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 판즈워스
1. 개요
필로 판즈워스는 전자식 텔레비전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여 현대 텔레비전 방송의 기반을 마련한 미국의 발명가이다. 1920년대 후반, 세계 최초로 전자 주사식 텔레비전 시스템을 개발하여 시연했으며, 이미지 디섹터와 이미지 오실라이트를 개발했다. 그는 텔레비전 기술 특허를 두고 RCA와 소송을 벌여 승소했으며, 퓨저를 발명하여 핵융합 연구에도 기여했다. 판즈워스는 300개의 특허를 보유했으며, 레이더, 적외선 야간 투시 장치, 전자 현미경 등 다양한 분야의 발명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84년 국립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유산으로 동상, 기념 표지판, 상 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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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필로 테일러 판즈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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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06년 8월 19일 |
| 출생지 | 미국 유타주 비버 |
| 사망 | 1971년 3월 11일 (64세) |
| 사망지 | 미국 유타주 홀러데이 |
| 안장지 | 프로보 시립 묘지, 유타주 프로보 |
| 직업 | 발명가 |
| 고용주 | 필코, 판즈워스 텔레비전 및 라디오 회사, 국제전신전화회사 |
| 알려진 업적 | 최초의 완전 전자식 텔레비전 발명, 169개 이상의 미국 및 해외 특허 |
| 배우자 | 엘마 "펨" 가드너 (1908–2006) |
| 자녀 | 아들 4명 |
| 친척 | 아그네스 앤 판즈워스 (여동생) |
| 웹사이트 | philotfarnsworth.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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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선구자 -
존 로지 베어드
존 로지 베어드는 1920년대 세계 최초로 작동 가능한 텔레비전 시스템을 개발하고 컬러 텔레비전 기술에도 기여한 영국의 발명가이자 텔레비전의 선구자이다. -
텔레비전 선구자 -
블라디미르 K. 즈보리킨
블라디미르 K. 즈보리킨은 러시아 출신의 발명가로, 텔레비전 기술 개발에 기여했으며, 아이코노스코프 개발을 통해 텔레비전 방송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
유타주 출신 -
도니 오즈먼드
도니 오즈먼드는 1970년대 틴 아이돌로 인기를 얻은 미국의 가수, 배우, 텔레비전 사회자, 무용가, 작가, 자동차 경주 선수이며, 오즈먼드 형제들 중 한 명으로 "Dancing with the Stars" 최고령 우승, 라스베이거스 공연, 뮤지컬 배우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
유타주 출신 -
이선 밴스카이버
미국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선 밴스카이버는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에서 히어로 만화 작업과 《12가지 인생의 법칙》 삽화, 독립 만화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했으나, 정치적 논쟁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1971년 사망 -
임흥순
임흥순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역임했으며,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파 명단에 등재되었다. -
1971년 사망 -
카를로스 P. 가르시아
필리핀의 정치인이자 변호사, 시인이었던 카를로스 P. 가르시아는 부통령를 거쳐 대통령직을 승계받아 필리피노 우선 정책과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미군 기지 임대 기간 단축, 국제 벼 연구소 설립 제안, 공화국 문화상 제정 등 외교적, 문화적 발전에 기여했다.
2. 역사적 배경
텔레비전 기술은 판즈워스 이전에 여러 발명가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알렉산더 베인, 파울 니프코프 등은 회전하는 원판 등을 이용한 기계식 텔레비전 시스템을 개발했고, 존 로지 베어드 역시 기계식 텔레비전을 연구했다.
보리스 로징, 앨런 아치볼드 캠벨-스윈턴, 칼만 티하니, 블라디미르 즈보리킨, 다카야나기 겐지로 등은 판즈워스 이전 또는 동시대에 전자식 텔레비전을 연구했다. 판즈워스는 세계 최초로 촬영과 수신 모두 전자 주사식으로 작동하는 텔레비전 시스템을 개발하여 1928년 언론에 공개하고, 1934년에는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 연구소에서 일반에 공개 시연했다.
