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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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좌근은 신 안동 김씨 가문의 일원으로, 순원왕후의 친정 오빠이자 순조의 매형이다. 1838년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철종 대에는 영의정을 세 차례 역임하며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이끌었다. 흥선대원군의 섭정에 반대했으나 고종 즉위 후 원로대신 자격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1869년 사망 후 충익의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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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좌근 | |
|---|---|
| 기본 정보 | |
| 한글 이름 | 김좌근 |
| 한자 이름 | 金左根 |
| 로마자 표기 | Gim Jwa-geun |
| 관직 | |
| 영의정 | 재임 시작: 1863년 10월 20일 재임 종료: 1864년 5월 23일 이전: 정원용 이후: 조두순 |
| 우의정 | 재임 시작: 1852년 6월 13일 재임 종료: 1853년 4월 3일 이전: 이헌구 이후: 조두순 |
| 영의정 | 재임 시작: 1853년 4월 3일 재임 종료: 1859년 2월 14일 이전: 김흥근 이후: 정원용 |
| 개인 정보 | |
| 출생 | 1797년 |
| 사망 | 1869년 6월 5일 |
| 아버지 | 김조순, 연안부원군 |
| 어머니 | 청송 심씨 청양부부인 |
2. 생애
김좌근은 1797년 안동 김씨(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신 안동 김씨한국어) 일원으로, 아버지 김조순과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2] 1802년, 그의 누이 순원왕후는 순조의 계비가 되어 조선의 왕비가 되었다.
1825년, 아버지 김조순의 추천으로 무품관직인 부수(副率)가 되었고, 1834년 상의원 첨정(尙衣院僉正)으로 승진했다.[3] 183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41세에 진사가 되었고, 183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3] 이후 부교리,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거쳐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사헌부대사헌, 병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3]
철종 즉위년인 1850년 이후 의정부 우참찬, 선혜청 당상 등에 보직되었으며, 금위대장, 총융사, 형조판서, 훈련대장, 공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을 역임하는 등 외관직 경험 없이 순탄한 벼슬 생활을 하였다.[3]
1853년부터 1863년까지 세 차례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며,[3] 1862년 임술 농민 봉기(삼정의 문란) 진압을 위해 설치된 이정청(釐正廳)의 총재관(摠裁官)을 겸하였다.[3] 순원왕후 사후에도 안동 김씨의 중심인물로서 세도정치를 폈다.[3]
파락호 처지에 있던 흥선군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는데, 다른 사대부들과 달리 흥선군에게 용돈 등을 주어 돌려보내기도 했다.[3] 안동 김씨 세력으로 헌종과 철종 대에 걸쳐 세도정치를 폈으며, 1863년 철종 사후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원상 정원용과 함께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을 고종으로 옹립하는 일을 주관했다.[3]
1863년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 집권으로 영의정에서 물러났으나, 원임대신 자격으로 국정에 참여하여 자문하였다.[3] 아들 김병기와 함께 몰락 왕족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던 흥선대원군을 도왔으며, 다른 안동 김씨 일족이 숙청될 때도 원로대우를 받았다.[3] 1864년부터 철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여 총재관으로 《철종실록》 편찬을 지휘하였다.[3] 1868년 대원군에 의해 삼군부(三軍府)가 부활하자 삼군부영사(三軍府領事)가 되었다.[3] 1866년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돈령부영사(敦寧府領事)로 치사하였다.[3] 1869년 사망 후 충익(忠翼)의 시호가 추증되었다.[3]
《조선정감》에는 고종이 정조의 능인 건릉 행행 시 흥선대원군이 김좌근에게 무안을 준 일화와, 그의 애첩 나합(羅閤)의 투기를 트집 잡아 대원군이 청수동 별장(淸水洞別莊)에서 궁궐 중건비와 고종 가례비(嘉禮費) 명목으로 10만 냥을 받아낸 일화가 소개된다.[3]
1999년 그의 후손들은 그와 아들 김병기가 살던 경기도 이천시 가옥을 기증하였다.[4] 묘소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내촌리에 있다.[4]
2. 1. 가문 배경 및 초기 생애
2. 2. 관료 생활
2. 3. 세도 정치와 흥선대원군
2. 4. 말년
3. 고종 즉위 반대 이유
김좌근은 김흥근과 함께 철종이 병석에 눕자 비밀리에 만나 흥선군이 대원군의 지위를 이용해 국정에 간섭하고 나라의 법을 변경할 것을 우려하였다.[5] 이들은 흥선대원군의 집권이 나라를 불안하게 하고 종묘사직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5] 윤효정은 이를 두고 김좌근과 김흥근의 통찰력과 먼 훗날을 염려하는 마음이라 평가했다.[6]
고종 즉위 후, 김좌근과 김병기는 흥선대원군의 집정에 반대했지만,[7] 신정왕후는 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흥선군의 정치 참여를 공식화했다.[7]
4. 가족 관계
5대조부는 영의정 충헌공 김창집이며, 고조부는 우부승지 증 의정부좌찬성 충민공 김제겸이다. 증조부는 증 의정부좌찬성 김달행, 할아버지는 서흥부사 증 영의정 김이중이다. 아버지는 영안부원군 김조순이며, 어머니는 청송 심씨로 심건지의 딸이자 심풍지의 조카딸인 청양부부인이다.
