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오르데네비츠
1. 개요
프랑크 오르데네비츠는 은퇴한 독일의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했다.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경험했으며, 1988년 1. FC 쾰른과의 경기에서 핸드볼 반칙을 자백하여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J리그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에서 1994년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함부르크 SV, 베갈타 센다이 등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다. 1987년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경기에 출전했다.
| 이름 | 프랑크 오르데네비츠 |
|---|---|
| 별칭 | 오츠ェ (Otze) |
| 출생일 | 1965년 3월 25일 |
| 출생지 | 서독 도르프마르크 |
| 신장 | 1.80m |
| 포지션 | FW |
| 유소년 클럽 | 1979-1981: TSV 도르프마르크 1981-1983: 베르더 브레멘 |
|---|---|
| 클럽 | 1983-1985: 베르더 브레멘 (A) (출장 61, 골 51) 1983-1989: 베르더 브레멘 (출장 125, 골 37) 1989-1993: 1. FC 쾰른 (출장 126, 골 30) 1993-1994: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출장 55, 골 37) 1995: 함부르거 SV (출장 21, 골 1) 1996: 브루멜 센다이 (출장 28, 골 20) 1997-1998: VfB 올덴부르크 (출장 28, 골 3) 1997: 로텐부르거 SV 1999-2001: TSV 오타스베르크 2001-2006: VSK 오스터홀츠-샤름베크 |
| 총 출장 및 골 | 출장 426, 골 178 |
| 국가대표팀 | 1987: 서독 (출장 2, 골 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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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손흥민
손흥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윙어 또는 스트라이커로 뛰며 함부르크 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1965년 출생 -
체링 톱게
체링 톱게는 2013년부터 2018년, 그리고 2024년부터 현재까지 부탄의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정치인으로, 인민민주당 창당을 주도하며 정계에 입문하여 경제 발전, 투명성 강화, 그리고 탄소 중립 유지를 위한 환경 운동에 힘쓰고 있다. -
1965년 출생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J1리그의 축구 선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J1리그의 축구 선수 -
스키가라 마사히로
스키가라 마사히로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988년부터 1998년까지 여러 클럽에서 선수로 활동했으며, 일본 국가대표 B팀에 선발된 경력이 있고, 은퇴 후에는 고등학교 축구팀 감독을 맡았다.
2. 클럽 경력
프랑크 오르데네비츠는 선수 시절 여러 클럽을 거치며 다양한 활약을 펼쳤다.
| 기간 | 클럽 | 비고 |
|---|---|---|
| 1983년-1989년 | SV 베르더 브레멘 | 분데스리가 우승 (1987-88), FIFA 페어플레이상 수상 (1988) |
| 1989년-1993년 | 1. FC 쾰른 | |
| 1993년 7월-1994년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 J리그 득점왕 (1994) |
| 1995년 | 함부르거 SV | |
| 1996년 | 베갈타 센다이 | |
| 1997년 | 로텐부르거 SV | |
| 1997년-1999년 | VfB 올덴부르크 | |
| 1999년-2001년 | TSV 오터스베르크 | |
| 2001년-2006년 | VSK 오스터홀츠-샤름베크 |
이후 독일 아마추어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다 은퇴했으나, 2005년 9월에 현역으로 복귀했다. 2011년 5월 17일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자선 경기에 J리그 OB로 출전했다.
2.1. SV 베르더 브레멘
1983년 SV 베르더 브레멘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7-88 시즌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에 기여했다. 1988년에는 우승이 걸린 경기에서 심판이 보지 못한 자신의 핸드볼 파울을 스스로 인정하여 당해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1988년 5월 7일 1. FC 쾰른과의 리그 경기에서 그는 페널티 구역 내에서의 핸드볼 반칙을 주심에게 자백했다. 쾰른은 이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그의 스포츠 정신 때문에 그는 그 시즌에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오체'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레멘 시절 아오키 야스히코와 팀 동료였다.
2.2. 1. FC 쾰른
1989-90 시즌을 앞두고 1. FC 쾰른에 입단했다. 1991년 5월 6일 MSV 뒤스부르크와의 DFB-포칼 준결승전에서 옐로카드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전 소속팀인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결승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에리히 루테묄러 코치는 오르데네비츠에게 다음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일부러 퇴장당할 것을 조언했고, 오르데네비츠는 의도적으로 공을 쳐서 퇴장당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루테묄러는 이 계획을 인정하며 "오츠가 나에게 왔고, 나는 그에게 기회를 빼앗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Mach et, Otze!(해, 오츠!)"라는 격언으로 변형되어 알려졌다. (DFB)는 규칙을 변경하여 오르데네비츠의 결승전 출전을 금지했고, 1. FC 쾰른은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2.3. J리그 시절
199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오르데네비츠는 J리그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로 이적했다. 1993년 8월 4일에 열린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경기에서 J리그 첫 골을 포함해 2골을 기록했다. 1994 시즌에는 리그에서 40경기에 출전해 30골을 기록하는 놀라운 활약으로 J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1994년에는 7월까지 '오체'였던 등록명을 8월부터 '오르데네비츠'로 변경했다. 변경 후 첫 경기인 8월 10일 감바 오사카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팀을 떠났다. 제프에서는 통산 55경기 37골을 기록했다.