2.1. 초기 생애
1906년 8월 19일, 유타주 비버 근처의 먼더필드에서 모르몬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18년, 가족은 아이다호주 리그비 근처의 240acre 목장으로 이사했다. 필로는 새 집에 전기가 들어와 조명과 농기계에 전력을 공급한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는 기계 및 전기 기술에 재능을 보였으며, 고장난 발전기를 수리하고, 어머니의 수동 세탁기를 전동식으로 개조했다. 그는 펄프 잡지 대회에서 자석식 자동차 잠금 장치를 발명하여 25달러를 받기도 했다.
판즈워스는 리그비 고등학교에서 화학과 물리학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그는 전자 텔레비전 시스템에 대해 과학 교사 저스틴 톨먼에게 조언을 구했고, 톨먼은 그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도록 격려했다. 그가 칠판에 그린 그림은 판즈워스와 RCA 사이의 특허 침해 소송에서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1923년, 가족은 유타주 프로보로 이사했고, 판즈워스는 브리검 영 고등학교에 다녔다. 1924년 1월, 그의 아버지가 폐렴으로 사망하자, 판즈워스는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맡았다. 1924년 6월, 그는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텔레비전 개발을 위해 중퇴했다. 그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 입학하여 라디오 기술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그는 엘마 "펨" 가드너(1908–2006)를 만났고, 1926년 5월 27일에 결혼했다.
2.2. 경력
판즈워스는 1926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조지 에버슨과 협력하여 텔레비전 개발을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실험실을 설립하고, 자신의 모델과 도면을 특허 변호사에게 보이며 특허 출원을 권유받았다. 이는 RCA와의 특허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텔레비전 시스템은 니프코 디스크를 사용하는 기계식이었으나, 판즈워스는 전자식 스캔 시스템이 더 우수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27년 9월 7일, 샌프란시스코 연구소에서 이미지 디섹터 촬상관을 이용한 최초의 전자식 텔레비전 이미지 전송에 성공했다. 1928년에는 언론에 텔레비전 시스템을 공개 시연했다. 1929년에는 전동 발전기를 제거하여 완전한 전자식 텔레비전 시스템을 완성했다.
1930년, 블라디미르 즈보리킨이 판즈워스의 연구소를 방문하여 이미지 디섹터를 복제했다. 1931년, RCA의 특허 매입 제안을 거절하고 필코 사와 계약했다. 1932년, 존 로지 베어드를 만났지만, 그의 기계식 시스템에 실망했다.
1934년, 유럽으로 건너가 독일의 게오르츠-보쉬 텔레비전과 계약했다. 193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협력하여 우유 살균 기술, 안개 투과 빔 등을 개발했다.
1938년, 판즈워스 텔레비전 및 라디오 공사를 설립했다. 1939년, RCA와 특허 계약을 체결하고, RCA는 전자 텔레비전을 상용화했다.
1951년, 판즈워스 텔레비전 및 라디오 공사가 ITT에 인수되었다. ITT에서 방위 조기 경보 신호, 잠수함 탐지 장치, PPI 프로젝터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 1960년대 핵융합 연구를 진행했지만, ITT의 지원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67년, 유타로 돌아와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1971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3. 주요 발명
파르스워스 퓨저는 파르스워스가 핵융합을 생성하기 위해 설계한 장치이다. 대부분의 제어된 융합 시스템은 자기적으로 가두어진 플라스마를 서서히 가열하는 방식이지만, 퓨저는 고온 이온을 반응 챔버에 직접 주입하여 복잡성을 줄였다. 1960년대 후반 퓨저가 처음 융합 연구계에 소개되었을 때, 융합 반응을 생성함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최초의 장치였다. 당시에는 이를 실용적인 전력원으로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으나, 다른 융합 실험과 마찬가지로 전력원으로의 개발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저는 이후 실용적인 중성자원이 되었으며, 이러한 용도로 상업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판즈워스는 14세(15세라는 문헌도 있다)에 텔레비전 카메라의 원리를 고안했고, 21세에 최초의 기능하는 시제품을 완성했다. 농장 아들이었던 그는 밭을 가는 밭고랑의 모양을 보고 브라운관을 주사선으로 주사한다는 발상을 얻었다. 1935년, RCA와의 특허 소송에서 그의 고등학교 시절 화학 교사 저스틴 톨먼은 판즈워스가 14세 때 칠판에 그린 그림을 재현했다. 판즈워스는 그 소송에서 이겨 특허 사용료를 받았지만, 부유하게 되지는 않았다. 촬상관은 판즈워스와 블라디미르 즈보리킨의 업적을 조합하여 개발되었으며, CCD 이미지 센서 등 대체 기술이 개발되기 전인 20세기 후반까지 모든 텔레비전 카메라의 기본이 되었다.
