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티넨탈 농구 협회
1. 개요
컨티넨탈 농구 협회(CBA)는 1946년 창설된 북미의 프로 농구 리그로, NBA보다 6개월 먼저 출범했다. 동부 펜실베이니아 농구 리그(EPBL)로 시작하여 동부 프로 농구 리그(EPBL)를 거쳐 1978년 CBA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NBA의 공식 개발 리그 역할을 수행하며 3점 슛 라인 도입 등 농구 규칙 혁신에 기여했으나, 1999년 아이제이아 토마스 인수 이후 경영난으로 2001년 파산했다. 이후 재건되었으나 참가 팀 감소로 2009년 리그 운영이 중단되었다.
| 종목 | 농구 |
|---|---|
| 대륙 | FIBA 아메리카 (아메리카) |
| 이전 명칭 | EPBL (1946년 ~ 1970년) EBA (1970년 ~ 1978년) |
| 커미셔너 | 데니스 트룩스 |
| 마지막 우승팀 | 로턴-포트 실 캐벌리 (3회 우승) |
|---|---|
| 최다 우승팀 | 앨런타운 제츠 (8회 우승) 윌크스배리 배런스 (8회 우승) |
| 웹사이트 | cbhoopsonline.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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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설립된 스포츠 리그 -
전미 농구 협회
전미 농구 협회(NBA)는 1946년 BAA에서 시작하여 NBL과의 합병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춘 북미 프로농구 리그로, 미국과 캐나다 30개 팀이 동/서부 콘퍼런스에서 경쟁하며, 세계적인 선수 배출과 사회 공헌 활동으로 농구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
1946년 설립된 스포츠 리그 -
아메리카 농구 협회
아메리카 농구 협회(BAA)는 경기장 소유주들이 아이스하키 경기장이 비는 날짜에 경기장을 활용하기 위해 창설된 미국의 프로 농구 리그로, 전미 농구 리그(NBL)와의 합병을 통해 전미 농구 협회(NBA)가 되었으며, NBA의 토대를 마련한 주요 리그로 평가받는다. -
2001년 설립된 스포츠 리그 -
NBA G 리그
NBA G 리그는 NBA의 하부 리그로서 선수 육성 및 NBA 진출을 지원하며, 2001년 NBDL로 시작하여 NBA D-리그를 거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고, NBA 팀과의 제휴 운영 및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NBA 선수 배출에 기여한다. -
2001년 설립된 스포츠 리그 -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시작된 최상위 프로 축구 리그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초창기 지배 후 여러 팀들이 경쟁하는 구도를 형성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UEFA 주관 대회 출전 금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1946년 설립 -
경상남도체육회
경상남도체육회는 1945년 경상남도체육협회로 설립되어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부산, 울산광역시체육회 분리 및 학교, 생활체육회를 흡수하고 회장, 사무처 등을 갖춘 조직으로 8개 시와 10개 군에 지부를 둔다. -
1946년 설립 -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1946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창간된 대한민국의 종합 일간지로, 과거 언론 탄압과 강제 통합을 겪었으나 한화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 후 사원주주회사로 출범하여 현재는 진보 성향의 언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역사
컨티넨탈 농구 협회(CBA)는 NBA보다 6개월 앞선 1946년 4월 23일 'Eastern Pennsylvania Basketball League'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이후 1948년 'Eastern Professional Basketball League'(EPBL)로, 다시 1978년 현재의 명칭인 'Continental Basketball Association'(CBA)으로 변경되었다.
CBA는 프로 농구 리그 중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64년에 3점슛 라인을 도입했는데, 이는 1961년 아메리칸 농구 리그(ABL)가 처음 도입한 지 3년 만이었으며, NBA가 1979년에 도입하기 15년 전의 일이다.
1980년대 초에는 NBA와 협정을 맺고 선수 10일 계약 제도를 운영하며 한때 NBA의 공식적인 선수 육성 리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현재 이러한 협정은 맺고 있지 않지만, 10일 계약 제도 자체는 NBA에 남아 있다.
