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국왕
1. 개요
포르투갈 국왕은 포르투갈 왕국을 통치했던 군주들을 가리킨다. 부르고냐 왕조는 아폰수 1세부터 페르난두 1세까지 포르투갈을 처음 통치했으며, 아비스 왕조는 주앙 1세에 의해 건립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펠리페 1세부터 펠리페 3세까지 포르투갈을 통치했으며, 브라간사 왕조는 주앙 4세부터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후손까지 이어졌다. 이후 1853년부터 1910년까지는 브라간사-코부르그 가문이 포르투갈을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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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포르투갈과 알가르브 |
|---|---|
| 존칭 | 폐하 |
| 시작 | 1139년 7월 25일 |
| 종료 | 1910년 10월 5일 |
| 거주지 | 포르투갈의 왕궁 |
| 첫 번째 군주 | 아폰수 1세 |
| 마지막 군주 | 마누엘 2세 |
| 왕위 요구자 | 두아르테 피우, 브라간사 공작 |
| 포르투갈어 | Rei de Portuga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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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 목록 -
잉글랜드 국왕
잉글랜드 국왕은 잉글랜드 왕국을 통치했던 군주를 의미하며, 웨섹스 왕조의 에그버트 이후 잉글랜드 전역에 군주권이 행사되었고, 1707년 연합법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대체되었다. -
군주 목록 -
바르셀로나 백작
바르셀로나 백작은 카탈루냐 지역을 다스린 역사적 작위로, 프랑크 왕국에서 시작하여 세습 작위로 독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아라곤과의 결혼을 통해 아라곤 연합왕국 형성에 기여했으며, 현재는 스페인 국왕이 계승하는 작위이다. -
포르투갈의 역사 -
1910년 10월 5일 혁명
1910년 10월 5일 혁명은 포르투갈에서 군주제를 종식시키고 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사회적 불만과 공화당의 성장, 국왕 암살 사건을 거쳐 발생하여, 테오필루 브라가를 대통령으로 하는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
포르투갈의 역사 -
카네이션 혁명
카네이션 혁명은 1974년 포르투갈에서 국군운동이 주도하여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한 무혈 쿠데타로, 군인들이 카네이션을 꽂은 상징적인 장면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자유의 날'로 기념된다. -
포르투갈의 군주 -
펠리페 2세
펠리페 2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 스페인, 이탈리아, 아메리카 등 광대한 영토를 물려받아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가톨릭 신앙을 옹호하며 종교 개혁 세력을 탄압하다가 1598년에 사망했다. -
포르투갈의 군주 -
주앙 5세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5세는 브라질의 금과 다이아몬드를 바탕으로 절대 왕정을 확립하고 바로크 건축 부흥을 이끌었으며, 스페인과의 조약으로 브라질 영토를 확장했으나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렸다.
2. 카페 왕조 1기 (보르고냐 왕조 1기) (1139년 ~ 1383년)
포르투갈 부르고뉴 왕가는 아폰수 1세를 시조로 하며, 아폰수스 왕조라고도 불린다. 포르투갈의 독립 이전에는 갈리시아 왕국의 봉건 영지인 포르투갈 백국을 다스렸다. 아폰수 1세가 포르투갈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그의 가문은 백작 가문에서 2세기 이상 포르투갈을 다스릴 왕가로 변모했다. 레콩키스타 시대 동안, 상슈 2세와 1249년 알가르브 정복을 통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아폰수 3세 치하에서 알가르브 왕국을 세웠다. 페르난두 1세가 사망하자 1383년부터 1385년 사이에 계승 위기가 발생했다. 페르난두의 딸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는 여왕으로 선포되었고, 그녀의 남편 카스티야의 후안 1세는 아내의 권리에 의해 왕으로 선포되었으나,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의 군주로서의 정통성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2.1. 보르고냐 본가 (1139년 ~ 1383년)
| 대수 | 이름 | 초상화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별명 | 선왕(들)과의 관계 |
