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신토 킹코세스
1. 개요
하신토 킹코세스는 스페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 그리고 발렌시아 필로타 연맹 회장이었다. 선수 시절에는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리카르도 사모라와 함께 강력한 수비진을 구축하여 스페인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 은퇴 후에는 레알 마드리드, 발렌시아 등을 포함한 여러 팀의 감독을 역임했다. 그는 또한 발렌시아 필로타 연맹 회장으로 활동하며 발렌시아 필로타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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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Jacinto Francisco Fernández de Quincoces López de Arbina (자킨토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데 킹코세스 로페스 데 아르비나) |
|---|---|
| 키 | 1.81m |
| 출생일 | 1905년 7월 17일 |
| 출생지 | 스페인 바라칼도 |
| 사망일 | 1997년 5월 10일 |
| 사망지 | 스페인 발렌시아 |
| 포지션 | 수비수 |
| 유소년 클럽 | 해당사항 없음 |
|---|---|
| 선수 경력 | 1920–1931: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18경기, 0골) 1931–1936: 레알 마드리드 (90경기, 0골) 1939–1942: 레알 마드리드 (42경기, 0골)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
|---|---|
| 국가대표 연도 | 1928–1936 |
| 국가대표 출장 (득점) | 25 (0) |
| 감독 연도 | 1941–1943: 레알 사라고사 1945: 스페인 1945–1946: 레알 마드리드 1947–1948: 레알 마드리드 1948–1954: 발렌시아 1954–195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56–1958: 레알 사라고사 1958–1959: 발렌시아 1960: 발렌시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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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칼도 출신 -
에드문도 수아레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에드문도 수아레스는 발렌시아 CF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델란테라 엘렉트리카' 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고, 은퇴 후에는 발렌시아 CF의 감독으로 코파 델 레이 우승을 달성했다. -
바라칼도 출신 -
예라이 알바레스
예라이 알바레스는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센터백으로 뛰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 유소년팀을 거쳐 1군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고환암을 극복하고 복귀하는 투지를 보여주었으며 스페인 U-21 대표팀과 바스크 대표팀에서도 활약했다. -
레알 마드리드 CF의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레알 마드리드 CF의 축구 선수 -
루이스 피구
포르투갈 '황금 세대'의 일원인 루이스 피구는 스포르팅 CP,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에서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라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 세리에 A 등 주요 대회에서 우승하고 2000년 발롱도르, 2001년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
1905년 출생 -
지그메 왕축
부탄의 제2대 국왕인 지그메 왕축은 교육 및 인프라 개선, 사법 제도 개혁 등 국내 문제 해결에 힘썼으며 영국령 인도 및 인도와 우호 관계를 맺으며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
1905년 출생 -
마해송
마해송은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이자 언론인으로, 방정환 등과 색동회를 조직하여 아동문학 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에는 작품을 통해 사회상을 비판하는 등 대한민국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2. 선수 경력
하신토 킹코세스는 알라베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선수 경력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을 맡았다.
2.1. 클럽 경력
하신토 킹코세스는 고향 산안토니오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한 번은 계약을 거절당했지만, 알라베스에 입단했다. 알라베스에서는 시리아코와 수비 콤비를 이루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알라베스에서 10년간 활약한 후, 시리아코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전년에 이적해 온 리 카르도 사모라와 함께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철벽의 수비진을 형성, 이적 후 첫 시즌에 18경기에서 15실점으로 막아내며, 클럽 사상 처음으로 스페인 리그 타이틀을 무패 우승으로 차지했다. 그 후에도 리그 연패와 코파 델 레이를 획득했다. 펠릭스 케사다가 퇴단한 1936년부터는 주장도 맡았지만, 같은 해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1939년까지 경기에 출전할 기회는 없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스페인 대표팀에서 리 카르도 사모라, 시리아코와 함께 활약하며, 193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대회 최우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
3. 감독 경력
하신토 킹코세스는 레알 사라고사(1942–1943, 1956–1958),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1945), 레알 마드리드 CF(1945–1946, 1947–1948), 발렌시아 CF(1948–1954, 1958–196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1954–1955) 감독을 역임했다.
| 팀 | 기간 |
|---|---|
| 레알 사라고사 | 1942–1943 |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1945 |
| 레알 마드리드 CF | 1945–1946 |
| 레알 마드리드 CF | 1947–1948 |
| 발렌시아 CF | 1948–1954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1954–1955 |
| 레알 사라고사 | 1956–1958 |
| 발렌시아 CF | 1958–1960 |
4. FPV 회장 경력
킹코세스는 프로 축구에 입문하기 전에 바스크 펠로타 팔라 선수였는데, 축구 선수 활동을 접은 후, 프랑코 정권으로부터 발렌시아 필로타 연맹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그 이유는 바스크 펠로타와 발렌시아 핸드볼이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킹코세스는 기자 회견에서 수 차례 회장직을 맡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발렌시아 필로타 회장직을 맡아 새 제도의 도입을 통해 발렌시아 필로타에 득이 될 일을 하였다. 유소년 선수권 대회를 출범하여 트링케트 프로 대회를 주최할 기반을 마련하였고, 그에 따라 제노베스 I이나 사테트 데 칼레트와 같은 필로타 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었다.
5. 수상 경력
| 대회 | 횟수 | 시즌 |
|---|---|---|
| 라리가 | 2 | 1931-32, 1932-33 |
| 코파 델 레이 | 2 | 1933-34, 1935-36 |
| FIFA 월드컵 최우수 수비수 | 1 | 1934년 FIFA 월드컵 |
5.1. 선수
고향 산안토니오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한 번은 계약을 거절당했지만,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에 입단했다. 알라베스에서는 시리아코와 수비 콤비를 이루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알라베스에서 10년간 활약한 후, 시리아코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전년에 이적해 온 리카르도 사모라와 함께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철벽의 수비진을 형성, 이적 후 첫 시즌에 18경기에서 15실점으로 막아내며, 클럽 사상 처음으로 스페인 리그 타이틀을 무패 우승으로 차지했다. 그 후에도 리그 연패와 코파 델 레이를 획득했다. 또한, 펠릭스 케사다가 퇴단한 1936년부터는 주장도 맡았지만, 같은 해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1939년까지 경기에 출전할 기회는 없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사모라, 시리아코와 함께 활약하며, 193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대회 최우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