1999년에는 전 NBA 스타 아이재이아 토마스가 이끄는 투자 그룹에 인수되었으나, 경영난을 겪으며 2001년 파산을 선언하고 잠시 해체되었다. 당시 리그 소속 팀들은 인터내셔널 농구 리그(IBL) 참가를 강요받았다. 같은 해 가을, CBA와 IBL 참가 팀들은 인터내셔널 농구 협회(IBA)와 협력하여 파산 법원(미국 파산 법원)으로부터 리그 명칭, 로고, 기록 등 소멸되었던 자산을 다시 사들여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재개 이후 참가 팀은 계속 줄어들었고, 2009-10 시즌에는 팀이 하나만 남아 리그 개최가 불가능해지면서 결국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2.1. 창립과 초기 (1946년 ~ 1970년대)
컨티넨탈 농구 협회(CBA)는 1946년 4월 23일, '동부 펜실베이니아 농구 리그'(Eastern Pennsylvania Basketball League)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이는 NBA의 창립보다 두 달 앞선 것으로, CBA는 스스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농구 리그"라고 내세우는 근거가 되었다. 초기 리그는 펜실베이니아주를 중심으로 6개의 팀으로 구성되었는데, 올랜타운, 헤이즐턴, 랜캐스터, 리딩, 윌크스배리 등 5개 팀이 펜실베이니아에 있었고, 나머지 한 팀인 빙엄턴은 뉴욕주에 있었으나 시즌 중 펜실베이니아주의 팟츠빌로 연고지를 옮겼다.
1948년, 리그는 '동부 프로 농구 리그'(Eastern Professional Basketball League, EPBL)로 명칭을 변경하고 영역을 확장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윌리엄스포트, 스크랜턴, 선베리를 비롯하여 뉴저지주의 트렌턴, 캠든, 애슈버리 파크,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 하트퍼드, 브리지포트, 그리고 델라웨어주의 윌밍턴, 매사추세츠주의 스프링필드 등지에 새로운 팀들이 생겨났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당시 NBA의 많은 팀들은 팀 내 흑인 선수 수를 제한하는 비공식적인 쿼터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행 때문에 NBA에서 뛰기 어려웠던 많은 우수한 흑인 선수들이 EPBL과 같은 다른 프로 리그에서 활약할 기회를 찾았다. EPBL 경기는 미국 북동부 지역의 작고 때로는 연기 자욱한 체육관에서 열렸지만, 빠르고 격렬한 플레이 스타일과 NBA 쿼터제로 인해 밀려난 실력 있는 선수들이 모여들면서 수준 높은 경기를 선보였다.
리그는 혁신적인 시도도 했는데, 1961년 미국 농구 리그(ABL)가 도입했던 3점슛 라인을 1964년-1965년 시즌에 도입했다. 이는 NBA가 1979년에 3점슛을 도입한 것보다 15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당시에는 3점슛이 흔하지 않았지만, EPBL은 이를 활용하는 뛰어난 득점원들을 배출하며 리그의 재미를 더했다.
1970년-1971년 시즌, 리그는 다시 '동부 농구 협회'(Eastern Basketball Association, EBA)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 시기 EBA는 미국 북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 리그로서, NBA와 당시 경쟁 리그였던 ABA에 선수를 공급하는 비공식적인 팜 시스템 역할을 수행했다. 리그의 초대 커미셔너는 전 NBA 심판 멘디 루돌프의 아버지인 해리 루돌프였으며, 1975년에는 현재 농구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스티브 A. 카우프만이 그의 뒤를 이어 커미셔너가 되었다.
2.2. CBA로의 변화와 확장 (1970년대 ~ 1990년대)
1948년 'Eastern Professional Basketball League'(EPBL)로 명칭을 변경한 지 30년 후인 1978년, 리그는 다시 '컨티넨탈 농구 협회'(Continental Basketball Association, CBA)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0년대 초에는 NBA와 협정을 맺어, NBA 팀이 CBA 소속 선수와 10일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첫 10일 계약 이후 한 번 더 10일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으며, 그 기간이 끝나면 해당 선수를 다시 CBA로 돌려보내거나 시즌이 끝날 때까지 정식 계약을 해야 했다. 이를 통해 CBA는 한때 NBA의 공식적인 선수 육성 리그 역할을 수행했다.
