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스키가
1. 개요
피에스키가는 1010년 제노바에서 라바냐 백작으로 서임된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이다. 중세 시대 제노바 공화국과 라바냐 지배권을 두고 갈등을 겪었으며, 구엘프 당파로서 제노바의 통치와 군사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가문 출신으로 교황 인노첸시오 4세, 교황 아드리아노 5세가 있으며, 안티오키아 라틴 총대주교 오피초 피에스키, 추기경 루카 피에스키 등이 있다. 1547년 조반니 루이지 피에스키의 피에스키 음모 실패로 가문의 권력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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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의 백작 -
궁정백
궁정백은 중세 유럽에서 유래된 칭호로, 왕의 업무를 보좌하거나 특정 지역을 통치하는 권한을 위임받았으며, 여러 국가와 교황청에서도 사용되었다. -
신성 로마 제국의 백작 -
팀 벤팅크
영국의 배우이자 귀족인 팀 벤팅크는 포틀랜드 백작 작위를 소유하고 있으며, 드라마, 영화, 연극,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연극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다. -
교황 가문 -
메디치가
메디치가는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메디치 은행의 부를 기반으로 정치, 경제, 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르네상스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토스카나 대공국 건설 후 잔 가스토네의 죽음으로 가문의 통치가 종식되었다. -
교황 가문 -
델라 로베레가
델라 로베레가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교황 식스토 4세의 후원으로 부상하여 교황령과 여러 공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교황 율리오 2세는 프란체스코 마리아 1세 델라 로베레에게 우르비노 공국을 하사하여 가문을 우르비노 공작 가문으로 만들었고, 르네상스 시대 예술 후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 역사
2.1. 라바냐 백작
1010년 제노바에서 피에스키 가문의 서임이 이루어졌고, 이 가문은 라바냐 백작으로 임명되었다. 1004년부터 이탈리아의 왕이자 1014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으며, 오토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헨리 2세는 'Ordiniamo il predominato Fieschi vicario generale di essa città con ampio potere.' ('우리는 탁월한 피에스키를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 이 도시 국가의 총대리(Vicars General)로 임명한다')라고 말했다.
라바냐 백작으로서 피에스키는 제노바 공화국으로부터 일종의 사법적,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했다. 인근 마을인 산 살바토레 디 코고르노에 기반을 둔 이 가문은 리구리아 레반테와 키아바리 내륙 지역에 광대한 귀족 영지를 건설했다.
중세 시대 동안 피에스키 가문과 제노바 공화국 사이에는 라바냐 지배권을 놓고 수많은 정치적 충돌이 있었는데, 제노바 공화국은 인근의 키아바리를 충실한 동맹이자 방어적 요새로 삼았다. 이 시기에 가문의 가장 강력한 적대자는 도리아 가문으로 드러났다.
12세기경 마을이 자유 자치 도시가 되었을 때, 피에스키 영주는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라바냐의 행정 및 정치 업무를 계속 수행했다. 14세기에는 피에스키 가문이 제노바 최고 귀족에 흡수되면서 라바냐 영지의 점진적인 축소가 시작되었다.
2.2. 그 외의 중요한 역할
피에스키 가문의 남성들은 모두 "라바냐 백작(Conte di Lavagna)"으로 불리며, 중세 제노바의 통치와 군사 역사에서 구엘프 당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공화국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제노바의 영지와 연결을 유지했다.
1138년, 피에스키 가문은 제노바 코뮌과의 합의에 따라 1년 중 일부를 도시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들은 무역 및 금융 활동으로 막대한 부를 얻었고, 이후 여러 분파로 발전했다. 리구리아 외에도 피에몬테, 롬바르디아, 움브리아, 나폴리 왕국 등에 봉토를 소유했다.
시니발도 피에스키는 오피초 백작의 동생으로, 1243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 선출되었다. 그의 조카 오피초는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가 되었고, 다른 조카는 1276년 세 명의 교황 중 한 명인 교황 아드리아노 5세가 되었다.
1547년, 조반니 루이지 피에스키를 필두로 한 귀족들이 피에스키 음모를 일으켜 안드레아 도리아로부터 도제 직위를 되찾으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해 피에스키 가문의 권력은 붕괴되었다.
3. 주요 인물
* 시니발도 -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 선출
* 오토부오노 - 교황 아드리아노 5세로 선출
* 오피초 피에스키 - 안티오키아 라틴 총대주교
* 니콜로 피에스키 - 이탈리아 추기경
* 알라지아 피에스키 -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에 언급된 오토부오노의 조카
* 루카 피에스키 - 추기경
* 조르조 피에스키 - 이탈리아 추기경
* 카테리나 피에스키 아도르노 (Caterina Fieschi Adorno이탈리아어, 1447년–1510년) - 제노바의 성 카테리나로 시복됨
* 조반니 루이지 피에스키 (1522–1547)
* 제1대 벨본테 공작 돈 오라초 조반 바티스타 라바스키에리 피에스키 (1645년 사망)
* 주세페 피에스키 (1790–1836)
3.1. 교황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 선출된 시니발도와 교황 아드리아노 5세로 선출된 오토부오노가 피에스키 가문 출신이다. 오피초 피에스키는 안티오키아 라틴 총대주교를 지냈다. 니콜로 피에스키는 이탈리아 추기경이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에는 오토부오노의 조카인 알라지아 피에스키가 언급된다. 루카 피에스키는 추기경이었다. 조르조 피에스키또한 이탈리아 추기경이었다.
3.2. 종교인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 선출된 시니발도와 교황 아드리아노 5세로 선출된 오토부오노, 오피초 피에스키, 니콜로 피에스키가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에 언급된 오토부오노의 조카 알라지아 피에스키, 추기경 루카 피에스키, 이탈리아 추기경 조르조 피에스키, 제노바의 성 카테리나로 존경받는 카테리나 피에스키 아도르노 (Caterina Fieschi Adorno이탈리아어, 1447년–1510년), 조반니 루이지 피에스키 (1522–1547), 제1대 벨본테 공작 돈 오라초 조반 바티스타 라바스키에리 피에스키 (1645년 사망) 등이 있다.
3.3. 기타 인물
*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 선출된 시니발도
* 교황 아드리아노 5세로 선출된 오토부오노
* 알라지아,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에 언급된 오토부오노의 조카
* 루카 피에스키, 추기경
* 오피초 피에스키, 안티오키아의 라틴 총대주교
* 니콜로 피에스키, 이탈리아 추기경
* 조르조 피에스키, 이탈리아 추기경
* 성 카테리나 다 제노바로 존경받는 카테리나 피에스키 아도르노 (1447–1510)
* 조반니 루이지 피에스키 (1522–1547)
* 벨몬테의 초대 공작 돈 오라치오 조반 바티스타 라바스키에리 피에스키 (164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