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케사다
1. 개요
펠릭스 케사다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1922년 레알 마드리드 1군에 데뷔하여 작은 체구에도 뛰어난 위치 선정과 주력을 바탕으로 팀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 잡았으며, 1928년부터 1935년까지 주장을 맡았다. 페널티킥 전문가로 32번의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선수 경력을 마감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2회,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경험했다. 1924년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9경기에 출전했고, 1951년에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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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축구 감독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스페인의 축구 감독 -
후안 라몬 로페스 카로
후안 라몬 로페스 카로는 스페인 출신의 축구 감독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여러 국가대표팀 및 클럽을 지휘하며 세군다 디비시온 B 우승, 중국 갑급 리그 우승, 아라비아 걸프컵 준우승 등의 성과를 거두고 중국 갑급 리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
1959년 사망 -
호세 라우렐
호세 라우렐은 필리핀의 정치인으로 변호사, 상원의원,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점령 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전후 전범으로 기소되었고, 사면 후 상원의원과 경제 사절 단장을 지내다 1959년 사망했다. -
1959년 사망 -
존 포스터 덜레스
존 포스터 덜레스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지낸 미국의 변호사이자 외교관으로, 반공 정책을 추진하고 NATO 등 반공 동맹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강경한 외교 정책은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국제 협력에도 기여했다. -
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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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2. 클럽 경력
펠릭스 케사다는 에스파뇰 데 마드리드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부로 이적했다. 1922년, 그는 불과 20세도 되지 않아 1군 신고식을 치렀고, 이후 케사다는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마드리드 수비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는 훌륭한 위치 선정 능력과 주력으로 단점을 메꾸었고, 제치기 어려운 수비수로 정평이 났고, 1928년부터 1935년까지는 마드리드 선수단의 주장이 되었다.
그는 공을 강하게 차는 것으로도 알려졌는데, 페널티 킥 전문가로도 명성을 날렸는데, 그는 현역 프로 선수로 활약하면서 총 32번의 페널티 킥 주자로 나서서 대부분을 성공시켰다. 스페인 내전으로 스포츠 활동이 중단되면서, 그는 15년 동안 동행해 오던 마드리드와의 연을 끊고 경력도 끝났다. 그는 리카르도 사모라, 시리아코 에라스티, 그리고 하신토 킹코세스와 더불어 마드리드가 1932년과 1933년에 처음으로 두 번의 리그 우승을 할 당시 주역이었다.
2.1. 초기 경력
2.2. 레알 마드리드
펠릭스 케사다는 에스파뇰 데 마드리드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부로 이적했다. 1922년, 그는 20세도 되지 않아 1군에 합류했고,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위치 선정 능력과 주력을 바탕으로 마드리드 수비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1928년부터 1935년까지는 마드리드 선수단의 주장을 역임했다.
케사다는 공을 강하게 차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페널티 킥 전문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현역 시절 총 32번의 페널티 킥을 성공시켰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15년간 활약한 마드리드에서 은퇴했다. 그는 리카르도 사모라, 시리아코 에라스티, 하신토 킹코세스와 함께 1932년과 1933년에 마드리드의 첫 두 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3. 경력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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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단 | 시즌 | 리그명 | 리그 (1) | 코파 (2) | 지역 (3) | 합계 | 평균 득점률 | ||||||||
|---|---|---|---|---|---|---|---|---|---|---|---|---|---|---|---|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레알 마드리드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22-23 | 중부 선수권 대회 1부 | 출범 이전 | 1 | - | 6 | 3 | |3||0.43 | |||||||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23-24 | 출범 이전 | 6 | 1 | 7 | 3 | |4||0.31 | |||||||||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24-25 | 출범 이전 | - | - | 8 | 2 | |2||0.25 | |||||||||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25-26 | 출범 이전 | 6 | - | 8 | 2 | |2||0.14 | |||||||||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26-27 | 출범 이전 | 7 | 3 | 13 | 3 | |6||0.30 | |||||||||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27-28 | 출범 이전 | 12 | 3 | 12 | 3 | |6||0.25 | |||||||||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28-29 | 1부 | 18 | 1 | 9 | 2 | 6 | - | |3||0.09 | |||||||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29-30 | 18 | 1 | 10 | 1 | 8 | - | |2||0.06 | ||||||||
| 스페인/1785스페인어 1930-31 | 16 | - | 6 | - | 7 | 2 | |2||0.07 | ||||||||
| 스페인/1931스페인어 1931-32 | 4 | - | - | - | 5 | - | |0||0 | ||||||||
| 스페인/1931스페인어 1932-33 | 2 | - | 1 | - | 1 | - | |0||0 | ||||||||
| 스페인/1931스페인어 1933-34 | 16 | - | - | - | 9 | - | |0||0 | ||||||||
| 스페인/1931스페인어 1934-35 | 13 | - | - | - | 8 | 2 | |2||0.09 | ||||||||
| 스페인/1931스페인어 1935-36 | - | - | - | - | 2 | - | |0||0 | ||||||||
| 합계 | 87 | 2 | 58 | 10 | 100 | 20 | 245 | 32 | 0.13 | ||||||
| 경력 합계 | 87 | 2 | 58 | 10 | 100 | 20 | 245 | 32 | 0.13 | ||||||
출처: [http://www.bdfutbol.com/es/j/j11467.html BD푸트볼] - [https://web.archive.org/web/20140427111533/http://www.adelanterealmadrid.com/index.php?page=1922 Recopilación hemeroteca Diario ABC] - [https://www.elaguanis.com/jugadores-a.html?id=14888 ElAguanís] - [https://eu-football.info/_player.php?id=17202 EuFootball].
3. 국가대표팀 경력
케사다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9번 출전했는데,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924년 12월 21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였다. 그는 1928년 4월 22일에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기록한 처음이자 마지막 골이었다.
1929년 5월 15일,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스페인은 영연방 외의 국가에게 패한 적 없는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축구 종가는 "축구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순간"을 연출해냈다. 메트로폴리타노 경기장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스페인은 4-3으로 이기고, 잉글랜드에게 영연방 국가 외로부터의 첫 국가대표팀 패배를 안겼다. 당시 기록을 확인해보면 펠릭스 케사다가 최우수 선수였던 것으로 나온다. 그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더 이상 활약하지 못했다.
1951년, 그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