2.3. 아이제이아 토마스의 인수와 파산 (1999년 ~ 2001년)
1999년, 전 NBA 선수인 아이재이아 토마스가 이끄는 투자 그룹이 CBA를 인수했다. 토마스는 2000년까지 구단주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CBA는 경영 악화의 여파로 2001년에 파산을 선언하여 일시적으로 사실상 해체되었다. 당시 가맹 팀들은 인터내셔널 농구 리그(IBL) 참가를 강요받았다.
2.4. 재건과 운영 중단 (2001년 ~ 2009년)
1999년 전 NBA 선수 아이재이아 토마스가 이끄는 투자 그룹이 CBA를 인수했으나, 경영 악화로 2001년 파산을 선언하고 리그는 일시적으로 해체되었다. 당시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팀들은 인터내셔널 농구 리그(IBL)에 참가해야 했다.
하지만 2001년 가을, CBA와 IBL 참가 팀들은 인터내셔널 농구 협회(IBA)와 협력하여 재기를 모색했다. 이들은 법원(미국 파산 법원)으로부터 CBA의 명칭, 로고, 기록 등 소멸되었던 자산을 다시 사들였다. 이를 통해 CBA라는 이름으로 리그 활동이 재개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출범 이후 참가 팀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결국 2009-10 시즌에는 리그에 팀이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어 정상적인 리그 운영이 불가능해졌고, CBA는 다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3. NBA와의 관계
초기 EPBL(이스턴 리그) 시절, NBA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다. NBA는 EPBL 선수의 영입을 거부하기도 했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는 보스턴 셀틱스가 EPBL의 윌크스배리 배런스 홈 코트에서 친선 경기를 갖는 등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954년 승부 조작 스캔들에 연루된 대학 선수들(잭 몰리나스, 셔먼 화이트, 플로이드 레인, 앨빈 로스 등)과 EPBL이 계약하면서 NBA와의 친선 경기는 다시 중단되었다. EPBL은 승부 조작 혐의로 NBA에서 영구 제명된 켄터키 대학교 출신 센터 빌 스파이비와도 계약했다. 그럼에도 몇 시즌 후 친선 경기는 재개되었고, 1956년에는 EPBL의 윌크스배리 배런스가 홈에서 NBA의 시러큐스 내셔널스를 꺾기도 했다. 또한, 학업 문제로 NBA 진출이 막힌 선수들에게 EPBL은 기회를 제공했는데, 레이 스콧은 EPBL의 올랜타운 제츠에서 뛰다가 나중에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합류했다.
1967년 ABA가 창설되면서 라번 타트, 윌리 소머셋, 아트 헤이먼, 월트 사이먼 등 EPBL의 주요 선수들이 대거 ABA로 이적했고, 리그는 축소되었다. 1976년 ABA-NBA 합병으로 해체된 ABA 팀의 선수들이 EPBL로 유입되면서 리그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1979년, 리그 명칭을 CBA로 변경한 후 NBA가 CBA 소속 선수 4명과 계약했지만, CBA는 이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NBA를 고소했다. 소송은 합의로 마무리되었고, NBA는 언제든지 CBA 선수와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대가로 CBA에 115를 지불했다. 또한 NBA 심판 육성을 위해 80를 추가로 지불했다. 이 시기 NBA는 CBA 선수를 NBA 최저 연봉으로 10일간 기용할 수 있는 '10일 계약' 제도를 만들었다. NBA 팀은 선수를 두 번의 10일 계약 기간 동안 활용한 후, CBA 팀으로 돌려보내거나 잔여 시즌 계약을 해야 했다. CBA 팀은 10일 계약마다 보상을 받았다.
