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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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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란체스코 코코는 이탈리아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수, 윙백으로 활약했다. AC 밀란 유스팀에서 시작하여 프로 데뷔했으며, 파올로 말디니의 후계자로 주목받았으나 임대 생활을 전전했다. FC 바르셀로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에서 뛰었으며,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2002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연예계로 진출하여 모델,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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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코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프란체스코 코코
출생일1977년 1월 8일
출생지이탈리아 시칠리아주 파테르노
신장1.81m
포지션DF (LSB)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1993-1995: 밀란
클럽1995-2002: 밀란 (출장: 56, 골: 2)
1997-1998: → 비첸차 (임대) (출장: 20, 골: 0)
1999-2000: → 토리노 (임대) (출장: 21, 골: 0)
2001-2002: → 바르셀로나 (임대) (출장: 23, 골: 1)
2002-2007: 인터 밀란 (출장: 26, 골: 0)
2005-2006: → 리보르노 (임대) (출장: 28, 골: 0)
2006-2007: → 토리노 (임대) (출장: 3, 골: 0)
통산 출장 및 득점출장: 177, 득점: 3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국가대표1994-1995: 이탈리아 U-18 (출장: 6, 골: 0)
1995-2000: 이탈리아 U-21 (출장: 20, 골: 1)
1997: 이탈리아 U-23 (출장: 2, 골: 0)
국가대표2000-2002: 이탈리아 (출장: 17, 골: 0)

2. 클럽 경력

프란체스코 코코는 1993년 AC 밀란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5년에 프로 데뷔했다. 파올로 말디니의 후계자로 주목받았으나, 말디니가 건재했기에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비첸차 칼초, 토리노 FC, FC 바르셀로나 등에서 임대 생활을 했다. 2002년 클라렌스 세도르프와의 맞교환 형식으로 인테르로 이적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토리노 FC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코코는 말디니의 후계자로 불렸지만, 정작 말디니보다 먼저 은퇴하는 불운을 겪었다.

2. 1. AC 밀란 (1993-2002)

이탈리아 파테르노에서 태어난 코코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AC 밀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AC 밀란 유소년팀에서 성장하여 1995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6][2] 당시 AC 밀란의 주전 왼쪽 수비수는 파올로 말디니였는데, 코코는 일찌감치 말디니의 후계자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말디니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에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비첸차 칼초, 토리노 FC 등에서 임대 생활을 했다.

2000년, U-21 대표팀 소속으로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같은 해 10월 7일 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2000-01 시즌, 토리노에서 임대 복귀한 코코는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아래에서 왼쪽 윙백으로 능력을 발휘하며 챔피언스 리그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 파티 테림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되어 스페인 리그FC 바르셀로나로 임대되어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첫 이탈리아 선수가 되었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말디니의 후계자"라는 평가와는 멀어져 갔지만, 1995-96 시즌과 1998-99 시즌에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한 밀란 팀의 일원이었다.[6][2]

2. 2. FC 바르셀로나 (2001-2002, 임대)

2000-01 시즌,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아래에서 왼쪽 윙백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 파티 테림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되어 스페인 프리메라 디비시온FC 바르셀로나로 임대되었다. 코코는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첫 이탈리아 선수가 되었다.[6]

2. 3. 인테르 밀란 (2002-2007)

2002년, AC 밀란은 클라렌스 세도르프와 코코를 맞교환하는 부분 교환 거래를 통해 인테르로 이적시켰다. 이 거래에서 코코의 가치는 2800만유로였다.[6] 인테르는 코코를 영입하여 2002-03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진출하고 2004–05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코코는 잦은 부상으로 팀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코코는 이후 인터뷰에서 2003년 11월 인테르가 자신의 허리 수술을 허락한 것은 실수였다고 회고하며, 당시 한 달 이상 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결국 2년 동안 회복해야 했다고 밝혔다.

2005-06 시즌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을 거절하고 리보르노로 임대되었는데, 이는 Yeading FC와의 친선 경기에서 5-0으로 승리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후였다. 리보르노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임대 계약이 끝나고 인테르로 복귀했다. 2006년 여름, 새로운 클럽을 찾으려 했으나 협상이 모두 실패하면서 인테르에 잔류했다.

2002-03 시즌, 세도르프와의 트레이드로 인테르로 이적한 코코는 시즌 전반 추간판 탈출증 악화로 부진했으나, 후반에는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4월 인테르와 발렌시아의 경기에서 심각한 근육 파열 부상을 입고 다시 이탈했다. 5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복귀했지만, 거친 태클로 인해 다시 부상을 당했다.

2003-04 시즌에도 불운은 계속되어 공식전 4경기에서 추간판 탈출증이 악화되었다. 11월에 허리 수술을 받았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왼쪽 다리 신경이 끊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여겨졌지만, 끈질긴 재활 끝에 04-05 시즌 팀에 복귀했다. 그러나 만치니 감독은 코코를 선호하지 않아 전력 구상에서 제외되었고, 1월 이적을 희망했지만 구단의 잔류 방침으로 무산되었다.