|---|---|---|---|---|---|---|
| 1 | 아폰수 1세 | 1139년 | 1185년 | 정복왕 창업왕 대왕 | 포르투갈 백작 엔히크의 아들 | |
| 2 | 산슈 1세 | 1185년 | 1211년 | 식민왕 | 아폰수 1세의 아들 | |
| 3 | 아폰수 2세 | 1211년 | 1223년 | 뚱보왕 | 산슈 1세의 아들 | |
| 4 | 산슈 2세 | 1223년 | 1247년 | 경건왕 | 아폰수 2세의 아들 | |
| 5 | 아폰수 3세 | 1247년 | 1279년 | 볼로냐인 | 산슈 2세의 형제 아폰수 2세의 아들 | |
| 6 | 디니스 | 1279년 | 1325년 | 경작자왕 시인왕 음유시인왕 | 아폰수 3세의 아들 | |
| 7 | 아폰수 4세 | 1325년 | 1357년 | 용사왕 | 디니스의 아들 | |
| 8 | 페드루 1세 | 1357년 | 1367년 | 공정왕 잔인왕 | 아폰수 4세의 아들 | |
| 9 | 페르난두 1세 | 1367년 | 1383년 | 미남왕 변덕왕 무모왕 | 페드루 1세의 아들 | |
| 10 | 베아트리스 (논쟁 중) | 1383년 | 1385년 | 페르난두 1세의 딸 |
포르투갈 부르고뉴 왕가는 아폰수 1세를 시조로 하며, 아폰수스 왕조라고도 불린다. 포르투갈 왕국 이전에는 갈리시아 왕국의 봉건 영지인 포르투갈 백국을 다스렸다. 아폰수 1세가 포르투갈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그의 가문은 백작 가문에서 2세기 이상 포르투갈을 다스릴 왕가로 변모했다. 레콩키스타 시대 동안, 상슈 2세와 1249년 알가르브 정복을 통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아폰수 3세 치하에서 알가르브 왕국을 세웠다. 페르난두 1세가 사망하자 1383년부터 1385년 사이에 계승 위기가 발생했다. 페르난두의 딸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는 여왕으로 선포되었고, 그녀의 남편 카스티야의 후안 1세는 아내의 권리에 의해 왕으로 선포되었다. 그녀의 군주로서의 정통성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2.2. 아비스 왕조 1기 (1385년 ~ 1580년)
아비스 왕가는 아비스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주앙 1세가 건립한 왕조이다. 주앙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왕위는 그의 사촌인 마누엘 1세에게 넘어갔다. 세바스티앙 1세가 사망하자 왕위는 그의 종증조부인 엔히크 1세에게 넘어갔다. 엔히크 1세가 사망하자 왕위 계승 위기가 발생했고, 크라투의 안토니우가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1세로 선포되었다.
| 군주 | 별명 | 출생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
|---|---|---|---|---|---|---|
| 주앙 1세 | 기억력이 좋은 사람, 아비스 기사단장, 선량한 자, 위대한 자, 사생아 | 1357년 4월 11일 | 1385년 4월 6일 | 1433년 8월 14일 | 페드루 1세의 서자 | |
| -- | 두아르테 1세 | 웅변왕 | 1391년 10월 31일 | 1433년 8월 14일 | 1438년 9월 9일 | 주앙 1세의 아들 |
| -- | 아폰수 5세 | 아프리카인, 십자군 | 1432년 1월 15일 | 1438년 9월 13일, 1477년 11월 15일 | 1477년 11월 11일, 1481년 8월 28일 | 두아르테 1세의 아들 |
| -- | 주앙 2세 | 완벽한 왕자, 남자(El Hombre) | 1455년 3월 3일 | 1477년 11월 11일, 1481년 8월 28일 | 1477년 11월 15일, 1495년 10월 25일 | 아폰수 5세의 아들 |
| -- | 마누엘 1세 | 행운아, 식료품 상인 왕/향신료 왕(Le Roi-Épicier) | 1469년 5월 31일 | 1495년 10월 25일 | 1521년 12월 13일 | 주앙 2세의 사촌, 두아르테 1세의 손자 |
| -- | 주앙 3세 | 경건한 자, 식민주의자 | 1502년 6월 7일 | 1521년 12월 13일 | 1557년 6월 11일 | 마누엘 1세의 아들 |
| -- | 세바스티앙 1세 | 갈망하는 자, 잠자는 영웅, 잠자는 왕, 숨겨진 자, 십자군, 처녀왕 | 1554년 1월 20일 | 1557년 6월 11일 | 1578년 8월 4일 | 주앙 3세의 손자 |
| -- | 엔히크 1세 | 정숙한 자, 추기경, 추기경-왕 | 1512년 1월 31일 | 1578년 8월 4일 | 1580년 1월 31일 | 마누엘 1세의 아들, 주앙 3세의 형제, 세바스티앙 1세의 종증조부 |
| -- | 안토니우 1세 | 크라투의 우선자, 결의가 굳은 자, 투사, 저항자, 독립운동가 | 1531년 | 1580년 7월 24일 (논쟁의 여지 있음) | 1583년 (논쟁의 여지 있음) | 마누엘 1세의 손자, 엔히크 1세의 조카 |
3. 합스부르크 왕조 (필리피나 왕조) (1580년 ~ 1640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페인의 중앙 집권화가 강화되었고, 포르투갈은 재정적, 군사적 부담을 크게 떠안게 되었다. 이에 포르투갈 내에서는 독립의 열망이 커졌고, 1640년 6월 카탈루냐에서 일어난 반란은 포르투갈의 독립 운동을 더욱 부추겼다.
