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슈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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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울 슈타이너는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다. 1975년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SV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2. 분데스리가에서 4시즌을 보냈다. MSV 뒤스부르크와 1. FC 쾰른 소속으로 분데스리가에서 349경기에 출전했으며, 쾰른 소속으로 DFB-포칼 우승과 UEFA컵 준우승을 경험했다. 1990년 독일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1990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본선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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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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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슈타이너
전체 이름Paul Steiner
출생일1957년 1월 23일
출생지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발트브룬
1.82m
포지션중앙 수비수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슈트륌펠브룬 (0000–1975)
클럽SV 발트호프 만하임 (1975–1979)
MSV 뒤스부르크 (1979–1981)
1. FC 쾰른 (1981–1991)
출장 및 득점 (클럽)SV 발트호프 만하임: 144경기 (16골)
MSV 뒤스부르크: 58경기 (7골)
1. FC 쾰른: 291경기 (20골)
합계: 493경기 (43골)
국가대표팀 경력
국가대표팀서독 U-21 (1983)
서독 올림픽 (1987)
서독 (1990)
출장 및 득점 (국가대표팀)서독 U-21: 2경기 (1골)
서독 올림픽: 2경기 (0골)
서독: 1경기 (0골)
수상 내역1. FC 쾰른
DFB-포칼 우승 (1983)
UEFA컵 준우승 (1986)
DFB-포칼 준우승 (1991)
서독
FIFA 월드컵 우승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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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슈타이너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발트브룬 출신으로, 고향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1975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4년간 활약한 후, 뒤스부르크쾰른에서 분데스리가 경력을 쌓았다. 쾰른 소속으로 1983년 DFB-포칼 우승, 1985-86 시즌 UEFA컵 준우승을 달성했다. 34세에 은퇴한 후에는 레버쿠젠을 거쳐 친정팀인 쾰른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했다.

2.1. 초기 경력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발트브룬 출신인 슈타이너는 고향 슈트륌펠브룬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1975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하여 2부 리그발트호프 만하임에서 4년간 활약했다.

2.2. 분데스리가 경력

슈타이너는 뒤스부르크쾰른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349경기에 출전하여 27골을 기록했다. 쾰른 소속으로는 5시즌 동안 리그에서 상위 3위 안에 들었고, 1983년에는 DFB-포칼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5-86 시즌 UEFA컵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 밀려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3. 은퇴 후

34세에 은퇴한 후, 슈타이너는 쾰른의 라인강 라이벌인 레버쿠젠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하다가 친정팀인 쾰른으로 복귀해 같은 보직을 맡았다.

3. 국가대표팀 경력

1990년 5월 30일, 겔젠키르헨파르크슈타디온에서 열린 덴마크와의 친선경기에 교체로 출전하며 독일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90년 월드컵을 앞두고 치러진 이 경기에서 그는 위어딩엔의 홀거 파흐를 제치고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프란츠 베켄바워 감독이 클라우스 아우겐탈러의 후보 선수로 그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독일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다시는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