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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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드로스는 고대 아테네의 마지막 왕으로, 기원전 1068년 도리아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 델포이 신탁에 따라 아테네 왕이 죽으면 도리아인의 침략이 실패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코드로스는 농부로 변장하여 적진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희생으로 도리아인들은 물러갔고, 이후 아테네는 왕정을 폐지하고 집정관 체제로 전환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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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로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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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로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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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 | 아테네의 왕 |
통치 기간 | 기원전 1089년 – 기원전 1068년 |
자녀 | 메돈 아카스투스 |
2. 생애와 희생
기원전 1068년경 도리아인이 펠로폰네소스를 침입했을 때, 델포이 신탁은 아테네 왕이 죽어야만 아테네가 안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1] 이 소식을 들은 코드로스는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농부로 변장하여 도리아 진영으로 가 병사들과 다툼을 벌이다 죽음을 맞이했다.[1] 코드로스가 처형된 것을 안 도리아인들은 예언대로 패배를 예감하고 물러났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이 사건 이후 아무도 코드로스를 계승할 자격이 없다고 여겨 왕정이 폐지되고 집정관 제도가 시작되었으며, 첫 집정관은 코드로스의 아들 메돈이었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서는 코드로스의 애국심에 감동한 백성들이 그의 아들 메돈을 마지막 왕으로 옹립하고 그 뒤를 집정관 체제로 바꾸었다고도 한다.
2. 1. 도리아인의 침입과 델포이 신탁
도리아인의 펠로폰네소스 침입 시(기원전 1068년) 히포테스의 아들 알레테스 휘하의 도리아인들은 델포이 신탁에 조언을 구했다. 델포이 신탁은 아테네 왕이 다치지 않으면 침입이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했다.[1] 이 예언은 코드로스의 귀에 빠르게 들어갔고, 그는 백성을 위해 농부로 변장하고 강을 건너 도리아 진영 근처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도리아 병사들을 자극하여 싸움을 벌이다 죽었다.[1] 도리아인들은 코드로스가 처형된 것을 알고 예언된 패배를 두려워하여 물러났다.[1]2. 2. 코드로스의 자기희생
도리아인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침입했을 때(기원전 1068년), 히포테스의 아들 알레테스 휘하의 도리아인들은 델포이 신탁에 조언을 구했다. 그들은 왕이 다치지 않으면 침입은 성공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아테네의 왕만이 죽어야 아테네가 안전할 것이라는 신탁은 빠르게 코드로스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백성들을 위해 농부로 변장하고 강을 건너 도리아 진영 근처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도리아 병사들을 도발하여 싸움을 벌였고, 그 결과 죽임을 당했다. 코드로스가 죽은 것을 안 도리아인들은 예언된 패배를 두려워하여 물러나기로 결심하였다.3. 코드로스 사후 아테네의 변화
코드로스가 도리아인과의 전투에서 희생한 이후, 아테네인들은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왕정이 폐지되고 집정관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3. 1. 왕정 폐지와 집정관 제도
일부 전승에 따르면, 아테네인들은 코드로스만큼 훌륭한 왕이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하여 왕정을 폐지하고, 코드로스의 아들 메돈을 첫 번째 집정관으로 선출했다. 다른 전승에서는 코드로스의 애국심에 감동한 백성들이 그의 아들 메돈을 최후의 왕으로 옹립하고, 그 뒤를 이어 집정관 체제로 변화시켰다고 한다.참조
[1]
서적
New Century Classical Handbook
https://archive.org/[...]
Appleton-Century-Crofts
[2]
서적
Century Cyclopedia of Names
https://archive.org/[...]
Century
[3]
EB1911
Codrus
[4]
서적
The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Biographical Note
[5]
문서
Diogenes Laertius Plato 1
[6]
문서
Lycurgus, Against Leocrates, 84-87
[7]
웹사이트
Aristotle Constitution of Athens 3
https://sites.ualber[...]
2017-08-08
[8]
문서
그의 아들 메돈이 최후의 왕이라는 다른 전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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