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부원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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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안부원부인은 경주 임씨 임언의 딸로, 고려 태조의 부인이다. 효성태자와 효지태자 두 아들을 낳았으며, 아들들은 "천안낭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천안부원부인이 경주 출신임에도 천안부원부인이라는 호를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 고려대학교 이정란은 태조가 천안을 왕실의 기반으로 삼기 위해 그녀의 자녀들에게 천안을 본거지로 삼게 했다고 주장했다.

천안부원부인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천안부원부인
원래 이름천안부원부인 (天安府院夫人)
본명미상
다른 이름미상
작위고려 태조의 후궁
생애
출생일생년 미상(生年 未詳)
출생지경상도 경주(慶尙道 慶州)
사망일몰년 미상(沒年 未詳)
사망지경상도 경주(慶尙道 慶州)
매장지미상
종교불교(佛敎)
가족 관계
부군고려 태조(太祖)
자녀효성태자(孝成太子), 효지태자(孝祗太子)
부친임언(林彦)
모친미상
왕실 정보
왕조고려(高麗)
가문경주(慶州)
재위미상
전임자숙목부인(肅穆夫人)
후임자흥복원부인(興福院夫人)
묘호미상
시호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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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경상도 경주 출신으로, 경주 임씨 임언의 딸이다. 태조 왕건의 부인이 되어 효성태자효지태자 두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경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천안부원부인(天安府院夫人)이라는 호를 받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그녀의 아들들은 '천안낭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장남 효성태자는 정종의 딸과 결혼했으나 후사 없이 경종 대에 복수법의 영향으로 살해되었고, 차남 효지태자 역시 후사가 없었다. 천안부원부인의 생몰년이나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생애는 알 수 없다.

2.1. 출신 배경

경상도 경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경주 임씨인 임언이다. 임언은 강주(康州, 현재의 경상남도 진주시) 태수를 지냈으며, 927년(태조 10년)에는 후당에 두 차례 사신으로 파견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고려사》〈열전〉에는 그녀의 출신 배경과 효성태자, 효지태자를 낳았다는 사실 외에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경주 출신인 그녀가 천안부원부인(天安府院夫人)이라는 호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고려대학교의 이정란은 연구를 통해 태조 왕건이 당시 특별한 지역 기반 세력이 없던 천안 지역을 왕실의 중요한 거점으로 삼으려 했고, 이를 위해 천안부원부인의 자녀들에게 천안을 본거지로 삼도록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녀의 아들들은 '천안낭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아버지 임언이 천안 지역의 태수를 지냈기 때문에 이러한 호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남편인 태조와의 사이에서는 아들 둘, 즉 효성태자와 효지태자를 두었다. 그녀의 생몰년이나 능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2.2. 태조와의 관계

남편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 효성태자효지태자를 낳았다. 그녀의 아들들은 “천안낭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는 태조 왕건이 당시 지역 토착 세력이 없던 천안 지역을 왕실의 주요 지역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장남 효성태자는 정종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후사가 없었고, 경종 때 실시된 복수법의 여파로 살해당했다. 차남 효지태자는 사서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으며, 역시 후사가 없었다.

2.3. 아들들의 삶

남편 태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 효성태자효지태자를 낳았다. 이들은 "천안낭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장남 효성태자는 정종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후사가 없었고, 경종 때 실시된 복수법의 여파로 살해당했다. 차남 효지태자는 사서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으며, 역시 후사가 없었다.

3. 가족 관계

남편 태조 왕건
남편 태조 왕건

* 아버지 : 임언(林彦)
* 어머니 : 미상
* 남편 : 태조(太祖, 877년~943년, 재위: 918년~943년)
장남 : 효성태자 주림 (孝成太子 珠琳, ? ~ 976년) - 정종과 문성왕후의 딸과 결혼하였다.
차남 : 효지태자 (孝祗太子, 생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