득점왕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트 일레븐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이는 2016년 시즌 득점왕 피터 우타카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지 않을 때까지, J리그 사상 유일한 기록이었다.
2.5. 일본 무대 복귀
1996년, 피에르 리트바르스키의 요청으로 재팬 풋볼 리그의 베갈타 센다이에 입단했다. 그 해 일본 전장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28경기에서 20골을 넣는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팀을 J리그로 승격시키지는 못하고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센다이에서 활동하는 동안 천황배 1회전 마쓰야마 대학과의 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2.6. VfB 올덴부르크
오르데네비츠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VfB 올덴부르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4.2. 개인
* FIFA 페어플레이상 수상: 1988
* J리그 득점왕: 1994 (30골)
* 1994년 J리그 득점왕
오체라는 애칭으로 친숙하며, 1987-88 시즌, 베르더 브레멘의 분데스리가 제패에 공헌했다. 이 시즌 5월 7일, 1. FC 쾰른과의 경기에서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핸드볼을 범했다. 심판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상대 선수들이 심판에게 항의하여 심판이 핸드볼을 범했는지 묻자, 시원하게 핸드볼을 인정하고, 상대팀에 페널티킥이 주어져 경기에 패했다. 그 깨끗한 스포츠맨십에 대해, FIFA 페어플레이상이 수여되었다.
1993년 2nd 스테이지부터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로 이적, 1994년에는 7월까지 오체였던 등록명을 8월의 2nd 스테이지부터 오르데네비츠로 변경, 2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퇴단했다.
득점왕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지 못했다. 이는 2016년 시즌 득점왕 피터 우타카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지 않을 때까지, J리그 사상 유일한 일이었다.
5. 개인 통계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합계 | |||||
|---|---|---|---|---|---|---|---|---|---|---|
| 디비전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SV 베르더 브레멘 | 1983–84 | 분데스리가 | 5 | 0 | 1 | 0 | 0 | 0 | 6 | 0 |
| 1984–85 | 9 | 1 | 1 | 0 | 0 | 0 | 9 | 1 | ||
| 1985–86 | 24 | 7 | 1 | 0 | 0 | 0 | 25 | 7 | ||
| 1986–87 | 30 | 8 | 3 | 2 | 0 | 0 | 33 | 10 | ||
| 1987–88 | 30 | 15 | 1 | 6 | 3 | 0 | 36 | 18 | ||
| 1988–89 | 27 | 6 | 6 | 0 | 0 | 0 | 33 | 6 | ||
| 합계 | 125 | 37 | 18 | 5 | 0 | 0 | 143 | 42 | ||
| 1. FC 쾰른 | 1989–90 | 분데스리가 | 30 | 3 | 3 | 1 | 0 | 0 | 33 | 4 |
| 1990–91 | 31 | 7 | 6 | 3 | 0 | 0 | 37 | 10 | ||
| 1991–92 | 35 | 11 | 2 | 0 | 0 | 0 | 37 | 11 | ||
| 1992–93 | 30 | 9 | 2 | 2 | 0 | 0 | 32 | 11 | ||
| 합계 | 126 | 30 | 13 | 6 | 0 | 0 | 139 | 36 | ||
| JEF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 1993 | J1 리그 | 15 | 7 | 3 | 0 | 6 | 3 | 24 | 10 |
| 1994 | 40 | 30 | 2 | 0 | 1 | 0 | 43 | 30 | ||
| 합계 | 55 | 37 | 5 | 0 | 7 | 3 | 67 | 40 | ||
| 함부르크 SV | 1994–95 | 분데스리가 | 15 | 0 | 15 | 0 | ||||
| 1995–96 | 6 | 1 | 6 | 1 | ||||||
| 합계 | 21 | 1 | 0 | 0 | 0 | 0 | 21 | 1 | ||
| 브럼멜 센다이 | 1996 | 풋볼 리그 | 28 | 20 | 3 | 5 | 0 | 0 | 31 | 25 |
| VfB 올덴부르크 | 1997–98 | 레기오날리가 | 28 | 3 | 28 | 3 | ||||
| 통합 통계 | 383 | 128 | 39 | 16 | 7 | 3 | 429 | 147 | ||
* J리그 기록
* 1993년: 15경기 7골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 1994년: 40경기 30골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 1993년 8월 4일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전에서 J리그 첫 골을 포함한 2골을 기록했다.