2005-06 시즌, 리보르노도나도니 감독의 신뢰를 얻어 리보르노로 임대되었다. 윙백으로 활약하며 "완전 부활"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부진으로 결장이 예상되던 4월 2일 UEFA컵 출전권을 건 중요한 경기에 무리하게 출전했다가 왼쪽 무릎 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었다.

2006-07 시즌, 무릎 회복이 더뎌 인테르에서 방조차 배정받지 못하는 냉대를 받았다. 1월에 토리노로 임대되었지만, 3경기 출전에 그쳤다.[4]

2. 4. 말년 (임대)

프란체스코 코코(Francesco Cocoit)는 토리노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6] 아이러니하게도 코코가 말디니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말디니는 2009년까지 현역으로 뛰었고 오히려 코코가 말디니보다 더 빠른 2007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6] 잦은 부상으로 인한 기량 저하와 파올로 말디니의 그늘에 가려 성장을 못한 것이 매우 컸다.

2006-07 시즌 토리노로 임대되었지만,[6] 3경기 출전에 그쳤다.[4] 무릎 회복이 좋지 않아 인테르에서는 방도 배정받지 못하는 냉대를 받았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에 의해 아주리 군단의 일원이 된 코코는 2002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멕시코, 크로아티아, 에콰도르와 함께 G조에 속했다.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는 에콰도르를 2-0으로 이겼지만, 크로아티아에 1-2로 역전패하며 위기에 몰렸다. 멕시코와의 최종전에서는 하레드 보르헤티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거두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코코는 멕시코전에서 후반 18분에 크리스티안 파누치와 교체되어 월드컵 무대를 처음 밟았다.

16강전에서 이탈리아는 한국과 맞붙었다. 코코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경기 초반 송종국에게 거친 태클을 하여 경고를 받았다. 전반 42분에는 다미아노 톰마시의 팔꿈치에 맞아 왼쪽 눈두덩이가 찢어져 붕대를 감고 뛰는 부상을 입었다. 이탈리아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후반 막판 설기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연장전에서 프란체스코 토티가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에 놓였다. 결국 연장 후반 안정환에게 골든골을 내주며 1-2로 역전패했고, 코코의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코코는 2000년 10월 7일 루마니아와의 2002년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2002년 9월까지 총 17경기를 뛰었다.[6]

3. 1. 청소년 대표팀

코코는 1995년 유럽 U-18 선수권 대회 예선에서 이탈리아 U-18 팀에서 뛰었고, 1996년과 1998년 UEFA U-21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에서 이탈리아 U-21 팀에서 활약했으며, 마르코 타르델리 감독 아래 2000년 우승 과정에서도 결선 라운드에 출전했다. 또한, 코코는 1997년 지중해 게임에서 우승한 이탈리아 U-23 팀에서도 뛰었다.[2]

3. 2. 성인 대표팀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에 의해 아주리 군단의 일원이 된 코코는 2002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탈리아는 멕시코, 크로아티아, 에콰도르와 함께 G조에 속했다. 이탈리아는 에콰도르와의 첫 경기에서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활약으로 2-0 승리를 거두었으나, 크로아티아와의 2차전에서는 1-2로 역전패하며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렸다. 멕시코와의 3차전에서 하레드 보르헤티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지만,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코코는 멕시코전에서 후반 18분에 크리스티안 파누치와 교체 투입되어 월드컵 무대를 처음 밟았다.

16강전에서 이탈리아는 대한민국과 맞붙었다. 코코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인해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경기 초반 송종국에게 거친 태클을 범해 경고를 받는 등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전반 42분에는 팀 동료 다미아노 톰마시의 팔꿈치에 맞아 왼쪽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붕대를 감고 뛰어야 했다. 이탈리아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후반 막판 설기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연장전에서 프란체스코 토티가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에 놓였다. 결국 연장 후반 안정환에게 골든골을 허용하며 1-2로 역전패했다. 이 경기는 코코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경기가 되었다.

