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리나 레냐니
1. 개요
피에리나 레냐니는 1863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발레리나이다. 라 스칼라 극장에서 발레를 배운 후 런던 알함브라 극장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1892년 라 스칼라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었다. 1890년대에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고, 마리우스 프티파의 지휘 아래 다양한 발레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다. 특히, '신데렐라'의 코다에서 32번의 푸에테 앙 투르낭을 처음 선보여 유명해졌으며,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와 오딜 두 역할을 모두 성공적으로 연기하며 같은 발레리나가 두 역할을 맡는 관례를 만들었다. 레냐니는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 칭호를 받은 두 명의 발레 무용수 중 한 명이며, 1901년 은퇴 후에도 라 스칼라 극장 발레 학교 심사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3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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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피에리나 레냐니 |
|---|---|
| 출생일 | 1863년 9월 30일 |
| 출생지 | 밀라노, 이탈리아 왕국 |
| 사망일 | 1930년 11월 15일 |
| 사망지 | 밀라노, 이탈리아 왕국 |
| 직업 | 발레 무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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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여자 발레 무용수 -
마리 탈리오니
마리 탈리오니는 19세기 낭만 발레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출신 발레리나로, 아버지의 지도를 받아 훈련한 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활동하며 《라 실피드》를 통해 명성을 얻고 은퇴 후 발레 교사로 활동했다. -
이탈리아의 여자 발레 무용수 -
델리아 스칼라
델리아 스칼라는 라 스칼라 발레 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한 이탈리아의 발레리나, 배우, 텔레비전 진행자로, 영화 《로마 11시》, 연극 《마이 페어 레이디》, TV 쇼 《칸초니시마》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하며 이탈리아 연예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
1930년 사망 -
이승훈 (1864년)
이승훈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교육자, 기업인으로, 오산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신민회 활동, 3·1 운동 참여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
1930년 사망 -
김좌진
김좌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한국독립당 회장을 역임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훈받았다. -
1863년 출생 -
호머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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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출생 -
헨리 포드
헨리 포드는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모델 T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여 자동차 산업과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포디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고 혁신적인 경영 방식을 도입했지만, 반유대주의적 언행과 노동조합 탄압으로 논란을 일으킨 미국의 기업인이다.
2. 생애
레냐니는 1863년 밀라노에서 태어나 카테리나 베레타에게 라 스칼라에서 발레를 배웠고, 그곳에서 기술적 전문성을 발전시켰다. 런던 알함브라 극장에서 카사티 발레, 살란드라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출연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1892년 라 스칼라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지명되었고, 같은 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 제국 발레단과 함께 마린스키 극장에서 1901년까지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마리우스 프티파의 지휘 아래, 레냐니는 1893년 신데렐라, 1895년 백조의 호수, 1898년 라이몬다, 1901년 라 카마고 등 다양한 역할을 창작했다. 그녀는 발레 신데렐라의 그랑 파 드 액션의 코다에서 32번의 푸에테 앙 투르낭을 처음으로 선보인 발레리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32번의 포인트 턴은 무용수의 힘과 기술을 보여주는 브라부라 업적이다. 32번의 푸에테 턴 시퀀스는 이후 백조의 호수 3막의 흑조 솔로에 안무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레냐니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로 임명된 두 발레 무용수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공연은 1901년 1월 28일 밍쿠스/프티파 발레 라 카마고였다. 이후 코모 호수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은퇴하여 살았다.
은퇴 후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며 사망하기 4개월 전까지 라 스칼라 발레 학교의 심사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1930년 11월 15일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업적 및 평가
레냐니는 뛰어난 기량을 가진 발레리나로,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 칭호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마틸다 크셰신스카야가 이 칭호를 받은 두 번째 발레리나였다.
1893년부터 1901년까지 러시아 황실 발레단에서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 지위에 있었다. 그녀는 32회 연속 푸에테(그랑 푸에테 롱 드 잠브 앙 투르낭, grand fouette rond de jambe en tournant프랑스어)를 최초로 선보인 발레리나이기도 하다. 1893년 신데렐라 (보리스 피친고프-셰리 작곡)에서 이 기술을 선보였다.
1895년 백조의 호수 재공연에서 오데트(백조)와 오딜(흑조) 두 역할을 연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오데트 역에만 배정되었으나, 개막 일주일 전까지 오딜 역이 정해지지 않아 레냐니가 두 역할을 모두 맡게 되었다. 이후 오데트와 오딜은 같은 발레리나가 연기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32번의 푸에테 앙 투르낭을 수행하는 것은 무용수의 힘과 기술을 강조하는 브라부라 업적이다. 32번의 푸에테 턴 시퀀스는 나중에 백조의 호수 3막의 흑조 솔로에 안무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4. 마리우스 프티파와의 협업
유명 발레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지휘 아래, 레냐니는 신데렐라(1893), 백조의 호수(1895), 라이몬다(1898), 라 카마고(1901)를 포함한 수많은 역할을 창작했다. 그녀는 발레 신데렐라의 그랑 파 드 액션의 코다에서 32번의 푸에테 앙 투르낭을 처음으로 선보인 발레리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32번의 포인트 턴을 수행하는 것은 무용수의 힘과 기술을 강조하는 브라부라 업적이다. 32번의 푸에테 턴 시퀀스는 나중에 백조의 호수 3막의 흑조 솔로에 안무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레냐니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로 임명된 두 발레 무용수 중 한 명이었다.
마리우스 프티파가 피에리나 레냐니를 위해 안무한 발레는 다음과 같다.
| 제목 | 작곡 | 초연 연도 | 비고 |
|---|---|---|---|
| 신데렐라 | 피팅호프-셸 | 1893 | 이바노프, 체케티 공동 안무, 레냐니가 32회전 푸에테를 처음 선보임. |
| 탈리스만 | 리카르도 드리고 | 1895 | |
| 코펠리아 | 레오 들리브 | 1896 | 프티파/체케티 버전 |
| 기병의 정지 | 요한 암셰이머 | 1896 | |
| 라 페를 | 리카르도 드리고 | 1896 | |
| 라이몬다 |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 1898 | |
| 사랑의 술책 |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
5. 주요 출연작
6.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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