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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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다소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이름으로,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의 전사이자 아킬레우스의 빠른 말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트로이의 전사 페다소스는 부콜리온과 샘물의 요정 아바르바레에의 아들로, 쌍둥이 형제 아이세포스와 함께 에우리알로스에게 전사했다. 아킬레우스의 말 페다소스는 크산토스, 발리오스와 함께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끌었으나,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섰을 때 사르페돈의 창에 맞아 죽었다. 또한 페다소스는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중 트로아스의 페다소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약탈당했고, 카리아에서는 페르시아 군대를 상대로 전투가 벌어졌으며, 펠로폰네소스의 메토네는 덩굴로 덮인 페다소스와 동일한 곳으로 여겨졌다.

페다소스
지리 정보
기본 정보
위치고대 카리아
관련 민족카리아인
신화
관련 신화벨레로폰
벨레로폰의 말페가수스
역사
관련 사건벨레로폰의 키메라 퇴치
특징벨레로폰의 말이 발굽으로 땅을 쳐서 샘이 솟아났다는 전설이 있음
기타
중요도고대 도시로서의 중요성은 높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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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명

* 페다소스트로이아 전쟁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다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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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설명
트로이 전쟁의 영웅트로이아의 전사. 부콜리온과 샘물의 요정 아바르바레아의 아들. 아이세포스와 쌍둥이 형제. 에우뤼알로스에게 전사.
아킬레우스의 말아킬레우스가 에에티온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으로, 빠른 발을 가진 말. 크산토스, 발리오스와 함께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끄는 세 명마 중 하나였으나, 사르페돈이 던진 창에 맞아 죽음.

2.1. 트로이 전쟁의 영웅

페다소스트로이아 전쟁 당시 트로이아의 전사였다. 그는 부콜리온과 샘물의 요정 아바르바레아의 아들이다. 아이세포스와 쌍둥이 형제였으며, 아버지 부콜리온은 트로이아의 왕 라오메돈의 서자였다. 이 두 형제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트로이 군으로 참가했다가 둘 다 그리스의 장수 에우뤼알로스에게 전사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6권 20행~28행)

2.2. 아킬레우스의 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페다소스는 아킬레우스가 에에티온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으로, 빠른 발을 가진 말이었다. 페다소스는 크산토스, 발리오스와 함께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끄는 세 명마 중 하나였다.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는 불사의 존재였지만, 페다소스는 그렇지 않았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사르페돈과 싸울 때, 사르페돈이 던진 창이 빗나가 페다소스를 맞혀 죽게 되었다.

3. 지명

페다소스는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지역의 이름이다. 트로아드의 페다소스는 사트니오에이스 강 근처에 있었으며, 렐레게스 부족이 살던 곳이다. 트로이아 전쟁 당시에는 아틀레스 왕이 다스렸으나 아킬레우스에게 점령되었다. 카리아와 메세니아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었다.

3.1. 소아시아

페다소스는 소아시아의 지명으로, 트로아드와 카리아, 메세니아 지역에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었다. 트로아드 지역의 페다소스는 사트니오에이스 강 근처에 있었으며, 렐레게스라는 부족이 살고 있었다. 트로이아 전쟁 당시에는 아틀레스 왕이 다스렸으나 아킬레우스에게 점령되었다.

3.1.1. 트로아스

소아시아 트로아스의 사트니오에이스 강에 페다소스가 있었는데, 이곳은 레게스족이 거주했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 동안 이 페다소스는 알테스라는 왕이 통치했으며, 아킬레우스에게 약탈당했다.

3.1.2. 카리아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카리아의 페다소스 전투(기원전 496년 여름)는 카리아인들이 페르시아 군대를 야간 매복 작전으로 전멸시킨 사건이다. 이 전투는 이오니아 반란(기원전 499-494년) 중에 발생했다.

3.2. 그리스 본토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카리아의 페다소스 전투(기원전 496년 여름)는 카리아인들이 페르시아 군대를 전멸시킨 야간 매복 작전이었다. 이 전투는 이오니아 반란(기원전 499-494년) 중에 발생했다.

트로아스에는 사트니오에이스 강에 또 다른 페다소스가 있었는데, 레게스족이 거주했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 동안 이 페다소스는 알테스 왕이 통치했고, 아킬레우스에게 약탈당했다.

3.2.1. 메세니아

펠로폰네소스의 메토네는 덩굴로 덮인 페다소스와 동일한 곳으로 여겨지는데, 이곳은 아가멤논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달래고 그를 트로이 공방전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그에게 제공한 일곱 개의 도시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