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 개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1970년 창단된 NBA 팀으로, 현재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연고지로 한다. 1976-77 시즌에 창단 첫 우승을 달성했으며, 빌 월턴, 클라이드 드렉슬러, 데미안 릴라드 등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다. 1990년과 1992년 NBA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우승에는 실패했다. 2012년 데미안 릴라드가 합류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2023년에는 데미안 릴라드를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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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단 | 1970년 |
|---|---|
| 역사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970년~현재) |
| 연고지 | 오리건주 포틀랜드 |
| 경기장 | 모다 센터 |
| 상징색 | 빨강, 검정, 하양 |
| 스폰서 | 브라이트사이드 윈도우 |
| 구단주 | 폴 G. 앨런 재단 (조디 앨런 회장) |
| CEO | 드웨인 한킨스 |
| 단장 | 조 크로닌 |
| 감독 | 천시 빌럽스 |
| G 리그 제휴팀 | 립 시티 리믹스 |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리그 우승 | 1회 (1977년) |
|---|---|
| 콘퍼런스 우승 | 3회 (1977년, 1990년, 1992년) |
| 디비전 우승 | 6회 (1978년, 1991년, 1992년, 1999년, 2015년, 20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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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베터런스 메모리얼 콜리시엄
베터런스 메모리얼 콜리시엄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다목적 경기장으로, 지역 사회 문화 증진과 참전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헌정되었으며, 태평양 북서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설이자 국립 사적지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포틀랜드 윈터호크스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되며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모다 센터
모다 센터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다목적 실내 경기장으로,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홈구장이며 다양한 스포츠 경기와 문화 행사가 개최되는 곳으로, 2024년 7월 포틀랜드 시가 매입하여 공공 서비스 제공 공간으로의 전환을 모색 중이다. -
1970년 설립된 스포츠 클럽 -
유타 스타스
유타 스타스는 1967년 창단하여 ABA 리그에서 활동하며 1971년 우승한 프로 농구팀으로, 재정난으로 해체되었지만 솔트레이크시티에 프로 농구팀 유치 가능성을 보여주어 NBA 유타 재즈 창단에 기여했다. -
1970년 설립된 스포츠 클럽 -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는 1970년 창단된 대한민국의 여자 프로 배구단으로, V-리그에서 2번의 우승과 4번의 준우승, KOVO컵에서 2011년 우승과 5번의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연고지는 김천시이고 홈 경기장은 김천실내체육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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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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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역사
1980년대 동안 포틀랜드는 1982년을 제외하고 꾸준히 NBA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컨퍼런스 준결승 이상으로는 진출하지 못했다. 이 시기 동안 마이컬 톰슨, 빌리 레이 베이츠, 팻 레버, 다넬 발렌타인, 웨인 쿠퍼, T. R. 던, 짐 팩슨, 캘빈 냇 등이 주요 선수로 활약했다.
1983년 NBA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대학교 출신의 가드-포워드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14순위로 지명하면서, 드렉슬러는 10년 이상 팀의 간판 스타가 되었다.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는 2순위 지명권을 얻었으나, 휴스턴 로키츠가 하킴 올라주원을 1순위로 지명한 후, 켄터키 대학교 센터 샘 보위를 지명했다. 3순위 지명권을 가진 시카고 불스는 마이클 조던을 지명했다. 부상에 시달렸던 보위를 조던 대신 지명한 것은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드래프트 지명 중 하나로 비판받고 있다. 그해 여름, 블레이저스는 덴버 너게츠로 부터 득점력이 높은 포워드 키키 반더웨이를 영입했다. 1985년 NBA 드래프트에서는 포인트 가드 테리 포터를 지명했다.
1986년, 잭 램지 감독은 해고되고 마이크 슐러로 교체되었다. 그 다음 오프 시즌에 팀은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드라젠 페트로비치를 드래프트했다.
1988년,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은 70000에 블레이저스를 인수했다. 1988–89 시즌 중반에 슐러 감독은 해고되고 릭 애덜먼 코치가 임시로 팀을 맡았으며, 키키 반더웨이는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오프 시즌에 팀은 뉴저지 네츠로 부터 포워드 벅 윌리엄스를 영입했으며, 애덜먼은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블레이저스는 1990년과 1992년 NBA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각각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시카고 불스에게 패했다. 1994년 시즌 이후 애들먼은 해고되었고, P. J. 카를레시모로 교체되었다.
1994년 7월, 트레일 블레이저스는 전 시애틀 슈퍼소닉스 단장 밥 휘치트를 새로운 팀 사장으로 고용했다. 휘치트는 즉시 팀을 개편하기 시작했는데,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휴스턴 로키츠로 트레이드했다. 1995년 가을, 팀은 로즈 가든 아레나로 홈구장을 이전했다.
휘치트는 아이제이아 라이더, 라시드 월러스, 케니 앤더슨 등을 영입했지만, 코트 밖 문제로 부정적인 평판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다. 케니 앤더슨은 자유 계약 선수로 영입되었고, 이후 1998년 2월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되어 데몬 스타우다마이어와 교환되었다. 마이크 던리비 감독의 지휘 아래 1999년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지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했다.