* 1994년 8월 10일 감바 오사카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 J리그 통산 55경기 37골
* 1994년 J리그 득점왕
* 일본 풋볼 리그 기록
* 1996년: 28경기 20골 (브란멜 센다이)
* 1996년 제18절 일본 전장전에서 해트트릭 기록
* 1996년 천황배 1회전 마쓰야마 대학과의 경기에서 4골 기록
1994년 7월까지 '오체'였던 등록명을 8월 2nd 스테이지부터 '오르데네비츠'로 변경했다.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지 못한 유일한 J리그 득점왕이다. (2016년 시즌 득점왕 피터 우타카까지)
2011년 5월 17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자선 경기에 J리그 OB로 출전했다.
5.1. 클럽
오르데네비츠는 분데스리가에서 272경기 68골을 기록했다.
1988년 5월 7일, SV 베르더 브레멘 소속으로 1. FC 쾰른과의 리그 경기에 출전한 그는 페널티 구역 내에서 핸드볼 반칙을 범했으나 주심이 보지 못했다. 상대 선수들의 항의에 심판이 핸드볼 여부를 묻자, 오르데네비츠는 이를 인정했고, 결국 쾰른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지며 2-0으로 패배했다. 이 스포츠 정신으로 그는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1991년 5월 6일, 1. FC 쾰른 소속으로 MSV 뒤스부르크와의 DFB-포칼 준결승전에서 옐로카드를 받아, 전 소속팀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결승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에리히 루테묄러 코치는 다음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퇴장당해 출장 정지를 받도록 유도하여 결승전에 출전시키려 했다. 오르데네비츠는 지시에 따라 의도적으로 공을 쳐서 퇴장당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루테묄러는 "오츠가 나에게 왔고, 나는 그에게 기회를 빼앗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해'라고 말했다"며 계획을 인정했다. 이 요청은 "Mach et, Otze!(해, 오츠!)"라는 격언이 되었다. DFB는 규칙을 변경하여 오르데네비츠의 결승전 출전을 금지했고, 쾰른은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합계 | |||||
|---|---|---|---|---|---|---|---|---|---|---|
| 디비전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SV 베르더 브레멘 | 1983–84 | 분데스리가 | 5 | 0 | 1 | 0 | 0 | 0 | 6 | 0 |
| 1984–85 | 9 | 1 | 1 | 0 | 0 | 0 | 9 | 1 | ||
| 1985–86 | 24 | 7 | 1 | 0 | 0 | 0 | 25 | 7 | ||
| 1986–87 | 30 | 8 | 3 | 2 | 0 | 0 | 33 | 10 | ||
| 1987–88 | 30 | 15 | 1 | 6 | 3 | 0 | 36 | 18 | ||
| 1988–89 | 27 | 6 | 6 | 0 | 0 | 0 | 33 | 6 | ||
| 합계 | 125 | 37 | 18 | 5 | 0 | 0 | 143 | 42 | ||
| 1. FC 쾰른 | 1989–90 | 분데스리가 | 30 | 3 | 3 | 1 | 0 | 0 | 33 | 4 |
| 1990–91 | 31 | 7 | 6 | 3 | 0 | 0 | 37 | 10 | ||
| 1991–92 | 35 | 11 | 2 | 0 | 0 | 0 | 37 | 11 | ||
| 1992–93 | 30 | 9 | 2 | 2 | 0 | 0 | 32 | 11 | ||
| 합계 | 126 | 30 | 13 | 6 | 0 | 0 | 139 | 36 | ||
| JEF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 1993 | J1 리그 | 15 | 7 | 3 | 0 | 6 | 3 | 24 | 10 |
| 1994 | 40 | 30 | 2 | 0 | 1 | 0 | 43 | 30 | ||
| 합계 | 55 | 37 | 5 | 0 | 7 | 3 | 67 | 40 | ||
| 함부르크 SV | 1994–95 | 분데스리가 | 15 | 0 | 15 | 0 | ||||
| 1995–96 | 6 | 1 | 6 | 1 | ||||||
| 합계 | 21 | 1 | 0 | 0 | 0 | 0 | 21 | 1 | ||
| 브럼멜 센다이 | 1996 | 풋볼 리그 | 28 | 20 | 3 | 5 | 0 | 0 | 31 | 25 |
| VfB 올덴부르크 | 1997–98 | 레기오날리가 | 28 | 3 | 28 | 3 | ||||
| 통합 통계 | 383 | 128 | 39 | 16 | 7 | 3 | 429 | 147 | ||
오체라는 애칭으로 친숙하며, 브레멘 시절 아오키 야스히코와 팀 동료였다. 1987-88 시즌 브레멘의 분데스리가 우승에 공헌했다.
1993년 2nd 스테이지부터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로 이적했다. 1994년 8월, 2nd 스테이지부터 등록명을 '오체'에서 '오르데네비츠'로 변경했다.
1996년, 피에르 리트바르스키의 요청으로 브란멜 센다이로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