4. 카페 왕조 2기 (보르고냐 왕조 2기) (1640년 ~ 1853년)
1640년 포르투갈의 재독립이 선언되었고, 코르테스에서 브라간사 공작 주앙 4세의 포르투갈 왕위가 승인되었다. 주앙 4세의 즉위로 브라간사 왕조가 성립되었다. 포르투갈 왕정 복고 전쟁을 거쳐 1668년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의 평화가 성립되었다.
포르투갈의 마리아 2세와 그의 남편 포르투갈의 페르난두 2세의 아들인 포르투갈의 페드루 5세부터 브라간사-코부르그 가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 이름 | 초상화 | 출생-사망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
| 페드루 5세 | -- | 1837년 9월 16일 – 1861년 11월 11일 | 1853년 11월 15일 | 1861년 11월 11일 |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아들 |
| 루이스 1세 | -- | 1838년 10월 31일 – 1889년 10월 19일 | 1861년 11월 11일 | 1889년 10월 19일 |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아들, 페드루 5세의 형제 |
| 카를루스 1세 | -- | 1863년 9월 28일 – 1908년 2월 1일 | 1889년 10월 19일 | 1908년 2월 1일 | 루이스 1세의 아들 |
| 마누엘 2세 | -- | 1889년 11월 15일 – 1932년 7월 2일 | 1908년 2월 1일 | 1910년 10월 5일 | 카를루스 1세의 아들, 포르투갈의 마지막 국왕 |
4.1. 아비스 왕조 2기 (1640년 ~ 1853년)
브라간사 왕가(House of Braganza)는 브라간사 왕조(Brigantine Dynasty)라고도 불리며, 1640년 브라간사의 주앙 2세 공작이 멸망한 아비스 왕가의 정당한 상속자임을 주장하며 권력을 잡았다. 그는 마누엘 1세의 증손이었다. 주앙은 국왕 주앙 4세로 선포되었고, 포르투갈 복원 전쟁 중 1640년 합스부르크 왕가를 폐위시켰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668년 리스본 조약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르투갈 왕위를 주장했다.
마리아 2세 여왕과 그의 배우자인 페르난두 2세(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ouse of Saxe-Coburg and Gotha) 출신의 독일 공작)의 후손이 1853년에 통치하게 되었다. 포르투갈 법과 관습은 그들을 브라간사 왕가의 일원으로 취급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왕족이었다. 이로 인해 일부는 포르투갈의 마지막 4명의 군주를 브라간사-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ouse of Braganza-Saxe-Coburg and Gotha)라는 새로운 왕가의 일원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이 견해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1853년부터 1910년까지 포르투갈을 통치한 4명의 브라간사 가문 국왕의 출신 가문을 지칭하여 "브라간사-코부르그 가문"이라는 호칭이 사용된다. 1910년 아버지와 함께 습격당해 아버지의 붕어 20분 후에 사망한 왕세자 루이스 필리페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붕어와 동시에 왕위에 즉위했다는 설과 이를 부정하는 설이 있다.
