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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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축만제는 조선 후기 수원 화성 서쪽에 축조된 저수지로, 1799년 정조 23년에 수원성 축조 사업의 일환으로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만들어졌다. 화성 서쪽에 위치하여 서호라고도 불렸으며,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축만제는 제방 길이 1,246척, 높이 8척, 두께 7.5척, 수심 7척, 수문 2개의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둔전을 운영하여 수원성 축성고에 수입을 납입했다. 2016년 11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축만제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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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만제 전경
명칭수원 축만제
로마자 표기Suwon Chungmanje
위치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36-1 외
개요
유형경기도의 기념물
지정 번호200호
지정일2005년 10월 17일
면적332997m²
상세 정보
시대미상
특징정조가 축조한 저수지
현재까지도 농업용수로 사용
보존 상태양호
생태 정보
서식 생물서호납줄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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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축조 배경 및 목적

정조는 수원 화성을 건설하면서 도시의 자급자족과 농업 생산 증대를 위해 수리 시설 확충에 힘썼다. 당시 수원성의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호수(四湖)를 만들었는데, 북쪽에는 만석거를, 남쪽에는 만년제를 만들었다. 동쪽에는 현재 위치를 알 수 없는 호수가 있었고, 서쪽에는 축만제가 만들어졌다. 축만제는 국둔전을 통해 관리되었으며, 여기서 발생한 수입은 수원성의 축성고에 납입되었다.

2.1. 축조 배경

1799년 (정조 23) 수원 화성 건설과 함께 진행된 사업의 일환으로 축조되었다. 내탕금 3만 냥이 투입되었다. 당시 수원성의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호수(四湖)를 만들었는데, 축만제는 화성 서쪽 여기산 아래에 축조한 저수지이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로 불리고 있다.

2.2. 축조 목적

정조는 수원 화성 인근 농경지에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하여 생산량을 늘리고, 이를 통해 화성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강화하고자 했다. 정조는 1799년(정조 23)에 수원성을 쌓으면서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축만제를 축조하였다. '축만제'라는 이름에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화성 서쪽에 있어 서호로도 불린다.

3. 구조 및 특징

축만제는 제방, 수문, 주변 식생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시의 축조 기술을 잘 보여준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라고도 불린다.

3.1. 규모 및 시설

문헌에 따르면 제방의 길이는 1,246척, 높이 8척, 두께 7.5척, 수심 7척, 수문 2개로 되어 있다. 제방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에 따라 심은 듯 아직도 고목들이 서 있다.

3.2. 둔전 운영

축만제 인근에는 축만제둔(祝萬堤屯)을 설치하여 국둔전을 운영하였다. 둔전에서 얻은 수입은 수원성의 축성고(築城庫)에 납입되어 화성 건설 및 운영에 사용되었다.

4. 역사적 가치 및 의의

축만제는 조선 후기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축조한 저수지이다. 1799년(정조 23) 수원성을 쌓을 때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축조하였다. 당시 수원성의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호수(四湖)를 만들었는데, 축만제는 이 중 서쪽에 위치한다. 제방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에 따라 심은 듯한 고목들이 서 있으며, 축만제둔(祝萬堤屯)을 설치하여 여기서 생기는 수입은 수원성의 축성고(築城庫)에 납입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제방 아래 몽리구역의 농지는 둔전(국둔전)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4.1. 서호(西湖)

축만제는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라고도 불렸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4.2.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 등재

축만제는 2016년 11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5. 현대적 활용 및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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