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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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로, 2012년 4월 14일 세리에 B 경기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아탈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우디네세, 볼로냐, 비첸차 등 여러 클럽에서 뛰었으며, 이탈리아 U-17, U-21 대표팀으로도 활약했다. 모로시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탈리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선수 안전과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망 후, 그의 등번호 25번은 리보르노와 비첸차에서 영구 결번되었고, 아탈란타 홈구장의 일부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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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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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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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 |
출생일 | 1986년 7월 5일 |
출생지 | 베르가모, 이탈리아 |
사망일 | 2012년 4월 14일 (향년 25세) |
사망지 | 페스카라, 이탈리아 |
포지션 | 미드필더 |
클럽 경력 | |
유소년 클럽 | 아탈란타 |
2005–2007 | 우디네세 |
출장 (골) | 5 (0) |
2006–2007 | → 볼로냐 (임대) |
출장 (골) | 16 (0) |
2007–2009 | 비첸차 |
출장 (골) | 66 (1) |
2009–2012 | 우디네세 |
출장 (골) | 0 (0) |
2009–2010 | → 레지나 (임대) |
출장 (골) | 17 (0) |
2010 | → 파도바 (임대) |
출장 (골) | 14 (0) |
2011 | → 비첸차 (임대) |
출장 (골) | 15 (0) |
2012 | → 리보르노 (임대) |
출장 (골) | 8 (0) |
총 출장 (골) | 141 (1) |
국가대표 경력 | |
2001–2003 | 이탈리아 U17 |
출장 (골) | 16 (1) |
2003–2004 | 이탈리아 U18 |
출장 (골) | 7 (0) |
2004–2005 | 이탈리아 U19 |
출장 (골) | 12 (0) |
2005–2007 | 이탈리아 U20 |
출장 (골) | 3 (0) |
2006–2009 | 이탈리아 U21 |
출장 (골) | 18 (0) |
2. 어린 시절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1986년 7월 5일 이탈리아 베르가모에서 태어났다. 2001년, 그가 15세 때 어머니 카밀라가 세상을 떠났다. 2003년에는 아버지 알도가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를 가진 남동생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모로시니는 장애를 가진 누나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1]
모로시니는 아탈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우디네세를 거쳐 여러 팀에서 임대 생활을 했다. 2005년 우디네세와 공동 소유 계약을 맺었고, 2006년 우디네세가 완전한 소유권을 확보했다.[3] 이후 볼로냐, 비첸차, 레지나, 파도바, 리보르노 등에서 임대 선수로 뛰었다. 특히 비첸차에서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그리고 2011년에 다시 임대되어 활약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후, 모로시니는 "이러한 일들이 인생을 바꾸지만, 동시에 분노하게 만들고 부모님의 꿈이기도 했던 것을 이루도록 도와주었다"라고 말했다.[2]
3. 클럽 경력
3. 1. 아탈란타 BC
모로시니는 고향 클럽인 아탈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5년 공동 소유 계약을 통해 우디네세로 이적했다. 2006년 우디네세가 아탈란타로부터 모로시니의 완전한 소유권을 확보했다.[3]
3. 2. 우디네세 칼초
모로시니는 고향 클럽인 아탈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5년 공동 소유 계약을 통해 우디네세로 이적했다.[3]
2005년 10월 23일, 세리에 A 우디네세-인터 경기에 데뷔하여 총 5경기에 출전했다. 2005-06 시즌에는 레프스키 소피아-우디네세 경기에서 UEFA컵에도 데뷔했다.[3]
2006년 우디네세는 아탈란타로부터 모로시니의 완전한 소유권을 확보했고,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볼로냐로 임대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등록권의 절반은 세리에 B 클럽인 비첸차에 양도되었다. 모로시니는 비첸차와 4년 계약을 맺었고 500000EUR에 판매되었다. 우디네세는 300000EUR에 비첸차로부터 모로시니를 다시 영입했다.[3]
3. 3. 임대 생활
모로시니는 고향 클럽인 아탈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5년 공동 소유 계약을 통해 우디네세로 이적했다. 2006년 우디네세는 아탈란타로부터 모로시니의 완전한 소유권을 확보했다.[3] 이후 여러 팀으로 임대 생활을 했다.
