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1950년 선거구)
1. 개요
포항시 (1950년 선거구)는 1950년 포항시 전 지역을 관할로 신설되어,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제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존재했던 선거구이다. 1963년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와 통합되어 폐지되었다. 역대 국회의원으로는 김판석, 하태환, 이상면 등이 있으며, 각 선거에서 다양한 정당 소속 후보들이 당선되었다.
| 이름 | 포항시 |
|---|---|
| 의회 | 국회 |
| 큰 지도 | 경상북도 |
| 연도 | 1950 |
| 폐지 | 1963 |
| 유형 | 국회 |
| 이전 선거구 | 영일군 갑 |
| 이후 선거구 | 포항시·영일군·울릉군 |
| 의원수 | 1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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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의 정치 -
포항시 북구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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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의 정치 -
포항시장
포항시장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초대 시장 최기봉 이후 김의환, 박기환, 정장식, 박승호, 이강덕 등이 역임하며 포항 발전에 기여했으나 논란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
1963년 폐지된 대한민국 선거구 -
단양군 (선거구)
단양군 선거구는 1948년 신설되어 1963년 제천군과 통합 폐지될 때까지 5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으며, 조종승, 장영근, 조종호 등이 당선되었다. -
1963년 폐지된 대한민국 선거구 -
고창군 갑
고창군 갑은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신설되어 고창군 지역을 관할했으며, 1963년 선거구 통합으로 폐지되었고 김영동, 김수학, 정세환, 류진 등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
경상북도의 폐지된 선거구 -
영천시 (선거구)
영천시 선거구는 1995년 영천시와 영천군 통합 이후 15대부터 19대 총선까지 존재했던 국회의원 선거구로, 20대 총선을 앞두고 청도군 편입으로 영천시·청도군 선거구로 변경되어 폐지되었으며,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이 주로 당선되었다. -
경상북도의 폐지된 선거구 -
상주군 을
상주군 을은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상주군 일부에 설치되었다가 1963년 상주군 갑 선거구와 통합되며 폐지된 선거구로, 전진한, 백남식, 김정근, 김기영 등이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무소속 후보 강세 속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2. 역사
1949년, 영일군 포항읍이 포항부로 승격되었으며 이내 포항부는 포항시로 개칭되었다. 이에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포항시 전 지역을 관할하는 선거구로 신설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영일군 갑, 영일군 을, 울릉군 선거구와 통합되며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를 이루게 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3. 역대 국회의원
이 선거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대한민국의 초기 정치사에서 다양한 정당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포항 지역 사회의 발전과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에 기여하였다.
4. 역대 선거 결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청년당 김판석 후보가,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하태환 후보가,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하태환 후보가,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이상면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4.1. 제2대 국회의원 선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한청년당 김판석 후보가 당선되었다.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당시 정당 정치의 미성숙과 지역 기반 정치인들의 강세를 반영한다.
| 후보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 김판석 | 대한청년당 | 3,157 | 16.83 |
| 강주석 | 무소속 | 2,671 | 14.24 |
| 박순석 | 무소속 | 2,465 | 13.14 |
| 배수인 | 무소속 | 1,905 | 10.15 |
| 김일조 | 대한노동총연맹 | 1,717 | 9.15 |
| 최이봉 | 무소속 | 1,391 | 7.41 |
| 최준봉 | 무소속 | 970 | 5.17 |
| 변석화 | 무소속 | 957 | 5.10 |
| 이병곤 | 무소속 | 909 | 4.84 |
| 김민돈 | 대한청년당 | 807 | 4.30 |
| 박동주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756 | 4.03 |
| 백홍기 | 무소속 | 753 | 4.01 |
| 황갑이 | 무소속 | 296 | 1.57 |
| | || 18,754 || 100.00 |
4.2.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하태환 후보가 45.03%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자유당 김판석 후보는 30.96%의 득표율로 낙선하였는데,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지역 사회의 불만이 표출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 후보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 하태환 | 무소속 | 9,531 | 45.03 |
| 김판석 | 자유당 | 6,553 | 30.96 |
| 문달식 | 무소속 | 3,209 | 15.16 |
| 강주석 | 무소속 | 1,642 | 7.75 |
| 김해진 | 무소속 | 230 | 1.08 |
| 김호용 | 무소속 | 0 | 0 |
| 이상조 | 자유당 | 0 | 0 |
| 최준봉 | 자유당 | 0 | 0 |
4.3.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하태환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였다. 민주당 이상면 후보는 19.6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시 야당의 약세를 보여주었다.
| 후보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 하태환 | 자유당 | 13,079 | 60.96 |
| 이상면 | 민주당 | 4,226 | 19.69 |
| 김병준 | 무소속 | 4,150 | 19.34 |
| ||| 21,455 || 100 |
4.4. 제5대 국회의원 선거 (1960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이상면 후보가 51.9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선거로,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하태환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33.95%의 득표율을 기록하였고, 사회대중당 임부갑 후보는 7.16%, 무소속 정장출 후보는 5.25%, 무소속 박수영 후보는 1.66%를 득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