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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안흥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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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안 안흥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해안의 안흥마을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조선 시대 중국 사신을 맞이하고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둘레 약 1500m, 높이 3~4m의 성벽을 갖추었으며, 조선 효종 때 19개 군민을 동원하여 축성되었다. 동, 서, 남, 북 4곳에 성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입구만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20여 호의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동문 쪽에 김좌근의 불망비와 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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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안흥진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안흥성
안흥성
이름안흥성
한자 표기安興城
국가대한민국, 충청남도
위치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상세 정보
유형기념물
지정 번호11
지정일1973년 12월 24일
시대조선시대
면적67,708m2
문화재청 ID23,00110000,34

2. 역사

성의 둘레는 약 1500m이고, 성벽의 높이는 3∼4m이다. 동·서·남·북 4곳에 성문을 설치했는데, 그 형체가 뚜렷하게 남아있어 당시 성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문은 수성루, 남문은 복파루, 서문은 수홍루, 북문은 감성루라 하였으나, 현재는 입구만 남아 있다.[1]

성안에는 20여 호의 가구가 살고 있으며, 동문 쪽에 영의정 김좌근의 불망비와 비각이 있다.[1]

2. 1. 축성 배경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해안의 안흥마을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본래 ‘안흥진성’이었으나 보통 안흥성이라 부르고 있다. 이 곳은 조선 시대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며, 또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1]

조선 효종 때 경기도 선비 김석견이 성을 쌓을 것을 상소하자, '이 지역은 바닷가에서 10여 리 튀어나와 있는 천연의 요새지이므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양식을 저장하면 훌륭한 진영이 될 것이다'라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당시 인근 지역 19개 군민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1]

2. 2. 축성 과정

조선 효종 때 경기도 선비 김석견이 성을 쌓을 것을 상소하자, '이 지역은 바닷가에서 10여 리 튀어나와 있는 천연의 요새지이므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양식을 저장하면 훌륭한 진영이 될 것이다'라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당시 인근 지역 19개 군민을 동원하여 태안 안흥진성을 쌓았다.[1]

3. 구조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해안의 안흥마을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본래 ‘안흥진성’이었으나 보통 안흥성이라 부르고 있다. 이 곳은 조선시대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며, 또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조선 효종 때 경기도 선비인 김석견이 성을 쌓을 것을 상소하자, '이 지역은 바닷가에서 10여 리 튀어나와 있는 천연의 요새지이므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양식을 저장하면 훌륭한 진영이 될 것이다'라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당시 인근 지역 19개 군민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3. 1. 성벽 및 성문

안흥진성의 성벽 둘레는 약 1500m이고, 높이는 3∼4m이다. 동·서·남·북 4곳에 성문이 설치되었으며, 그 형체가 뚜렷하게 남아있어 당시 성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문은 수성루, 남문은 복파루, 서문은 수홍루, 북문은 감성루라 하였는데, 현재는 입구만 남아 있다.[1]

3. 2. 내부 시설

성 안에는 20여 호의 가구가 살고 있으며, 성 안 동문 쪽에는 영의정 김좌근의 불망비와 비각이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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