3. 3. 1. 볼로냐 FC 1909
모로시니it는 2006년 우디네세가 아탈란타로부터 완전 영입한 후, 경험을 쌓기 위해 볼로냐로 임대되었다.[3]
3. 3. 2. 비첸차 칼초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모로시니는 세리에 B 클럽인 비첸차에 등록권의 절반이 양도되었다. 모로시니는 비첸차와 4년 계약을 맺었고 500000EUR에 판매되었다. 우디네세는 300000EUR에 비첸차로부터 모로시니를 다시 영입했다.[3] 2011년 1월, 그는 비첸차로 임대 이적하여 15경기에 출전했다.
3. 3. 3. 레지나 칼초
2009년 8월 31일, 모로시니는 세리에 B로 강등된 레지나에 임대 이적했다.[3]
3. 3. 4. 칼초 파도바
2010년 2월 1일, 모로시니는 파도바로 임대되었다. 2010년 6월, 파도바는 그를 완전히 영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4]
3. 3. 5. AS 리보르노 칼초
2012년 1월, 리보르노로 임대되어 8경기에 출전했다.[5][6] 볼로냐부터 리보르노까지 임대 이적팀은 모두 세리에 B의 클럽이었다.
4. 국가대표 경력
모로시니는 2001년 이탈리아 U-17 대표팀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했고, 2006년에는 U-21 대표팀에 데뷔했다.[7] 2001년 9월, 불과 15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U-17 대표팀에 데뷔했으며, 경력 동안 단 2골밖에 넣지 못했지만 그중 한 골은 이탈리아 U-17 대표팀 경기에서 득점한 것이다. 그는 2009년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 백업으로 차출되었다.[7][8] 2006년 9월에는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 데뷔했고, 2009년 스웨덴에서 열린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는 후보 선수로 발탁되어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24]
5. 갑작스러운 죽음
리보르노 소속이던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2012년 4월 14일, 페스카라와의 경기 중 31분에 심근경색으로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9] 모로시니는 들것에 실릴 당시에는 의식이 있었고, 경기장 안에서 자동제세동기(AED) 등을 이용한 응급처치가 시도되었다.[10][11] ANSA는 “경찰 차량이 경기장 입구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구급차로의 이송이 1분 가까이 지연되었다”고 보도했지만, 심장 전문의는 치료 시작이 지연되지 않았더라도 이미 때늦었을 것이라고 말했다.[12] 모로시니를 태운 구급차는 산토 스피리토 병원으로 향했지만,[14] 병원에 도착하기 전 사망했다.[15] 이후 리보르노가 2-0으로 앞서던 경기는 중단되었고,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나는” 선수들도 있었다.[13]
이탈리아 축구계에서는 1969년 AS 로마의 줄리아노 타콜라(en)가 경기 전 심부전으로 쓰러져 사망했고, 1977년 페루자의 레나토 쿠리(en)가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다.[33] 1989년에는 AS 로마의 리오넬로 만프레도니아가 경기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2011년에는 AC 밀란의 안토니오 카사노가 경기 중 건강 이상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33] 모로시니의 사망 불과 한 달 전에는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파브리스 무암바가 비슷한 심정지 상태에 빠졌지만, 중환자실 치료 끝에 목숨을 건졌다.[15]
이탈리아 축구 연맹은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모든 리그 경기를 연기했다.[17] 4월 15일, 모로시니가 과거 뛰었던 비첸차는 모로시니가 달았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으로 하기로 발표했다.[18] 같은 날 리보르노도 영구 결번으로 결정했다.[18] 17일, 모로시니의 고향 베르가모를 연고로 하는 아탈란타는 홈 경기장인 스타디오 아틀레티 아주리 디 이탈리아 남쪽 골대 뒤 스탠드 이름을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로 변경했다.[21]
5. 1. 경기 중 심장마비
2012년 4월 14일, 세리에 B 페스카라 원정 경기에서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리보르노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했으나, 전반 31분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9] 그는 일어서려고 애쓰며 비틀거리다가 의식을 잃었고, 그라운드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다.[10] 제세동기가 사용되었고, 들것으로 옮겨질 때는 의식이 있었다.[11]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시 경찰차가 약 1분 동안 구급차의 경기장 출구를 막았지만, 심장 전문의는 그 지연이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12] 모로시니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 리보르노가 2-0으로 앞서던 경기는 중단되었고, 일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났다.[13]모로시니는 산토 스피리토 병원으로 긴급히 이송되었지만, 나중에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14][15] 그의 동료 선수들이 병원에 간 후 "외침과 눈물의 폭발"이 있은 후에야 이탈리아 언론은 모로시니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16] 그 주말 이탈리아 축구 리그 경기는 모두 중단되었다.[17] 리보르노와 비첸차는 모로시니가 선수 시절 달았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18]