1980년 CBA는 NBA의 공식 개발 리그가 되었다. CBA 팀은 NBA 제휴 팀에서 방출된 선수에 대한 독점 권리를 가졌고, NBA 팀은 어떤 CBA 팀의 선수와도 계약할 수 있었다. 1982년 디트로이트 스피리츠의 창단은 NBA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같은 연고지를 사용하게 되면서 양 리그 간의 긴장을 유발했다. NBA는 소송을 제기하고 한때 CBA 선수 계약을 중단했지만, 협상을 통해 10일 계약 협정을 맺으며 관계를 회복했다. 1986년에는 54명의 전 CBA 선수가 NBA에서 활약했다.
1987년, CBA는 NBA에서 마약류 사용으로 출전 금지된 선수와 계약하는 것을 허용했다. 코카인 사용으로 NBA 징계를 받은 미첼 위긴스는 이 새로운 규정에 따라 CBA와 계약한 첫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1993-94 시즌에는 NBA 선수 연례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어 기존의 제휴 관계를 대체했다. 이 드래프트를 통해 CBA 팀은 NBA 로스터에서 방출된 선수와 독점적으로 협상할 권리를 영구적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양 리그의 관계는 더욱 발전했다. 팀 레글러(오마하 레이서스), 마리오 엘리(올버니 패트룬스), 존 스타크스(시더 래피즈 실버 불릿츠) 등 많은 CBA 스타들이 NBA 무대를 밟았다. 또한 필 잭슨(올버니 패트룬스), 빌 머슬먼(탬파베이 스릴러스), 에릭 머슬먼(래피드 시티 스릴러스), 플립 손더스(라크로스 캣버즈), 조지 칼(몬태나 골든 너겟츠) 등 CBA 출신 감독들이 NBA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2001년, NBA는 자체 마이너 리그인 NBA G 리그(당시 NBDL)를 창설했다. 2005-06 시즌 종료 후, 4개의 CBA 프랜차이즈가 NBDL로 이적했다. 2006-07 시즌에는 CBA에서 NBA로 콜업된 선수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으면서, 30년 이상 이어져 온 연례 콜업 기록이 깨졌다. 이는 CBA의 쇠퇴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4. 규칙 및 혁신
CBA의 경기 규칙은 대부분 NBA와 유사한 방식을 따랐다. 2005년부터는 승점제를 도입하여 정규 시즌 후 상위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승점은 한 경기에서 최대 7점까지 획득할 수 있었는데, 경기에서 승리하면 3점을 받고, 각 쿼터에서 상대 팀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할 때마다 1점씩 추가로 받는 방식이었다.
5. 역대 커미셔너
| 대수 | 이름 | 임기 |
|---|---|---|
| 1 | 윌리엄 모건 | 1946년~1955년 |
| 2 | 해리 루돌프 | 1955년~1970년 |
| 3 | 윌리엄 몽즈먼 | 1970년~1975년 |
| 4 | 스티브 A. 코프먼 | 1975년~1978년 |
| 5 | 짐 드러커 | 1978년~1986년 |
| 6 | 칼 쉬어 | 1986년~1987년 |
| 7 | 마이크 스토렌 | 1987년~1988년 |
| 8 | 제이 램스델 | 1988년~1989년 |
| 9 | 제리 셰멜 | 1989년~1990년 |
| 10 | 어브 카제 | 1990년~1991년 |
| 11 | 터르데마 어서리 | 1991년~1993년 |
| 12 | 마크 램핑 | 1993년~1994년 |
| 13 | 톰 발디세리 | 1994년~1996년 |
| 14 | 스티브 패터슨 | 1996년~1998년 |
| 15 | 게리 헌터 | 1998년~1999년 |
| 16 | 아이재이아 토마스 | 1999년~2000년 |
| 17 | 돈 웰시 | 2000년~2001년 |
| 18 | 게리 헌터 | 2001년~2006년 |
| 19 | 짐 코인 | 2006년 |
| 20 | 데니스 트룩스 | 2006년~2009년 |
5.2. EBA (1970년 ~ 1978년)
* 윌리엄 몽즈먼 (William Montzman영어) (1970년 ~ 1975년)
* 스티브 A. 카우프만 (Steve A. Kauffman영어) (1975년 ~ 1978년)
5.3. CBA (1978년 ~ 2009년)
1979년 NBA는 새롭게 이름을 바꾼 CBA에서 4명의 선수를 영입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아 CBA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소송은 합의로 마무리되었고, NBA는 CBA 선수 계약 권리에 대한 대가로 115를, CBA에서 NBA 심판을 육성하는 비용으로 추가 80를 지불했다. 이 시기 NBA는 '10일 계약' 제도를 도입하여, NBA 팀이 CBA 선수를 NBA 최저 연봉의 비례 배분 원칙에 따라 10일간 계약할 수 있게 했다. 팀은 두 번째 10일 계약까지 가능했으며, 이후에는 선수를 CBA 팀으로 돌려보내거나 잔여 시즌 계약을 해야 했다. CBA 팀은 10일 계약마다 보상을 받았다.
