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전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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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총력전 연설은 1943년 2월 18일, 요제프 괴벨스가 독일 스포츠 궁전에서 행한 연설이다. 이 연설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던 시기에, 독일 국민의 총력전 참여를 독려하고 볼셰비즘과 유대인을 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괴벨스는 연설에서 "총력전을 원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청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으며, '유대인 말살'을 암시하는 표현을 사용하려다 멈칫하기도 했다. 연설의 결과, 괴벨스는 히틀러로부터 전쟁 경제 운영에 대한 더 많은 권한을 얻어냈지만, 독일의 패망을 막지는 못했다.
1942년 말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황은 추축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부 전선에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휘하의 독일 제6군이 소련군에 항복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1] 소련군은 쿠르스크 (2월 8일), 로스토프나도누 (2월 14일), 하르코프 (2월 16일)를 탈환하며 반격을 개시했다.
괴벨스는 연설에서 볼셰비즘의 위협을 강조하며, 그 배후에 국제적 유대인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4][5] 그는 "2000년에 달하는 유럽의 역사는 위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하며, 독일이 볼셰비즘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유럽 전체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소련의 총동원을 "악마적"이라고 묘사하며, 독일도 총력전을 통해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연설 이전의 배경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추축국이 패배하고, 트리폴리를 상실하는 등(1943년 1월 23일) 연합군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1]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은 후퇴했고,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독일 수송선은 1월 19일 연합군에 의해 격침되었다. 이집트·리비아에서의 전투는 영국군의 승리로 끝나, 알제리·리비아에서 각각 퇴각한 추축국 부대가 튀니지에서 포위되었다.
1943년 1월,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2]
이러한 상황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민간 생활 시설을 폐쇄하는 등 총력 동원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3] 2월 2일, 독일 국민이 더욱 전쟁에 집중하도록 전국 10만 개의 레스토랑과 클럽이 폐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요제프 괴벨스가 원했던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헤르만 괴링과 한스 라머스와 같은 다른 장관들이 조치를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괴벨스는 침체된 국민의 사기를 고무하기 위해 히틀러가 직접 연설하도록 설득했지만, 히틀러가 거절했기 때문에 괴벨스가 연설을 하게 되었다.
2. 1. 한국의 상황 (1943년)
3. 연설의 주요 내용
괴벨스는 독일이 유대인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유대교를 완전히 그리고 가장 급진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5] 연설 도중 괴벨스는 '제거'를 뜻하는 Ausschaltungde이라는 단어를 말하려다 잠시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음성 기록에는 Aussr....de이라고 말하다가 멈춘 부분이 남아있다. 이는 '유대인 말살'을 암시하는 표현을 사용하려다 중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괴벨스는 청중에게 "여러분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여러분은 필요하다면,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의 전면적이고 철저한 전쟁을 원하는가?"[5] 등의 질문을 던지며 열광적인 반응을 유도했고, 연설은 "자, 국민들이여, 일어나라! 그리고 폭풍이여, 터져라! (Nun Volk, steh’ auf, und Sturm, brich los!de)"라는 문구로 마무리되었다. 이 문구는 카를 테오도어 쾨르너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3. 1. 연설에 나타난 유대인 문제
괴벨스는 연설에서 볼셰비즘의 위협을 강조하며, 그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고 주장했다.[5] 그는 "2000년에 달하는 유럽의 역사는 위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하며, 독일이 볼셰비즘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유럽 전체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소련의 총동원을 "악마적"이라고 묘사하며, 독일도 총력전을 통해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괴벨스는 독일이 유대인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유대교를 완전히 그리고 가장 급진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5] 연설 도중 괴벨스는 '제거'를 뜻하는 Ausschaltungde이라는 단어를 말하려다 잠시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음성 기록에는 Aussr....de이라고 말하다가 멈춘 부분이 남아있다.[6] 이는 '유대인 말살'을 암시하는 표현을 사용하려다 중단한 것으로 해석된다.[7]
괴벨스는 청중에게 "여러분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여러분은 필요하다면,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의 전면적이고 철저한 전쟁을 원하는가?"[5] 등의 질문을 던지며 열광적인 반응을 유도했고, 연설은 "자, 국민들이여, 일어나라! 그리고 폭풍이여, 터져라! (Nun Volk, steh’ auf, und Sturm, brich los!de)"라는 문구로 마무리되었다. 이 문구는 카를 테오도어 쾨르너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5]
4. 연설의 특징적인 부분
"총력전을 원하는가? 필요하다면, 오늘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더욱 총력적이고 급진적인 전쟁을 원하는가?"[5], "그대들은 조국의 군단이 되어 총통을 따라 우리 군대를 뒷받침하고, 강한 투지로 전투에 참여하여, 마지막에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될 그날까지, 기꺼이 싸워나가겠는가?"[5]등의 선동적인 문구를 사용했다. 특히 연설의 마지막 구절인 "이제 국민들이여, 감연히 일어나서 폭풍을 일으켜라!"(Nun, Volk, steh auf und Sturm brich los!de)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시인 테오도어 쾨르너의 시에서 인용된 것이다.[5] 이 구절은 아돌프 히틀러가 1920년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행한 연설에서도 인용된 바 있으며, 요제프 괴벨스 또한 1932년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 연설에서 사용했다.[5]
괴벨스는 'Ausschaltungde'(제거)라는 단어를 언급할때, 잠시 멈칫했다.[6] 연설의 맥락상 이 단어는 '제거'를 의미한다.[7] 스포츠 궁전에서 열린 연설에서 연단 윗쪽에는 나치 깃발과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TOTALER KRIEG - KÜRZESTER KRIEG(총력전 - 최단 기간의 전쟁)"이라고 쓰인 깃발이 걸려 있었다.