모로시니의 죽음은 파브리스 뮤암바가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지 4주 후에 발생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15]
5. 2. 응급 처치와 이송
2012년 4월 14일, 세리에 B 페스카라 원정 경기 도중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31분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9] 그는 일어서려고 애쓰다 의식을 잃었고, 그라운드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다.[10] 모로시니에게는 제세동기가 사용되었고, 들것으로 옮겨질 때는 의식이 있었다.[11]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시 경찰차가 약 1분 동안 구급차의 경기장 출구를 막았지만, 심장 전문의는 그 지연이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12] 모로시니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 리보르노가 2-0으로 앞서던 경기는 중단되었고, 일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났다.[13]모로시니는 산토 스피리토 병원으로 긴급히 이송되었지만, 나중에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14][15]
5. 3. 사망
2012년 4월 14일, 리보르노 소속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세리에 B 페스카라 원정 경기 도중 31분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9] 모로시니는 일어서려고 애쓰다 의식을 잃었고, 그라운드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다.[10] 제세동기가 사용되었고, 들것에 실려 옮겨질 때는 의식이 있었다.[11] 안사(ANSA) 통신은 시 경찰차가 약 1분 동안 구급차의 경기장 출구를 막았지만, 심장 전문의는 그 지연이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았다고 보도했다.[12] 리보르노가 2-0으로 앞서던 경기는 중단되었고, 일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났다.[13]모로시니는 산토 스피리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나,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14][15] 동료 선수들이 병원을 찾은 후 "외침과 눈물의 폭발"이 있은 뒤에야 이탈리아 언론은 모로시니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16] 그 주말 이탈리아 축구 리그 모든 경기가 중단되었다.[17] 리보르노와 비첸차는 모로시니가 선수 시절 달았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했다.[18]
모로시니의 죽음은 파브리스 무암바가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지 4주 만에 발생한 일로, 이탈리아 축구계에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15] 가족이 없던 장애인 여동생은 우디네세 선수 안토니오 디 나탈레가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돌볼 것이라고 밝혔다.[19][20]
모로시니 사망 며칠 후, 아탈란타 홈구장 스타디오 아틀레티 아주리 디 이탈리아의 쿠르바 수드는 그의 명예를 기려 "쿠르바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로 이름이 바뀌었다.[21]
사망 3주년을 맞아 유벤투스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은 2014-15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모나코 원정 경기 1-0 승리를 모로시니에게 바쳤다.[22] 프리마베라 캄피오나토 최우수 선수상은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6. 죽음 이후
파브리스 무암바가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지 4주 만에 모로시니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탈리아 축구계는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15] 모로시니의 여동생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 가족 없이 홀로 남겨졌는데, 우디네세의 안토니오 디 나탈레 선수가 그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돌보겠다고 약속했다.[19][20]
아탈란타는 모로시니 사후 홈구장인 스타디오 아틀레티 아주리 디 이탈리아의 남쪽 스탠드(쿠르바 수드)를 '쿠르바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로 명명하여 그를 기렸다.[21] 사망 3주년에는 유벤투스의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이 2014-15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 모나코 원정 경기에서 거둔 1-0 승리를 모로시니에게 바쳤다.[22] 프리마베라 캄피오나토 최우수 선수상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6. 1. 이탈리아 축구계의 애도
