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릉 호씨
1. 개요
파릉 호씨는 송나라 유학자 호안국을 시조로 하고, 명나라 한림학사 호극기를 중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호극기는 명나라가 청나라에 멸망하자 조선에 귀화하여 파릉 호씨를 창시했다. 파릉 호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84명으로 조사되었다.
2. 역사
파릉 호씨는 송나라의 유학자인 호안국의 16세손 호극기(胡克己)를 시조로 한다. 호극기는 명나라 말엽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고, 1643년(인조 21) 답례사로 조선에 왔다가 명나라가 청나라에 멸망하자 함경도 북청군에 정착하였다.
2.1. 시조 이전
파릉 호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의 호안국이다. 그는 철종, 휘종을 섬겼으며 푸젠성 푸저우에서 관료로 일했지만, 퇴직했다. 1111년 송에서 3년간 관료로 일한 후 퇴직한 아들 호유와 함께 푸저우를 떠나 상선을 타고 고려로 들어갔으며, 이후 두 사람은 고려에 귀화했다. 호안국은 만년에 유학자로 활동했고, 호유는 풍수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또한 지압술에도 뛰어나 예종의 총애를 받았다.
중국에 잔류한 호안국의 직계 자손(15대손) 중 명에서 한림학사·이부상서를 지낸 호사표의 아들 호극기는 명 말기에 한림학사를 지냈으며, 조선 인조 시대에 답례사로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 해 명나라가 청에 의해 멸망했기 때문에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귀화하여 파릉 호씨를 창시했다.
중시조 호극기의 아들은 호두필, 손자는 호수빈이다. 호수빈의 차남 호의결의 후손은 호의결을 시조로 하는 가평 호씨를 창시했다.
2.2. 분파
파릉 호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호안국이다. 그는 철종, 휘종을 섬겼으며 푸젠성 푸저우에서 관료로 일했지만, 퇴직했다. 1111년 송나라에서 3년간 관료로 일한 후 퇴직한 아들 호유와 함께 푸저우를 떠나 상선을 타고 고려로 들어갔으며, 이후 두 사람은 고려에 귀화했다. 호안국은 만년에 유학자로 활동했고, 호유는 풍수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지압술에도 뛰어나 예종의 총애를 받았다.
호안국의 15대손 호사표는 명에서 한림학사·이부상서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호극기는 명 말기에 한림학사를 지냈다. 조선 인조 시대에 호극기는 답례사로 조선에 파견되었으나, 그 해 명나라가 청에 의해 멸망했기 때문에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귀화하여 파릉 호씨를 창시했다.
호극기의 아들은 호두필, 손자는 호수빈이다. 호수빈의 차남 호의결의 후손은 호의결을 시조로 하는 가평 호씨를 창시했다.
4. 인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활약한 최용덕의 아내 호용국(평양시 출신)의 친가가 파릉 호씨이다.
5. 인구
2015년 인구는 8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