연설 후, 괴벨스는 알베르트 슈페어에게 이 청중은 독일에서 가장 훈련된 청중이라고 말했다. 괴벨스는 청중을 신중하게 선별하여, 회장을 열광적인 나치즘 신봉자로 가득 채웠다. 한편, 연설이 열린 1943년 2월 18일 뮌헨에서는 백장미단 운동을 주도한 한스 숄과 조피 숄이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5. 연설의 영향 및 결과
수백만 명의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통해 괴벨스가 "지난 몇 주간의 불행"과 "상황에 대한 가감 없는 그림"에 대해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 괴벨스는 이러한 대중의 열광을 모아 히틀러가 전쟁 경제를 운영하는 데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도록 설득하려 했다.[5] 그러나 히틀러는 다른 장관들의 반대에 직면하여 아직 경제를 총력전 체제로 전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1944년 7월 23일, 괴벨스는 마침내 총력전 전권대사로 임명되어 전쟁 노력에 필수적이지 않은 경제 부문을 희생하면서, 국방군과 군수 산업을 위한 인력을 극대화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 연설은 또한 전후 서독, 특히 루르에서 유행한 귓속말 유머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스포츠 궁전에서 열린 연설에서, 나치 깃발과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대문자로 "TOTALER KRIEG - KÜRZESTER KRIEG(총력전 - 최단 기간의 전쟁)"이라고 쓰인 깃발이 있었고, 그 깃발은 연단 윗쪽에 걸려 있었다.
연설 후, 괴벨스는 이 청중은 독일에서 가장 훈련된 청중이라고 알베르트 슈페어에게 말했다.
괴벨스는 청중을 신중하게 선별하여, 회장을 열광적인 나치즘 신봉자로 가득 채웠다.
연설이 열린 1943년2월 18일, 뮌헨에서는 백장미단 운동으로 알려진 한스 숄과 조피 숄 두 사람이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5. 1. 전후 독일 사회의 반응
이 연설은 전후 서독, 특히 루르 지역에서 유행한 귓속말 유머 확산의 계기가 되었다.[5]이러한 유머는 전쟁에 대한 독일인들의 냉소적인 태도를 반영한다.[5]
6. 연설에 대한 평가
괴벨스의 총력전 연설은 나치 선전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5] 대중의 감정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전쟁 수행을 위한 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5] 수백만 명의 독일인들은 라디오를 통해 괴벨스가 "지난 몇 주간의 불행"과 "상황에 대한 가감 없는 그림"에 대해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5] 괴벨스는 이러한 대중의 열광을 모아 히틀러가 전쟁 경제를 운영하는 데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도록 설득하려 했다.[5]
그러나 이 연설은 결국 독일의 패망을 막지 못했으며, 오히려 전쟁 범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히틀러는 다른 장관들의 반대에 직면하여 경제를 총력전 체제로 전환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1944년 7월 23일 괴벨스는 총력전 전권대사로 임명되어 국방군과 군수 산업을 위한 인력을 극대화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 연설 이후 서독, 특히 루르에서는 귓속말 유머가 확산되기도 했다.
6. 1. 한국의 관점에서 본 평가
참조
[1]
서적
Twelve Turning Points of the Second World War
Yale University Press
2011
[2]
웹사이트
The Avalon Project: The Casablanca Conference: 1943
http://avalon.law.ya[...]
Yale Law School
2013-11-19
[3]
서적
Between Two Homelands: Letters across the Borders of Nazi Germany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18-02-16
[4]
서적
Propaganda in War 1939–1945: Organisation, Policies and Publics in Britain and Germany
Routledge & Kegan Paul
1979
[5]
웹사이트
Goebbels' 1943 Speech on Total War
https://research.cal[...]
Calvin University
1998
[6]
Youtube
Goebbels – Do you want Total War? TOTALEN KRIEG
https://www.youtube.[...]
YouTube
2022-01-24
[7]
웹사이트
Goebbels' Total War speech – Collections Search –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https://collections.[...]
2022-01-24
[8]
간행물
Kundgebung im Sportpalast 18.02.1943
Deutsche Wochenschau GmbH
1943-02-24
[9]
문서
Sport: スポーツ, Palast: 宮殿, Rede: 演説
[10]
문서
日時と場所については長野(2001年130頁)参照
[11]
웹인용
Goebbels' 1943 Speech on Total War
https://research.cal[...]
Calvin Universit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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