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보네스틸 3세
1. 개요
찰스 H. 보네스틸 3세는 1909년 미국에서 태어나 1977년 사망한 미국의 군인이다.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유학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그는 한국 분단의 기준선인 북위 38도선을 제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제24보병사단 사단장, 제7군단 군단장을 거쳐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유엔군 사령관 겸 주한 미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1·21 사태,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등을 겪었으며, 미국 육군에서 은퇴 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 이름 | 찰스 하트웰 보네스틸 3세 |
|---|---|
| 별명 | 틱(Tick) |
| 출생일 | 1909년 9월 26일 |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플래츠버그 |
| 사망일 | 1977년 10월 13일 |
| 사망지 |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
| 묻힌 곳 | 알링턴 국립묘지 |
| 국적 | 미국 |
| 소속 | 미국 육군 |
| 복무 기간 | 1931년 – 1969년 |
| 최종 계급 | 대장 |
| 아버지 | 찰스 하트웰 보네스틸 주니어 소장 |
| 지휘 | 제24보병사단 제7군단 제8군 주한 미군 미한연합사령부 (CINC USFK/UNC) |
|---|---|
| 참전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한반도 DMZ 분쟁 |
| 훈장 | 수훈장 (2회) 공로훈장 (2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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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 사령관 -
가이 S. 멜로이 주니어
가이 S. 멜로이 주니어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수훈십자장을 받았으며, 주한미군 사령관, 유엔군 사령관, 제8군 사령관을 역임하고 육군 대장으로 은퇴 후 테렐 힐스 시장을 지낸 미국의 군인이다. -
주한 미군 사령관 -
존 R. 하지
존 R. 하지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군인으로, 1945년 인천에 상륙하여 일본 총독부의 항복을 받고 주한 미군 사령관과 미군정청 사령관을 겸임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남한을 통치했으며, 1952년 대장으로 진급하여 1963년 사망했다. -
미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 -
마거리트 히긴스
마거리트 히긴스는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 주요 분쟁 지역을 취재하고 한국 전쟁 보도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종군 기자이자 작가이다. -
미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 -
윌리엄 F. 딘
윌리엄 F. 딘은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육군 중장으로, 남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독일군 포로를 잡는 전공과 대전 전투에서의 용맹함으로 명예훈장을 받았으며, 한국 전쟁 중 북한군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석방 후 영웅으로 귀환, 예편 후 샌프란시스코에 안장되었고 제주 4.3 사건 당시 미군정의 역할도 수행했다. -
미국 육군 장군 -
코트니 휘트니
코트니 휘트니는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하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참모 및 연합군 최고사령부 민정국장으로 활동하며 일본국 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인물이다. -
미국 육군 장군 -
존 J. 요삭
존 J. 요삭은 베트남 전쟁과 걸프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육군 장군으로, 제1기병사단 사단장과 미 제3군 사령관을 역임하며 사막 방패 작전과 걸프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다수의 훈장을 수훈했다.
2. 생애
찰스 H. 보네스틸 3세는 1909년 9월 26일 미국 뉴욕주 클린턴군 플래츠버그에서 태어나 1977년 10월 13일 사망하여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글스카우트 출신으로, 미국 육군사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전구에서 활약했으며, 1945년 8월 11일 딘 러스크와 함께 한반도 분단의 기준선으로 북위 38도선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전 후 미국 국무장관 특별 보좌관을 역임했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제24보병사단장과 제7군단장을,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유엔사령부 및 주한 미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주한미군 사령관 재임 중 1·21 사태,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등을 겪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09년 9월 26일 미국 뉴욕주 클린턴군 플래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십 대 시절 미국의 보이스카우트 단체인 이글스카우트에 가입했고, 명예 이글 스카우트 상을 수상했다. 1931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웨스트포인트 재학 시절, 동기들로부터 "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유학, 1934년에 철학·정치학·경제학 협동과정(PPE)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2.2. 군 경력
보네스틸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유럽 전구에서 활약했다. 1945년 8월 11일, 미국 육군 대령 딘 러스크와 보네스틸은 한반도 분단의 기준선으로 북위 38도선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는데, 일각에서는 1944년 초부터 미국이 이미 북위 38도선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고 주장한다. 종전 후, 미국 국무장관 특별 보좌관을 지냈다.
1958년 11월, 보네스틸은 공식 자격으로 남베트남 사이공을 방문했다. 1961년부터 1962년까지 제24보병사단 사단장을, 1962년부터 1963년까지 제7군단 군단장을 역임했다.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유엔사령부 및 주한 미군 사령관을 지냈다. 재임 기간 동안 1·21 사태,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등을 겪었다. 보네스틸은 망막 박리 때문에 왼쪽 눈을 수술한 뒤 안대를 착용했다. 1969년 미국 육군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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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망
보네스틸은 1977년 10월 13일에 사망하여 알링턴 국립묘지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곁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