형제로는 돈령부판사 김유근과 증이조판서 김원근이 있다. 순원왕후의 친정 오빠이며, 순조는 매형이 된다. 정실 부인은 정경부인 윤씨이며, 양자는 좌찬성 광주부유수 김병기로 생부는 김영근이다. 첩실은 나주부인 양씨로, 나합으로도 불렸다.
5. 첩 나합
김좌근의 첩 나합 양씨는 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인사성이 밝아 김좌근의 총애를 받았다. 김좌근은 나합과 함께 국정을 논하면서 방백수령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했다.[8] 나합은 나주 합하의 약칭으로, 삼정승을 지낸 남편 김좌근에게 붙는 존칭인 '합하'에서 유래한다.[8]
나합은 김좌근 몰래 빈객들과 간통하기도 했으며, 권세가 커져 아첨하는 이들이 많았다.[8] 비판적인 세인들은 그녀를 '나주 조개'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나합에 대한 일은 황현의 매천야록, 윤효정의 대한제국아 망해라에도 실렸고,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과 유주현의 대원군에도 묘사되었다.
참판 조연창이 나합의 초대를 받아 대화를 나누던 중 김좌근이 들어와 그 이유를 묻자, 나합은 자신이 관상을 보려 한다고 둘러댔다.[8] 김좌근은 이에 동의하며 나갔다.[8] 황현에 의하면 당시 조연창은 관상을 잘 보았으며, 후에 이름을 별창으로 고쳤다고 한다.[8]
6. 대중 문화에서의 김좌근
6. 1. 드라마
이순재는 1975년 TBC 드라마 《임금님의 첫사랑》에서 김좌근 역을 연기했다. 장민호는 1982년 KBS1 드라마 《풍운》에서, 김성원은 1989년 KBS2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김좌근 역을 맡았다. 1990년 MBC 드라마 《대원군》에서는 정욱이, 2001년 KBS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송재호가 김좌근을 연기했다. 최종원은 2014년 KBS2 드라마 《조선 총잡이》에서, 차광수는 2020년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김좌근 역을 연기했다. 김태우는 2020년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김좌근 역을 맡았다.6. 2. 영화
2016년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남경읍이, 2018년 명당에서 백윤식이 김좌근을 연기했다.참조
[1]
웹사이트
http://encykorea.aks[...]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1-02-18
[2]
웹사이트
(박종인의 땅의 歷史) 100년 국정 공백은 정실 인사에서 비롯되었다
https://www.chosun.c[...]
2021-02-19
[3]
웹인용
서울육백년사, 인물, 김조순
http://seoul600.visi[...]
2009-01-25
[4]
웹사이트
서울대, ‘김좌근 고택’ 기증받아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http://www.segye.com[...]
[5]
서적
대한제국아 망해라
다산초당
2010
[6]
서적
대한제국아 망해라
다산초당
2010
[7]
서적
난세에 길을 찾다
시공출판사
2009
[8]
서적
매천야록
일문서적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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