코코는 2000년 10월 7일 루마니아와의 2002년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2002년 9월까지 총 17경기를 소화했다.[6]

4. 플레이 스타일

코코는 빠르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며, 전술적으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주로 공격적인 성향의 풀백 또는 윙백으로 기용되었는데, 이는 그의 끈기, 활동량, 수비 및 공격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른발잡이였지만, 오른쪽과 왼쪽 측면 모두에서 뛸 수 있었다. 강력한 태클, 뛰어난 신체적 능력, 투지, 그리고 양발을 사용한 크로스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속도, 지구력, 기술, 그리고 기량 덕분에, 때때로 와이드 미드필더로, 3–5–2 또는 3–4–3 포메이션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종 부상에 시달리고 기복이 심했으며, 성격이 까다롭고 경기장 밖에서의 규율이 부족했다. 클럽과 국가대표팀 모두에서 그의 기회는 제한적이었는데, 이는 그가 밀란이탈리아의 주전 레프트 백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파올로 말디니가 그의 포지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5. 은퇴 이후

코코는 은퇴 이후 연예계와 사업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연예인 및 모델 활동과 함께 의류 브랜드 "Urban 77"의 CEO를 맡고 있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상점을 운영하고, 책의 서문을 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5. 1. 연예계 활동

현역 시절부터 연예계 진출에 관심이 많았던 코코는 은퇴 후 여러 팀의 제안을 거절하고 연예계에 진출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연예인 및 모델로 활동하며, 의류 브랜드 Urban 77의 CEO를 맡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미남으로 유명했던 그는 40대에도 여전히 멋진 외모를 자랑한다.

사업가로서 코코는 아버지와 함께 상점을 운영하며, 자신의 의류 브랜드 "Urban 77"을 소유하고 있다. 이탈리아 사교계에서 유명 인사로 알려져 있으며, 책 ''Mio marito è un calciatore'' (''내 남편은 축구 선수'')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마누엘라 아르쿠리와 오랫동안 연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2]

은퇴 후에는 연기 경력을 쌓기 위해 TV 프로그램 ''생존자''의 이탈리아 버전인 ''L'Isola dei Famosi''에 출연했으나, 시작 며칠 만에 자진 하차했다.[2]

5. 2. 사업 활동

코코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 연예계로 진출하여 이탈리아에서 연예인 및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의류 브랜드 "Urban 77"의 CEO로도 활동 중이다. 젊은 시절부터 미남으로 유명했던 그는 40대가 된 현재도 여전히 멋진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2]

선수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상점을 운영했으며, "Urban 77"이라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이탈리아 사교계에서 유명 인사로 알려져 있으며, ''내 남편은 축구 선수''라는 책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2]

프로 축구 선수 은퇴 후, 연기에 관심을 보이며 TV 프로그램 ''생존자''의 이탈리아판 ''L'Isola dei Famosi''에 출연했으나, 프로그램 시작 며칠 만에 자진 하차했다.[2] 은퇴 후에는 할리우드 스타가 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사업가로서 아버지와 함께 카타니아와 밀라노에 매장을 열고 "Urban77"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6. 사생활

코코는 축구 선수이자 사업가였다. 아버지 안토니오와 함께 상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Urban 77"이라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유명인으로, 파티 및 사교계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Mio marito è un calciatore'' (''내 남편은 축구 선수'')라는 책의 서문을 썼다.[2]

프로 축구 선수 은퇴 후, 연기 경력을 쌓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밝혔으며, TV 프로그램 ''생존자''의 이탈리아 유명인 버전인 ''L'Isola dei Famosi''에 출연하기로 했으나, 프로그램 시작 며칠 만에 자발적으로 하차했다.[2]

수려한 외모와 본인이 인정하는 여성 편력으로 끊임없이 염문을 뿌렸다. 이탈리아의 국민적 아이돌 마누엘라 아르쿠리와의 교제와 결별, 그리고 이후 사생활의 문란함 등 가십을 끊임없이 제공하며 파란만장한 20대를 보냈다.

참조

[1] 뉴스 What happened to Francesco Coco, once Clarence Seedorf’s equal? https://www.planetfo[...] Planetfootball.com 2018-10-19
[2] 웹사이트 Che fine ha fatto? Coco, quando per un calciatore il pallone diventa secondario http://www.calciomer[...] Calciomercato.com 2017-05-09
[3] 뉴스 "Fuma durante l'allenamento" Il Manchester City liquida Coco – Calcio – Sport – Repubblica.it http://www.repubblic[...]
[4] 웹사이트 Coco contract dissolved https://web.archive.[...] Inter.it 2007-09-07
[5] 웹사이트 Francesco goes to Hollywood https://web.archive.[...] Football Italia 2007-09-08
[6] 웹사이트 Francesco Coco: a case of what might have been http://www.worldsocc[...] World Soccer 2017-05-09
[7] 웹사이트 Lotta per la coppa https://web.archive.[...] RaiSport 2014-11-09
[8] 웹사이트 MEMENTO - Francesco Coco, dal Milan all'Isola dei Famosi https://web.archive.[...] 2014-11-09
[9] 웹사이트 Italy squad at a glance http://news.bbc.co.u[...] BBC 2015-11-07
[10] 웹사이트 Francesco Coco http://it.eurosport.[...] Eurosport 2015-12-18
[11] 웹사이트 Repubblica Ceca 1-2 Italia http://it.uefa.com/u[...] UEFA.com 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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