판즈워스는 이미지 디섹터가 포착한 영상 신호를 수신하여 브라운관에 표시하는 기기인 이미지 오실라이트(Image Oscillite)를 개발했다.
3.1. 전자식 텔레비전
판즈워스는 14세(15세라는 문헌도 있다)에 전자식 텔레비전의 핵심 부품인 이미지 디섹터(Image Dissector)의 원리를 고안했고, 21세가 되기 직전인 1927년 9월 7일에 최초의 작동하는 시제품을 완성했다. 농장에서 자란 그는 밭을 가는 밭고랑의 모양을 보고 전자 빔으로 이미지를 주사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이미지 디섹터는 이미지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였다. 그는 회전 디스크 대신 빛에 노출되면 전자를 방출하는 세슘을 사용했다. 1929년에는 모터 제너레이터를 제거하여 텔레비전 시스템에 기계 부품이 전혀 없도록 만들었다.
판즈워스는 이미지 디섹터가 포착한 영상 신호를 수신하여 브라운관에 표시하는 기기인 이미지 오실라이트(Image Oscillite)도 개발했다.
1930년, RCA는 블라디미르 즈보리킨을 영입하여 텔레비전 개발 부서를 이끌게 했다. 즈보리킨은 판즈워스의 연구소를 방문하여 이미지 디섹터의 성능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대상에 매우 밝은 조명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아이코노스코프 개발에 집중했다.
1931년, RCA의 데이비드 사르노프는 판즈워스에게 특허를 10만 달러에 구매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판즈워스는 거절했다. 이후 RCA는 판즈워스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국 특허청은 이미지 디섹터 발명의 우선권을 판즈워스에게 부여했다. RCA는 항소했지만 패소했고, 결국 판즈워스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1935년 특허 소송에서 판즈워스의 고등학교 화학 교사 저스틴 톨먼은 판즈워스가 14세 때 칠판에 그린 그림을 재현하여 증거로 제출했다.
촬상관은 판즈워스와 즈보르킨의 업적을 조합하여 개발되었으며, CCD 이미지 센서와 같은 대체 기술이 등장하기 전인 20세기 후반까지 모든 텔레비전 카메라의 기본으로 사용되었다.
3.2. 퓨저 (Fusor)
파르스워스 퓨저는 판즈워스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설계한 장치이다. 대부분의 제어된 융합 시스템이 자기적으로 가두어진 플라스마를 서서히 가열하는 방식과 달리, 퓨저는 고온 이온을 반응 챔버에 직접 주입하여 구조를 단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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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퓨저가 처음 융합 연구계에 소개되었을 때, 퓨저는 융합 반응을 생성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최초의 장치였다. 당시에는 이를 실용적인 핵융합 에너지원으로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다른 융합 실험과 마찬가지로, 전력원으로의 개발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저는 이후 실용적인 중성자원이 되었으며, 이러한 용도로 상업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3.3. 기타 발명
필로 판즈워스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퓨저라는 장치를 고안했다. 대부분의 핵융합로는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가두고 서서히 가열하는 방식이지만, 퓨저는 고온 이온을 반응실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1960년대 후반, 퓨저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최초의 장치였다. 당시에는 퓨저가 빠르게 상용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다른 핵융합 실험과 마찬가지로 상용화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저는 실용적인 중성자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상업적으로도 생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