술을 마시게 하는 한편 그에게 자결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박소는 따르지 않았고, 문제는 이번에는 신하들을 박소에게 보내 곡을 하게 하였다. 결국 박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박소는 문제와 육박을 놀아서 졌다. 이윽고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시랑(侍郞)이 박소의 잔에는 술을 조금만 따랐고, 다른 시랑이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웃은 시랑은 나중에 휴가를 얻어 쉬던 중 박소의 자객에게 죽었고, 문제는 박소에게 자결을 종용하였다.

안사고는 위 일화를 문제기에 주석으로 달아 소개하는 한편, 외척은택후표에 따르면 박소는 조정의 사자를 죽인 죄로 죽었다고 하니 정씨의 일화가 옳다고 하였다.

그 후, 문제가 박소를 자결시킨 일은, 황제가 죄 있는 외척을 주살할 때의 전례로 자주 인용된다.

4. 평가

문제 전10년(기원전 170년) 박소는 조정의 사자를 살해한 죄로 자결했다. 지후의 작위는 박소의 아들 박융노(이후)가 계승했고, 후에 박융노의 아들 박량이 계승했다.

이후, 문제가 박소를 자결시킨 일은 황제가 죄 있는 외척을 주살할 때의 전례로 자주 인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