1999-2000 시즌, 스카티 피펜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한 블레이저스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결국 패배했다.
2.1. 1970-1976: 창단과 초기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1970년 스포츠 프로모터 해리 글릭먼의 주도로 창단되었다. 글릭먼은 1955년부터 포틀랜드에 전미 농구 협회(NBA) 프랜차이즈를 유치하려 했으며, 1970년 2월 6일에야 NBA 이사회가 그의 포틀랜드 프랜차이즈 권리를 승인했다. 가입비 370만 달러(3700)를 마련하기 위해 글릭먼은 뉴저지의 부동산 재벌 로버트 슈메르츠, 로스앤젤레스의 래리 와인버그, 시애틀의 허먼 사코우스키와 제휴했다.
팀 이름은 공모를 통해 정해졌는데, 10,000개 이상의 응모작 중 "파이오니어스"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이미 루이스 & 클라크 대학교에서 사용 중이었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트레일블레이저스"는 172개의 응모작을 받았고, 심사위원단에 의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숲길을 개척하는 탐험가들의 개척 활동에서 유래된 글릭먼은 이 이름을 "태평양 북서부의 험준함과 우리 주에서 메이저 리그 시대의 시작을 모두 반영할 수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및 버펄로 브레이브스(현재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 함께, 트레일블레이저스는 1970년 롤랜드 토드 코치 지휘 하에 확장 팀으로 NBA에 진출했다. 제프 페트리와 시드니 윅스가 초창기 팀을 이끌었으며, 시드니 윅스는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활약하며 4번의 NBA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경기당 평균 24.5득점, 11.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971-72 NBA 신인상을 수상했다. 팀은 창단 후 6시즌 동안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팀은 3명의 헤드 코치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 레니 윌켄스 포함)를 거쳤고, 팀 임원 스튜 인먼은 코치직을 겸임했다. 1972년 NBA 드래프트에서 팀은 1순위로 라루 마틴을 지명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 시즌 | 승 | 패 | 승률 | 플레이오프 | 결과 |
|---|---|---|---|---|---|
| 1970-71 | 29 | 53 | .354 | - | - |
| 1971-72 | 18 | 64 | .220 | - | - |
| 1972-73 | 21 | 61 | .256 | - | - |
| 1973-74 | 27 | 55 | .329 | - | - |
| 1974-75 | 38 | 44 | .463 | - | - |
| 1975-76 | 37 | 45 | .451 | - | - |
2.2. 1976-1983: 첫 우승과 빌 월턴 시대
1974년 NBA 드래프트에서 UCLA 출신의 센터 빌 월턴을 전체 1순위로 지명하면서 팀의 전력이 강화되었다. 1976년에는 ABA-NBA 합병으로 모리스 루카스를 영입하고, 잭 램지를 감독으로 임명하면서 팀의 기틀을 다졌다.
1976-77 시즌, 빌 월턴, 모리스 루카스, 리오넬 홀린스 등의 활약으로 정규 시즌 49승 33패를 기록,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빌 월턴은 NBA 파이널 MVP에 선정되었다. 1977년 4월 5일부터는 미국 메이저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장 기록인 814경기 연속 매진 행진을 시작했으며, 이 기록은 팀이 모다 센터로 이전한 1995년까지 이어졌다.
1977-78 시즌에는 58승 24패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으나, 빌 월턴의 부상으로 인해 플레이오프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패배했다. 빌 월턴은 팀의 의료 처치에 불만을 품고 트레이드를 요구했으나, 결국 1978-79 시즌을 보이콧하고 자유 계약 선수로 팀을 떠났다.
2.3. 1983-1995: 클라이드 드렉슬러 시대
1983년 NBA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휴스턴 대학교의 가드 겸 포워드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14순위로 지명했다. 드렉슬러는 이후 10년 이상 팀의 간판 선수로 활약했다.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2순위 지명권으로 켄터키 대학교 센터 샘 보위를 지명했다. 그러나 시카고 불스가 3순위로 마이클 조던을 지명하면서, 부상으로 신음한 보위 대신 조던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NBA 역사상 최악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꼽힌다.
198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이 팀을 인수했다. 릭 아델만 감독과 드렉슬러, 테리 포터, 제롬 커시, 벅 윌리엄스를 중심으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1990년과 1992년 NBA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각각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시카고 불스에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2.4. 1995-2006: "Jail Blazers" 시대
1995년, 블레이저스는 홈 경기장을 25년간 사용했던 메모리얼 콜리시엄에서 수용 인원이 더 큰 로즈 가든(현재의 모다 센터)으로 이전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블레이저스는 아이제이아 라이더, 라시드 월러스, 데이먼 스타우다마이어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을 영입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코트 밖에서 잦은 문제를 일으켜 "Jail Blazers(감옥 블레이저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1999년과 2000년, 블레이저스는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각각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패배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3-04 시즌에는 21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기록이 중단되었고, 이후 몇 년간 승률 5할 이하의 부진한 시기를 보냈다.