모로시니의 사망 소식은 이탈리아 축구계 전체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가 속했던 리보르노와 비첸차는 모로시니가 선수 시절 달았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18] 파브리스 무암바가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지 4주 후에 발생한 일이었기에,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더욱 높아졌다.[15]이탈리아 축구 연맹은 모로시니의 사망으로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예정되었던 모든 리그 경기를 연기했다.[24] 리보르노는 4월 16일, 모로시니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공식 결정했고,[38] 비첸차 역시 4월 15일에 모로시니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발표했다.[37]
6. 2. 등번호 영구 결번
리보르노와 비첸차는 모로시니가 선수 시절 달았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18] 2012년 4월 15일, 모로시니가 과거 뛰었던 비첸차는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으로 발표했고,[37][38] 같은 날 리보르노도 영구 결번으로 할 생각을 밝혔다.[37] 다음 날인 4월 16일에 리보르노는 공식적으로 등번호 25번을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38]6. 3. 추모
2012년 4월 14일,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리보르노 소속으로 세리에 B 페스카라 원정 경기 도중 31분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9] 그는 일어서려고 애쓰다 의식을 잃었고, 그라운드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다.[10] 제세동기가 사용되었고, 들것에 실려나갈 때는 의식이 있었다.[11] 안사(ANSA) 통신은 시 경찰차가 구급차의 경기장 출구를 막아 지연이 발생했다고 보도했지만, 심장 전문의는 그 지연이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12] 모로시니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 리보르노가 2-0으로 앞서던 경기는 중단되었고, 일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났다.[13]모로시니는 산토 스피리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14][15] 이탈리아 언론은 그의 동료 선수들이 병원에 간 후 "외침과 눈물의 폭발"이 있은 후에야 모로시니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16] 그 주말 이탈리아 축구 리그 경기는 모두 중단되었다.[17] 리보르노와 비첸차는 모로시니가 선수 시절 달았던 등번호 25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했다.[18]
모로시니의 죽음은 파브리스 무암바가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지 4주 후에 발생했으며,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15] 장애를 가진 모로시니의 여동생은 가족 없이 남겨졌다. 그러나 우디네세 선수 안토니오 디 나탈레는 그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돌볼 것이라고 밝혔다.[19][20]
며칠 후, 아탈란타의 홈구장인 스타디오 아틀레티 아주리 디 이탈리아의 쿠르바 수드는 그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쿠르바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로 이름이 바뀌었다.[21]
사망 3주년을 맞아 유벤투스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은 2014-15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 모나코 원정 경기에서 1-0 승리를 모로시니에게 바쳤다.[22] 프리마베라 캄피오나토 최우수 선수상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7. 가족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가 15세였던 2001년에 어머니가 사망했고, 2003년에는 아버지도 사망했다.[39] [40] [41] [42] 아버지 사후, 장애를 가진 남동생이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면서, 장애를 가진 누나와 모로시니만 남게 되었다.[39] [40] [41] [42]
8. 영향 및 유산
모로시니의 죽음은 이탈리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선수 안전 문제, 특히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4월 14일, 세리에 B 페스카라 원정 경기 도중 모로시니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다.[9] 안사(ANSA) 통신은 시 경찰차가 구급차의 경기장 출구를 막아 이송이 지연되었다고 보도했지만, 심장 전문의는 이 지연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12] 모로시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도착 전에 사망했다.[14][15]
이 사건은 파브리스 무암바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지 불과 4주 만에 발생한 사건으로,[15]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69년 AS 로마의 줄리아노 타콜라(en)와 1977년 페루자 칼초의 레나토 쿠리(en)의 사망 사건과 같이, 경기 중 심장 문제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33]
