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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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 목후는 서주 시대 진나라의 군주이다. 헌후의 아들로 기원전 812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785년까지 재위했다. 주나라 선왕을 따라 조나라와 천무 전투에 참전했으며, 천무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제나라 공녀 강씨와 혼인하여 태자 구와 성사를 낳았으며, 성사를 편애한 것이 훗날 진나라의 내전 원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785년 사망 후 동생 상숙이 진후가 되었고, 태자 구는 달아났다. 산시성 북조촌에서 진 목후의 묘로 추정되는 묘가 발굴되었다.

진 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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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목후는 주나라 왕실의 측근 세력으로서, 서주 선왕과 함께 조(條, 篠) 원정과 천무(千畝) 싸움에 참전했다. 주왕은 두 전쟁에서 모두 패배했지만, 목후는 천무 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선왕 40년에는 진나라가 북융을 격퇴했으나, 41년에는 왕이 졌다. 이를 통해, 주 왕실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는 반면 진나라는 점차 강성해졌다.

목후 4년(기원전 809년)에 제나라 공녀 강씨(姜氏)와 혼인했고, 조 원정 무렵에 태자 구(진 문후)를 낳았으며, 천무 싸움이 있던 해에 아들을 또 낳아 자신의 공적을 기념해 이름을 성사(成師, 곡옥 환숙)로 지었다. 장자보다 차자의 이름이 더 좋은 뜻이었는데, 이는 목후가 차자를 더 사랑했다는 징조로, 훗날 진나라가 익과 곡옥으로 갈려 치열한 내전을 겪은 원인이 되었다.

목후 27년(기원전 785년)에 목후가 죽고, 아우 진 상숙이 스스로 진후가 되어, 태자 구는 달아났다.

2.1. 즉위 전

목후는 진나라 헌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812년, 헌후가 사망하자 목후가 뒤를 이어 진후로 즉위했다.

2.2. 즉위와 통치

기원전 812년, 아버지 헌후가 사망하자 진후의 자리에 올랐다. 기원전 809년 제나라 공녀 강씨(姜氏)와 혼인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서주 선왕과 함께 주나라 왕실의 측근 세력으로서, 선왕 36년의 조(條, 篠) 원정과 선왕 39년의 천무(千畝) 싸움에 참전했다. 이 싸움에서 주왕은 두 전쟁에서 모두 패배했지만, 목후는 천무 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기원전 805년 조(条)를 공격했고, 태자 구가 태어났다. 기원전 802년 천무(千畝)를 공격하여 전과를 올렸고, 막내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성사라고 하였다. 진(晉)나라 사람 사복(師服)은 목후의 두 아들의 이름을 불길하게 여겨 훗날의 혼란을 예언했다.

2.3. 아들들과 관련된 논란

기원전 809년, 목후는 제나라 공녀 강씨(姜氏)와 혼인했다. 조나라 원정 무렵에 첫째 아들 구(仇, 진 문후)를 낳았다. 천무 전투가 있던 해에 둘째 아들을 낳아 자신의 공적을 기념하여 성사(成師, 곡옥 환숙)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장자보다 차자의 이름이 더 좋은 뜻이었는데, 이는 목후가 차자를 더 사랑했다는 징조였다. 훗날 진나라가 익과 곡옥으로 갈려 치열한 내전을 겪은 원인이 되었다. 진나라 사람 사복(師服)은 목후가 지은 두 아들의 이름이 불길하다고 여겨, 훗날 진나라에 화란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다.

2.4. 사망과 후계

기원전 785년, 목후가 사망하자 동생인 진 상숙이 스스로 진후로 즉위했고, 태자 구는 달아났다.

3. 묘

산서성 북조촌 진후묘에서 진후 방보(晉侯邦父)와 그 배우자의 묘가 발굴되었다. 이 묘는 서주 말기의 양식이며, 진후 소(晉侯蘇)의 묘로 추정되는 묘의 다음 세대이므로 진 목후의 묘로 여겨진다. 묘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적힌 이름과 《사기》에 기록된 이름이 달라, 《사기》의 기록에 대한 반박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한쪽은 이름이고 다른 한쪽은 로 여기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