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의암
1. 개요
진주 의암은 논개가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바위이다. 1593년 진주성 함락 후, 논개는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이곳으로 유인하여 남강에 함께 투신했다. 이후 정대륭이 '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겼고, 논개의 순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남 사람들이 의암이라 명명했다. 현재는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의암사적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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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경상남도) -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의 등불에서 유래하여 개천예술제의 일환으로 이어져 오다 독립적인 축제로 발전, 다양한 체험 행사와 공연, 세계 각국 등 전시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이다. -
남강 (경상남도) -
진주 촉석루
진주 촉석루는 남강 변 벼랑 위 진주성의 남장대로, 고려 시대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 후 광해군 때 재건되었고, 논개의 의암 투신 사건으로 유명하며, 한국 전쟁 후 1960년에 다시 지어졌다. -
바위 -
낙화암
낙화암은 백제 멸망 당시 많은 궁녀들이 투신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백마강변의 바위 절벽으로, 역사적 사실과 과장된 전설이 혼재된 비극적인 장소이다. -
바위 -
조종암
조종암은 조선 숙종 때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기리고 청나라에 대한 굴욕을 잊지 않기 위해 바위에 글씨를 새기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숭명배청 사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며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
한국의 지질 -
영동군
영동군은 충청북도 남부에 위치하며,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만나는 지점으로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포도, 감 등의 특산물과 영동난계국악축제로 유명하다. -
한국의 지질 -
공주시
2. 역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되어 참전한 최경회를 따라 2차 진주성 전투를 할 때 성안에서 전투의 뒷수발을 들었다. 1593년 7월 29일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일본 장수들이 진주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이곳 의암으로 유인해 끌어안아 함께 남강에 떨어져 죽었다.
1627년 인조 7년 정문부의 유언에 따라 둘째 아들 정대륭(鄭大隆)(1599년~1661년)이 진주로 옮겨 와서 '의암'(義巖)이라는 전자체 글씨를 썼다.
2.1. 임진왜란과 논개의 순국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되어 참전한 최경회를 따라 2차 진주성 전투를 할 때 성안에서 전투의 뒷수발을 들었다. 1593년 7월 29일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일본 장수들이 진주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이곳 의암으로 유인해 끌어안아 함께 남강에 떨어져 죽었다.
1627년 인조 7년 정문부의 유언에 따라 둘째 아들 정대륭(鄭大隆)(1599년~1661년)이 진주로 옮겨 와서 '의암'(義巖)이라는 전자체 글씨를 썼다.
2.2. 의암 명칭의 유래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되어 참전한 최경회를 따라 2차 진주성 전투를 할 때 성안에서 전투의 뒷수발을 들었다. 1593년 7월 29일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일본 장수들이 진주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이곳 의암으로 유인해 끌어안아 함께 남강에 떨어져 죽었다.
1627년 인조 7년 정문부의 유언에 따라 둘째 아들 정대륭(1599년~1661년)이 진주로 옮겨 와서 '의암'(義巖)이라는 전자체 글씨를 썼다.
3. 문화재 지정
의암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이다.
조선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장수를 유인하여 이 바위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논개의 순국정신을 현창하기 위해 영남사람들이 의암이라고 명명하였다.
인조 7년(1629) 진주의 선비 정대륭(鄭大隆:1599∼1661)은 바위의 서쪽 벽면에 의암이라는 글자를 전각하였고, 남쪽에는 한몽삼(韓夢參:1598∼1662)이 쓴 것으로 전하는 의암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의암의 바닥 넓이는 3.65m×3.3m이다. 옆의 암벽에는 "한 줄기 긴 강이 띠를 두르고, 의열은 천년의 세월을 흐르리라(일대장강(一帶長江) 천추의열(千秋義烈))"는 글이 새겨져 있다.
3.1. 의암 (경상남도 기념물)
의암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이다.
조선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장수를 유인하여 이 바위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논개의 순국정신을 현창하기 위해 영남사람들이 의암이라고 명명하였다.
인조 7년(1629) 진주의 선비 정대륭(鄭大隆:1599∼1661)은 바위의 서쪽 벽면에 의암이라는 글자를 전각하였고, 남쪽에는 한몽삼(韓夢參:1598∼1662)이 쓴 것으로 전하는 의암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의암의 바닥 넓이는 3.65m×3.3m이다. 옆의 암벽에는 "한 줄기 긴 강이 띠를 두르고, 의열은 천년의 세월을 흐르리라(일대장강(一帶長江) 천추의열(千秋義烈))"는 글이 새겨져 있다.
3.2. 진주 의암 사적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의암사적비는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 때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의 민관군이 순절하자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의기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가로 60 cm, 세로 145 cm, 두께 15cm이며, 2000년 1월 31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3호로 지정되었다.
유몽인(1559년 ~ 1623년)의 어우야담에 의해 전해진 기록을 진주사민 명암 정식(1683년 ~ 1746년)이 비문으로 옮겨 썼고, 1722년 경종 2년에 세웠다.
1741년 영조 16년에 경상도 우병사 남덕하(1688년 ~ 1742년)가 비각을 짓고 의기논개지문이라는 현판을 세웠다. 이 비에는 의기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금석자료로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상황이나 논개의 순국사적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