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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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 문후는 춘추 시대 진나라의 군주로, 아버지 진 목후가 주 선왕을 도왔을 때 태어났다. 숙부 상숙을 몰아내고 즉위한 후, 서주 유왕 사후 혼란기에 주 평왕을 호위하고 괵나라의 반란을 진압하여 왕실 안정에 기여했다. 동주 시기에는 남방의 이민족을 격퇴하고 한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주 평왕으로부터 《서경》 〈문후지명〉을 받았다. 기원전 746년에 사망하고 아들 소후가 뒤를 이었다.

진 문후
기본 정보
작위후작
기(姬)
이름구(仇)
시호문후(文侯)
출생 연도기원전 805년
사망 연도기원전 746년
아버지목후
자녀소후
통치 기간기원전 781년 - 기원전 746년
봉지
이전 통치자상서
다음 통치자소후
진(晉)나라 군주로서의 계보
계승 순서진나라 후작
왕조주나라 씨족
생애
즉위 전목후의 뒤를 이음
재위 기간기원전 781년부터 기원전 746년까지 진나라를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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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적

주 선왕 36년, 아버지 진 목후가 선왕을 도와 조나라와 싸움에 참전했을 때 문후가 목후의 장자로서 태어났다.

기원전 785년에 목후가 죽은 후 아저씨 상숙이 군위에 올랐으나, 4년 후인 기원전 781년에 상숙을 치고 군위를 되찾았다.

서주 유왕, 포사, 등 왕의 친위세력과 신, , , 견융 등 폐태자 의구(후의 동주 평왕)의 외가 신나라 측 세력이 태자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문후는 당초 왕실 편이었으나, 유왕이 봉화를 가지고 제후를 희롱했으므로 유왕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유왕이 폐태자 세력에게 살해당하고 의구가 주 평왕으로 즉위할 때, 문후는 위 무공, 정 무공, 진 양공과 함께 왕을 호위했다. 진나라는 정나라와 함께 주나라의 동천에 크게 기여했다.

괵나라는 주 평왕에게 계속 반기를 들고 유왕의 아들 왕자 여신을 주 휴왕으로 옹립하여 평왕 세력과 대립했으나, 문후는 계속 주 평왕 편에 서서 왕실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해, 기원전 750년에 휴왕을 죽여 왕실의 내분에 종지부를 찍었다. 주 평왕이 진 문후를 위해 지은 《서경》 〈문후지명〉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주의 동천 후, 동남쪽 비중국계 세력(회이)이 중원 침탈을 시도했고, 문후는 채 공후와 함께 이들을 격파했다는 말이 《후한서》에 전한다. 또 융생편종(戎生編鐘)에 묘사된 융생의 번탕(繁湯) = 번양(繁陽) 정벌이 이 진 문후 대의 일인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문후는 당시 허약해진 주 왕실을 대신하여 남방의 소요까지도 진압하고 있었다.

문후 23년(기원전 758년), 한(韓)나라를 멸했다.

2.1. 즉위 전

zh-Hant는 기원전 805년에 진나라 목후의 아들로 태어나 태자에 책봉되었다. 주 선왕 36년(기원전 785년), 아버지 진 목후가 선왕을 도와 조나라와의 싸움에 참전했을 때 목후의 장자로서 태어났다. 같은 해에 목후가 사망하자 목후의 동생인 상숙이 뒤를 이어 진후로 즉위했다. 이 때문에 태자 구는 국외로 달아났다. 4년 후인 기원전 781년, 태자 구는 일당을 이끌고 상숙을 습격하여 죽이고 스스로 진후로 즉위했다.,

서주 말기, 서주 유왕, 포사, 등 왕의 친위세력과 신, , , 견융 등 폐태자 의구(후의 동주 평왕)의 외가 신나라 측 세력이 태자위를 두고 경쟁할 때, 문후는 당초에는 왕실 편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유왕이 봉화를 가지고 제후를 희롱했으므로 결국 문후도 유왕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2.2. 주 왕실 내분 관여

기원전 781년, 진 문후는 아저씨 상숙을 치고 군위를 되찾았다.

서주 유왕과 포사, 등 왕의 친위세력과 신, , , 견융 등 폐태자 의구(후의 동주 평왕)의 외가 신나라 측 세력이 태자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문후는 당초 왕실 편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유왕이 봉화를 가지고 제후를 희롱하자 유왕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결국 유왕이 폐태자 세력에게 살해당하고 의구가 주 평왕으로 즉위할 때, 문후는 위 무공, 정 무공, 진 양공과 함께 왕을 호위했다. 이때 진나라는 정나라와 함께 주나라의 동천에 크게 기여했다.

괵나라는 주 평왕에게 계속 반기를 들고 유왕의 또 다른 아들 왕자 여신을 주 휴왕으로 옹립하여 평왕 세력과 대립했으나, 문후는 계속 주 평왕 편에 서서 왕실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마침내 기원전 750년에 휴왕을 죽여 왕실의 내분에 종지부를 찍었다. 주 평왕이 진 문후를 위해 지은 《서경》 〈문후지명〉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3. 주 왕실 안정화 기여

기원전 781년, 태자 구는 일당을 이끌고 상숙을 습격하여 스스로 진후로 즉위했다.

서주 말기, 서주 유왕, 포사, 등 왕의 친위세력과 신, , , 견융 등 폐태자 의구(후의 동주 평왕)의 외가 신나라 측 세력 간에 태자위를 두고 경쟁이 벌어졌다. 비록 대립이 나타나기 전이지만 증나라를 공격한 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문후는 당초에는 왕실 편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유왕이 봉화를 가지고 제후를 희롱했으므로 결국 문후도 유왕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마침내 유왕이 폐태자 세력에게 져 살해당하고 폐태자 의구가 주평왕으로 즉위할 때, 문후는 위 무공, 정 무공, 진 양공과 함께 왕을 호위했다고 한다. 특히 이때 진나라는 정나라와 함께 동천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두 나라로 꼽혔다.

괵나라는 주평왕에 계속 반기를 들고 유왕의 또 다른 아들 왕자 여신을 주 휴왕으로 옹립하여 평왕 세력과 대립했으나, 문후는 계속 주평왕 편에 서서 평왕 측의 왕실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마침내 평왕 21년, 즉 진문후 31년(기원전 750년)에 휴왕을 죽여 왕실의 내분에 종지부를 찍었다. 기원전 741년? 문후는 휴왕의 조카인 주의 평왕을 소악으로 맞아들여 이를 경사에 옹립했다. 주평왕이 진문후를 위해 지은 《서경》 〈문후지명〉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주의 동천 후, 동남쪽 비중국계 세력(회이)이 중원 침탈을 시도했고, 문후는 채 공후와 함께 이들을 격파했다는 말이 《후한서》에 전한다. 또 융생편종(戎生編鐘)에 묘사된 융생의 번탕(繁湯) = 번양(繁陽) 정벌이 이 진문후 대의 일인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이와 같이 문후는 당시 허약해진 주 왕실을 대신하여 남방의 소요까지도 진압하고 있었다.

3.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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