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서경성
1. 개요
천서경성은 대장화에서 사용된 연호이다. 915년부터 916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중국의 후량 등의 연호를 빌려왔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후고구려와 후백제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대장화는 신라와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고립에서 벗어나려 했다.
3. 동시대 연호
* 후량: 건화(乾化) (911년 ~ 913년)
대장화는 천서경성 연간에 후량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 후고구려(태봉): 수덕만세(水德萬歲) (911년 ~ 914년)
* 후백제: 정개(正開) (900년? ~ 936년?)
당시 한반도는 후삼국시대로, 궁예의 후고구려(태봉)와 견훤의 후백제가 각축을 벌였다. 대장화는 이러한 정세 속에서 후고구려, 후백제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발해 : 天瑞景星중국어 (발해 유물에서 발견되었으나, 정식 연호인지는 불분명)
3.1. 중국
천서경성(天瑞景星)은 대장화 정륭제(鄭隆亶) 때 사용된 연호이다. 911년에 사용되었다.
후량의 연호인 건화(乾化) 원년(911년)에 해당한다.
천서경성 연간에 대장화는 후량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3.2. 한반도
천서경성은 대장화의 연호이다. 이 시기 한반도에서는 후삼국시대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궁예의 후고구려(태봉)는 광평성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견훤의 후백제는 완산주를 도읍으로 하여 성장하였다. 궁예는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연호를 무태로 정했으며, 905년에는 도읍을 철원으로 옮겼다. 911년에는 국호를 태봉으로 다시 고치고 연호를 수덕만세로 정하였다. 한편, 견훤은 900년에 완산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연호를 정개로 하였다.
대장화는 이러한 한반도의 정세 속에서 후고구려, 후백제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3. 기타 국가
天瑞景星중국어은 발해의 연호로 추정되는 연호이다. 발해의 유물에서 발견되었으나, 정식 연호인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