| 이름 | 출생-사망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가문 | 초상화 |
|---|---|---|---|---|---|---|
| 주앙 4세 | 1604년 3월 19일 – 1656년 11월 6일 | 1640년 12월 1일 | 1656년 11월 6일 | 포르투갈 국민의 환호 (만장일치 동의)를 통해 왕으로 선택되었다. 이후 정복권에 의해 펠리페 3세 국왕을 폐위시켰다. 마누엘 1세의 증손자. | 브라간사 | -- |
| 아폰수 6세 | 1643년 8월 21일 – 1683년 9월 12일 | 1656년 11월 6일 | 1683년 9월 12일 | 주앙 4세의 아들 | 브라간사 -- | -- |
| 페드루 2세 | 1648년 4월 26일 – 1706년 12월 9일 | 1683년 11월 6일 | 1706년 12월 9일 | 주앙 4세의 아들, 아폰수 6세의 형제 | 브라간사 -- | -- |
| 주앙 5세 | 1689년 10월 22일 – 1750년 7월 31일 | 1706년 12월 9일 | 1750년 7월 31일 | 페드루 2세의 아들 | 브라간사 -- | -- |
| 주제 1세 | 1714년 6월 6일 – 1777년 2월 24일 | 1750년 7월 31일 | 1777년 2월 24일 | 주앙 5세의 아들 | 브라간사 -- | -- |
| 마리아 1세 | 1734년 12월 17일 – 1816년 3월 20일 | 1777년 2월 24일 | 1816년 3월 20일 | 주제 1세의 딸 | 브라간사 -- | -- |
| 페드루 3세 | 1717년 7월 5일 – 1786년 5월 25일 | 1777년 2월 24일 | 1786년 5월 25일 | 마리아 1세의 남편, 주앙 5세의 아들, jure uxoris 국왕 | 브라간사 -- | -- |
| 주앙 6세 | 1767년 5월 13일 – 1826년 3월 10일 | 1816년 3월 20일 | 1826년 3월 10일 | 마리아 1세와 페드루 3세의 아들 | 브라간사 -- | |
| 페드루 4세 | 1798년 10월 12일 – 1834년 9월 24일 | 1826년 3월 10일 | 1826년 5월 2일 | 주앙 6세의 아들 | 브라간사 -- | |
| 마리아 2세 | 1819년 4월 4일 – 1853년 11월 15일 | 1826년 5월 2일 1834년 5월 26일 | 1828년 6월 23일 1853년 11월 15일 | 페드루 4세의 딸 | 브라간사 -- | -- |
| 미겔 1세 | 1802년 10월 26일 – 1866년 11월 14일 | 1828년 2월 26일 | 1834년 5월 6일 | 주앙 6세의 아들 | 브라간사 -- | -- |
| 페르난두 2세 | 1816년 10월 29일 – 1885년 12월 15일 | 1837년 9월 16일 | 1853년 11월 15일 | 마리아 2세의 남편, jure uxoris 국왕 | -->]]|40px]] || -- | |
| 페드루 5세 | 1837년 9월 16일 – 1861년 11월 11일 | 1853년 11월 15일 | 1861년 11월 11일 |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아들 | 브라간사 -- | -- |
| 루이스 1세 | 1838년 10월 31일 – 1889년 10월 19일 | 1861년 11월 11일 | 1889년 10월 19일 |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아들, 페드루 5세의 형제 | 브라간사 -- | -- |
| 카를루스 1세 | 1863년 9월 28일 – 1908년 2월 1일 | 1889년 10월 19일 | 1908년 2월 1일 | 루이스 1세의 아들 | 브라간사 -- | -- |
| 마누엘 2세 | 1889년 11월 15일 – 1932년 7월 2일 | 1908년 2월 1일 | 1910년 10월 5일 | 카를루스 1세의 아들, 포르투갈의 마지막 국왕 | 브라간사 -- | -- |
5.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타 왕조 (1853년 ~ 1910년)
| 대수 | 이름 | 초상화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별명 | 선왕(들)과의 관계 |
|---|---|---|---|---|---|---|
| 33 (31 또는 32) | 페드루 5세 | 1853년 | 1861년 | 희망왕 (o Esperançoso) | 페르난두 2세와 마리아 2세의 아들 | |
| 34 (32 또는 33) | 루이스 1세 | 1861년 | 1889년 | 민중왕 (o Popular) 행운왕 (o Bom) | 페드루 5세의 형제 페르난두 2세와 마리아 2세의 아들 | |
| 35 (33 또는 34) | 카를루스 1세 | 1889년 | 1908년 | 희생자 (o Martirizado) 외교왕 (o Diplomata) | 루이스 1세의 아들 | |
| 36 (34 또는 35) | 마누엘 2세 | 1908년 | 1910년 | 애국자 (o Patriota) 불운왕 (o Desventurado) 학자왕 (o Estudioso) 미혼왕 (o Rei-Saudade) | 카를루스 1세의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