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익부
1. 개요
충익부는 조선 시대의 관청으로, 정확한 설립 시기는 불분명하나 세조 시대에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충익사는 충익부로, 다시 충익위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숙종 때 충훈부에 소속되면서 폐지되었다. 기묘사화와 관련하여 조광조가 반정공신들의 공신 칭호 남발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주요 관직으로 도사가 있었으며, 종5품 2명을 두었다.
| hangeul: 충익부 | |
| hanja: 忠翊府 | |
| hiragana: ちゅうよくふ | |
| katakana: チュンイク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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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나라별 정부 기관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나라별 정부 기관 -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대한민국 고용노동부는 고용, 노동 관련 사무를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사회부 노동국에서 출발하여 노동청, 노동부를 거쳐 2010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고용정책, 근로조건, 노사관계, 산업안전보건 등의 업무를 관장한다. -
조선의 행정기관 -
포도청
포도청은 조선시대에 도적을 잡고 치안을 유지하던 관청으로, 성종 때 임시직으로 시작하여 좌·우 포도청으로 나뉘어 운영되다가 갑오경장 때 경무청으로 개편되며 폐지되었으며, 천주교 박해에도 관여하였다. -
조선의 행정기관 -
승정원
승정원은 조선시대에 왕명 출납을 담당한 국왕 직속 비서 기관으로, 중추원에서 시작하여 승추부로 확대 후 다시 승정원으로 개편되어 육조 업무 분담, 국정 자문, 정보 기관 역할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다 갑오개혁 이후 승선원을 거쳐 궁내부 시종원으로 업무가 이관되었다.
2. 연혁
조선왕조실록에 충익부(忠翊府)의 설립 시기가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와 어느 왕 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세조 때 충익부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충익부는 다음과 같이 여러 차례 명칭과 지위가 바뀌었다.
* 1456년(세조 2년) 6월 8일: 이조의 요청으로 충익부를 충익사(忠翊司)로 개칭하였다.
* 1466년(세조 12년) 1월 15일: 충익사를 충익부로 개칭하고 도사 2인을 두었다.
* 1506년(연산군 12년) 1월 6일: 충익부를 충익사로 강등하고 도사를 없애고 무록관 2인을 두었다.
* 1616년(광해군 8년) 4월 17일: 충익부를 충익위(忠翊衛)로 개칭하고 원종고신을 번갈아 근무하게 하였다.
* 1701년(숙종 27년) 12월 27일: 충익부를 충훈부에 소속시키면서 폐지하였다.
2.1. 명칭 및 지위 변화
* 1456년(세조 2년) 6월 8일, 이조의 요청으로 충익부를 충익사(忠翊司)로 개칭하였다.
* 1466년(세조 12년) 1월 15일, 충익사를 충익부로 개칭하고 도사 2인을 두었다.
* 1506년(연산군 12년) 1월 6일, 충익부를 충익사로 강등하고 도사를 없애고 무록관 2인을 두었다.
* 1616년(광해군 8년) 4월 17일, 충익부를 충익위(忠翊衛)로 개칭하고 원종고신을 번갈아 근무하게 하였다.
* 1701년(숙종 27년) 12월 27일, 충익부를 충훈부에 소속하게 하였다.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