이탈리아 축구계에서는 1989년 AS 로마의 리오넬로 만프레도니아가 경기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2011년에는 AC 밀란의 안토니오 카사노가 경기 중 건강 이상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33] 모로시니 사망 직전에는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파브리스 무암바가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가 중환자실 치료 끝에 생존한 사건도 있었다.[34] 다른 종목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탈리아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비고르 보보렌타는 2012년 3월 24일 모로시니와 같은 이유로 사망했다.[35]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탈리아 축구계를 비롯한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응급 의료 시스템 강화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탈리아 축구 연맹은 모로시니의 사망으로 14일부터 16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모든 리그 경기를 연기했다.[36][24]
8. 1. 선수 안전 문제 제기
2012년 4월 14일, 세리에 B 페스카라 원정 경기 도중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9] 안사(ANSA) 통신은 시 경찰차가 구급차의 경기장 출구를 막아 이송이 지연되었다고 보도했지만, 심장 전문의는 지연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12] 모로시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도착 전에 사망했다.[14][15]모로시니의 죽음은 파브리스 무암바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지 불과 4주 만에 발생한 사건으로,[15]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선수 안전, 특히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1969년 AS 로마의 줄리아노 타콜라, 1977년 페루자 칼초의 레나토 쿠리(en)의 사망 사건과 같이, 경기 중 심장 문제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33]
8. 2. 응급 의료 시스템 강화 논의
모로시니의 죽음은 파브리스 무암바가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지 불과 4주 만에 발생한 사건으로, 이탈리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15]이탈리아 축구계에서는 이전에도 비슷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1969년 AS 로마의 줄리아노 타콜라(en)는 경기 전 심부전으로 쓰러져 사망했고, 1977년 페루자 칼초의 레나토 쿠리(en)는 경기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33] 1989년에는 AS 로마의 리오넬로 만프레도니아가 경기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으며, 2011년에는 AC 밀란의 안토니오 카사노가 경기 도중 건강 이상을 호소하여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33] 모로시니 사망 직전에는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파브리스 무암바가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가 중환자실 치료 끝에 생존한 사건도 있었다.[34] 다른 종목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탈리아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비고르 보보렌타는 2012년 3월 24일 모로시니와 같은 이유로 사망했다.[35]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탈리아 축구계를 비롯한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응급 의료 시스템 강화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8. 3. 사회적 인식 변화
모로시니의 죽음은 파브리스 무암바가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지 4주 후에 발생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심장 질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15]이탈리아 축구계에서는 1969년 AS 로마의 줄리아노 타콜라(en)가 경기 전 심부전으로 쓰러져 사망했고, 1977년 페루자 칼초의 레나토 쿠리(en)가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다.[33] 1989년에는 AS 로마의 리오넬로 만프레도니아가 경기 중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2011년에는 AC 밀란의 안토니오 카사노가 경기 중 건강 이상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33] 모로시니 사망 불과 한 달 전에는 잉글랜드 FA컵 경기에서 파브리스 무암바가 비슷한 심정지 상태에 빠졌지만, 중환자실 치료 끝에 목숨을 건졌다.[34] 이탈리아의 다른 스포츠를 보면, 이탈리아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비고르 보보렌타가 3월 24일에 모로시니와 같은 사례로 사망했다.[35]
이탈리아 축구 연맹은 모로시니의 사망으로 14일부터 16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모든 리그 경기를 연기했다.[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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