2.5. 2006-2012: 브랜든 로이와 라마커스 알드리지 시대
2006-07 시즌 브랜든 로이와 라마커스 알드리지를 영입하며 팀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브랜든 로이는 신인상을 수상하며 팀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으나, 2011년 무릎 부상으로 인해 은퇴했다.
2.6. 2012-2023: 데미안 릴라드 시대
2012년 NBA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는 웨버 주립대학교 출신의 가드 데이미언 릴라드를 전체 6순위로 지명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릴라드는 2012-13 시즌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팀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NBA 드래프트에서 리하이 대학교 출신의 가드 CJ 맥컬럼을 전체 10순위로 지명, 릴라드와 함께 강력한 백코트 듀오를 구축했다. 2013-14 시즌, 릴라드와 라마커스 알드리지의 활약을 바탕으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패배했다.
2015-16 시즌에는 주축 선수들의 이적에도 불구하고 릴라드와 맥컬럼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패배했다.
2018-19 시즌에는 릴라드와 맥컬럼, 그리고 유서프 너키치, 에네스 칸터 등의 활약으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스윕패를 당했다.
2019-20 시즌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고,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거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패배했다.
2020-21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덴버 너게츠에 패배한 후, 테리 스토츠 감독이 사임하고 챈시 빌럽스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1-22 시즌에는 CJ 맥컬럼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트레이드하며 릴라드 중심의 팀 재편을 시도했다.
2.7. 2023-현재: 릴라드 이후의 시대
2023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가드 스쿠트 헨더슨을 지명했다. 그해 시즌 개막 전 대형 트레이드로, 데미안 릴라드를 밀워키 벅스로, 유서프 너키치, 나시르 리틀, 키온 존슨을 피닉스 선스로 보냈고, 주루 할러데이, 디안드레 에이튼, Toumani Camara영어와 여러 드래프트 지명권을 획득했다. 4일 후, 할러데이를 보스턴 셀틱스로 보내고 로버트 윌리엄스 3세, 말콤 브로그던, 두 개의 미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얻었다.
2024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7순위로 센터 도노반 클링건을 지명했고, 드래프트 당일 워싱턴 위저즈로부터 데니 아브디야를 영입하며 미래를 위한 투자를 이어갔다.
3. 라이벌
시애틀 슈퍼소닉스와는 지리적으로 가까워 'I-5 라이벌' 관계였으나, 슈퍼소닉스가 오클라호마시티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사실상 소멸되었다.
4. 역대 한국인 선수
하승진 (2004년~2006년): 한국인 최초의 NBA 선수로, 2004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46위로 지명되어 2시즌 동안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활동했다.
5. 영구 결번
| 번호 | 선수 | 포지션 | 재임 기간 | 영구 결번일 |
|---|---|---|---|---|
| 1 1 | 래리 와인버그 | 구단주 | 1970–1988 | 1992년 |
| 13 | 데이브 트워드직 | G | 1976–1980 | 1981년 10월 11일 |
| 14 | 리오넬 홀린스 | G | 1975–1980 | 2007년 4월 18일 |
| 15 | 래리 스틸 | G | 1971–1980 | 1981년 10월 11일 |
| 20 | 모리스 루카스 | F | 1976–1980 1987–1988 | 1988년 11월 4일 |
| 22 | 클라이드 드렉슬러 | G | 1983–1995 | 2001년 3월 6일 |
| 30 | 밥 그로스 | F | 1975–1982 | 2008년 12월 18일 |
| 테리 포터 | G | 1985–1995 | 2008년 12월 16일 | |
| 32 | 빌 월턴 | C | 1974–1979 | 1989년 11월 3일 |
| 36 | 로이드 닐 | F/C | 1972–1979 | 1979년 3월 24일 |
| 45 | 제프 페트리 | G | 1970–1976 | 1981년 10월 11일 |
| 77 2 | 잭 램지 | 헤드 코치 | 1976–1986 | 1993년 1월 14일 |
| 빌 섀널리 | 방송 해설자 | 1970–1998 | 2003년 11월 3일 |
비고:
* 1 구단주이자 창립자로서, 이 번호는 여전히 선수들에게 사용 가능하다.
* 2 램지는 팀에서 선수로 뛰지 않았으며, 이 번호는 블레이저스를 코치하며 1977년 NB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것을 기념한다.
* NBA는 2022년 8월 11일 모든 가맹팀에서 빌 러셀의 6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다.
6. 역대 홈경기장
트레일 블레이저스는 포틀랜드 시내 북동쪽에 있는 로즈 쿼터의 다목적 경기장인 모다 센터에서 홈 경기를 치른다. 1995년에 개장했으며, 농구 경기의 경우 총 19,98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입석을 포함하면 수용 인원은 20,580명으로 늘어난다. 2013년 8월, 블레이저스 프런트 오피스 관계자들이 모다 헬스 코퍼레이션과 4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후 경기장 이름이 로즈 가든에서 모다 센터로 변경되었다.
1995년 이전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홈 구장은 현재 모다 센터 옆에 있는 메모리얼 콜리시엄이었다. 1960년에 건설된 이 시설은 농구 경기의 경우 12,888명(원래는 12,666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