1980년 CBA는 NBA의 공식적인 개발 리그가 되었다. CBA 팀은 제휴 NBA 팀에서 방출된 선수에 대한 독점권을 가졌고, NBA 팀은 어느 CBA 팀의 선수와도 계약할 수 있었다. 1986년까지 54명의 전 CBA 선수가 NBA 무대를 밟았다.
1987년 CBA는 약물 사용으로 NBA에서 출전 금지된 선수와 계약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NBA와 NBA 선수 협회가 공동 시행한 새 규정에 따라, 약물 문제로 징계를 받은 미첼 위긴스는 이 정책 하에 CBA와 계약한 첫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1993-94 시즌, 기존의 NBA-CBA 제휴 관계는 NBA 선수 연례 드래프트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를 통해 CBA 팀은 특정 NBA 선수가 방출될 경우 해당 선수와 독점적으로 협상할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드래프트된 선수에 대한 영구적인 독점권을 소유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동안 CBA는 NBA의 중요한 인재 공급처 역할을 했다. 팀 레글러(오마하 레이서스), 마리오 엘리(올버니 패트룬스), 존 스타크스(시더 래피즈 실버 불릿츠) 등 많은 선수들이 CBA를 거쳐 NBA 스타로 발돋움했다. 또한 필 잭슨(올버니 패트룬스), 빌 머슬먼(탬파베이 스릴러스), 에릭 머슬먼(래피드 시티 스릴러스), 플립 손더스(라크로스 캣버즈), 조지 칼(몬태나 골든 너겟츠)과 같은 유능한 감독들도 CBA에서 경력을 쌓아 NBA로 진출했다. 그러나 2001년 NBA가 자체 마이너 리그인 NBA G 리그(NBDL)를 창설하면서 CBA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었다. 2005-06 시즌 종료 후, 3개의 기존 CBA 팀과 1개의 확장 팀이 NBDL로 이동했다. 결국 2006-07 시즌에는 30년 이상 이어져 온 CBA에서 NBA로의 선수 콜업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으면서, CBA의 몰락이 가시화되었다.
CBA는 기본적으로 NBA 등 대부분의 프로 리그와 유사한 농구 규칙을 따랐지만, 팬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리그 활성화를 위해 여러 독자적인 규칙을 실험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일부 규칙은 나중에 다른 리그에도 채택되었다. 특히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커미셔너를 역임한 짐 드러커는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규칙과 프로모션을 도입했다.
주요 규칙 변경 및 특징
* 7점제 (Seven-Point System): 시즌 순위를 승률 대신 '7점제'로 결정했다. 경기 승리 시 3점, 각 쿼터에서 상대보다 많은 득점을 올릴 때마다 1점을 부여했다(쿼터 동점 시 0.5점). 팀 순위는 누적된 점수로 매겨졌다.
* 퇴장 없는 파울 규정: 선수는 6번째 개인 파울 이후에도 퇴장당하지 않았다. 대신, 6번째 파울부터는 상대 팀에게 자동으로 자유투가 주어졌다.
