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송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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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추송웅은 대한민국의 연극 배우, 영화 배우, 텔레비전 드라마 배우였다.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으로 부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1963년 극단 '민중극장'에서 연극 《달걀》로 데뷔하여 8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극단 '가교'와 '광장'의 창립 동인이었다. 1977년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제작, 연출, 연기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80년에는 소극장 "살롱 극장 추"를 개관했다.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두 차례, 한국 연극 영화상 연극 배우상을 수상했으며,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85년 사망했으며, 배우 추상미, 뮤지컬 배우 추상록, 극장주 추상욱이 유족으로 있다.

추송웅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추송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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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1941년 9월 4일
출생지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고성군
사망일1985년 12월 29일 (향년 44세)
사망지서울특별시
국적대한민국
직업배우
활동 기간1963년 ~ 1985년
종교개신교 (침례회)
친척이석준 (사위)
자녀추상욱 (첫째 아들), 추상록 (둘째 아들), 추상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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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계 추씨 - 추미애
  • 추계 추씨 - 추경호

2. 생애

추송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나 부산공업고등학교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1963년 극단 ‘민중극장’ 창립공연 《달걀》로 데뷔하여 80여 편의 작품에서 주·조연을 맡았다. 극단 '가교(架橋)'와 '광장(廣場)'의 창립 동인이었으며, '자유극장' 소속으로 활동했다.

1971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와 1973년 세비야의 이발사로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 1979년에는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한국 연극 영화상 연극 배우상을 받았다. 1980년에는 소극장 "살롱 극장 추"를 개관하기도 했다.

1985년 갑작스럽게 사망했으며, 유족으로는 배우 추상미, 뮤지컬 배우 추상록, 극장주 추상욱이 있다.

2.1.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추송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부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였다.

2.2. 배우 활동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출생하였다. 부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였다. 1963년 극단 ‘민중극장’ 창립공연 때 《달걀》로 데뷔한 이래 80여 편의 작품에서 주·조연을 하였다. 극단 '가교(架橋)'와 '광장(廣場)' 창립동인이기도 한 그는 '자유극장' 소속이었다. 1971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와 1973년 세비야의 이발사로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하였다.

1977년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하여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제작했다. 추송웅은 기획, 제작, 연출, 연기, 분장까지 모든 것을 혼자 도맡았다. 이 연극은 1977년 8월 20일 "3.1로 창고극장"에서 첫 공연을 시작하여, 4개월 동안 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에서 모노드라마 붐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79년에는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한국 연극 영화상 연극 배우상을 수상했다. 1980년, 추송웅은 서양식 레스토랑을 겸한 소극장 "살롱 극장 추"를 개관했다. 그는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2.3. 사망

추송웅은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했으나, 1985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유족으로는 배우 추상미, 뮤지컬 배우 추상록, 극장주 추상욱이 있다.

3. 출연작

추송웅은 1963년 자유극장에 입단하여 연극 '달걀'로 데뷔했다. 1971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와 1973년 '세비야의 이발사'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2회 수상했고, 1979년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한국 연극 영화상 연극 배우상을 받았다. '빨간 피터의 고백'은 기획, 제작, 연출, 연기, 분장을 모두 추송웅 혼자 맡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3.1. 영화

* 1973년 《마음은 푸른 하늘》
* 1975년 《병태의 감격시대》
* 1976년 《7인의 말괄량이》
* 1976년 《여자를 찾습니다
* 1977년 《문》
* 1981년 《반금련

3.2.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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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방송사제목
1980년TBC→KBS1달동네
1983년MBC당신의 초상
1984년KBS1사랑하는 사람들

4. 작품 및 평가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부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였다. 1963년 극단 ‘민중극장’ 창립공연 때 《달걀》로 데뷔한 후 80여 편의 작품에서 주·조연을 맡았다. 극단 '가교(架橋)'와 '광장(廣場)' 창립동인이기도 한 그는 '자유극장' 소속이었다. 1971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1973년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두 번에 걸쳐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독특한 외모와 발성 등 타고난 재능으로 어떤 역할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과장된 연기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977년에는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가 출연한 주요 작품으로는 《토끼와 포수》, 《꿀맛》,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타이피스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슬픈 카페의 노래》 등이 있다.

1963년, 추송웅은 자유극장에 입단하여 연극 달걀로 데뷔했다. 1977년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하여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제작했다. 추송웅은 기획, 제작, 연출, 연기, 분장까지 모두 혼자 맡았다. 이 연극은 1977년 8월 20일 "3.1로 창고극장"에서 첫 공연을 시작하여 큰 인기를 얻으며 4개월 동안 6만 명의 관객을 동원,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에서 모노드라마 붐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71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와 1973년 세비야의 이발사에서의 연기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1979년에는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한국 연극 영화상 연극 배우상을 수상했다.

5.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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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상 이름작품비고
1971년동아연극상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남자연기상
1973년동아연극상세빌리아의 이발사남자연기상
1979년한국연극영화예술상붉은 피터의 고백연극 부문 남자연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