* 연장전 규칙 변경: 1982-83 시즌과 1983-84 시즌에는 연장전에서 먼저 3점을 득점하는 팀이 승리했다. 1984-85 시즌부터는 3점 차이로 앞서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 규칙은 1987-88 시즌에 표준적인 5분 연장전으로 대체되었다.
* 노콜 박스 (No-Call Box): 1981-82 시즌, 골대 앞 약 1.83m x 약 1.52m 크기의 '노콜 박스'를 도입했다. 이 구역 내에서 발생하는 공격자와 수비수 간의 접촉은 자동으로 수비자 파울로 간주되었다. 슛 시도를 장려하려는 목적이었으나, 혼란을 야기하여 곧 폐지되었다. 박스 대신 아크를 사용하는 변형된 형태는 2002년 NBA와 이후 NCAA에서 채택되었다.
* 3점슛 파울 시 자유투 3개: 1984년 5월 리그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3점슛 시도 중 파울을 당하면 자유투 3개를 부여했다. 이 규칙은 나중에 농구 전반에 채택되었다.
* [[개인 파울(농구)#전략|클리어 패스 파울 (Clear Path Foul)]]: 1984년 5월 도입되었다.
* 쿼터별 점프볼: 1985년 10월, 매 쿼터 시작 시 점프볼을 실시하는 규칙이 시행되었다.
* 기타 변경 사항: 1985년 10월, 슬램덩크 통계를 공식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선수 명단은 9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ABA(아메리칸 농구 협회)에서 사용했던 것과 유사한 빨강, 흰색, 파랑색의 공을 1985-86 시즌에 사용했다. 1987년 6월에는 정규 시즌 경기 수를 54경기로 늘렸다.
주요 프로모션
* 환불 보장 및 내셔널 시즌 티켓: 1980년대 초, 2쿼터 시작 전 경기장을 떠나는 팬에게 입장료를 환불해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또한, 자신의 거주지에서 약 160.93km 이내에서 열리는 모든 CBA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내셔널 시즌 티켓'도 판매했다.
* 백만 달러 슛 (Million Dollar CBA SuperShot): 1984년부터 1986년까지 하프타임에 무작위로 선정된 팬이 코트 3/4 지점에서 슛을 성공하면 1 연금을 지급하는 이벤트였다. 실제로 상금을 탄 사람은 없었으나, 1986년 탬파에서 열린 CBA 올스타 게임의 'CBA 이지 스트릿 슛아웃'에서 돈 매팅리라는 팬이 1 상당의 제로쿠폰 채권에 당첨되었다.
* 기타 프로모션: 파울 슛 성공 시 약 907.18kg의 1센트 동전( 5 상당)을 증정하는 '톤 오브 머니 프리 스로우', 팬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려 자동차 선루프에 넣으면 해당 차량을 경품으로 받는 '플라이인, 드라이브 어웨이' 등의 이벤트가 있었다. 1984년 캐스퍼 올스타 게임에서는 팬이 포드 썬더버드를 경품으로 받았다.
* 해설자 선발 콘테스트: 1985년 10월, 방송 경험이 없는 일반 팬을 대상으로 'CBA 게임 오브 더 위크' 해설자를 선발하는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역대 커미셔너 (1978년 ~ 2009년)
6. 참가팀
컨티넨탈 농구 협회(CBA)에는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도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들이 참가했다. 다코타 위저즈, 수폴스 스카이포스, 아이다호 스탬피드 등 여러 팀이 리그를 거쳐갔으며, 이들 중 일부는 이후 NBA G 리그 등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리그 자체가 여러 차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2009년을 끝으로 운영이 중단되면서 현재 활동 중인 팀은 없다. 아래는 리그 후기(주로 2001년 ~ 2009년)에 참가했던 주요 팀들의 목록이다.
6.1. 아메리칸 컨퍼런스
* 올버니 패트룬스 (뉴욕주 올버니)
* 애틀랜타 크렁크 (조지아주 애틀랜타)
* 이스트 켄터키 마이너스 (켄터키주 파이크빌)
* 미노트 스카이로케츠 (노스다코타주 미노트)
* 피츠버그 익스플로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