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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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학도암은 1624년 불암사 주지 무공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서울 불암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조선 시대에 마애사리탑, 마애부도, 마애관음보살좌상 등이 조성되었으며, 명성황후가 고종의 사랑을 얻고 왕자를 낳기를 기원하며 관세음보살을 조성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요 전각으로는 대웅전, 약사전, 관음전, 지장전, 삼성각 등이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마애관음보살좌상과 마애사리탑이 있다. 학도암은 김운공 스님이 주지로 오랫동안 머물며 영산재를 전승한 곳이며, 박윤묵과 신석우의 한시에도 등장한다. 현재는 셔틀버스를 운행하며 방문객의 편의를 돕고 있다.
1624년(인조 2년) 불암사의 주지를 역임했던 무공화상이 불암산 중턱의 자연굴에 약사여래불을 봉안하고 학도암을 창건하였다. 1791년(순조 1년)에는 취근선사의 마애사리탑이 조성되었고, 1819년(순조 19년) 10월에는 청신녀 월영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마애부도가 조성되었다. 1872년(고종 9년)에는 명성황후의 시주로 마애관음보살좌상이 조성되었으며, 1878년(고종 15년) 벽운화상이 중창하였다. 같은 해 한씨 일가의 시주로 경선화상이 마애관음보살좌상을 보수하였다.
도량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웅전 상단에는 석가모니불좌상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입상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는 104위 신장탱이 모셔져 있다. 자연동굴 속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 약사전은 학도암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이다. 야외에는 마애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 관음전이 있다. 큰 바위 위에 있는 지장전에는 산 아래 남쪽 방향의 중계동과 하계동, 공릉동 방향으로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중계동 1번지에 위치한 삼성각에는 불암산 산신탱과 칠성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요사채와 같은 공간에 종무소가 있으며, 대웅전 아래에는 반 지하 형태의 선원이 있다.
2. 역사
1922년 성담스님이 개인 소유로 넘어간 사찰 소유의 산림 10여 정보를 매입하여 사격을 일신하였다. 1966년에는 명호스님이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찰에 불사를 일으켜 석조로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2012년에는 법보스님이 삼성각을 보수하였고, 2013년에는 요사채와 시민선방을 증축하였다. 2015년에는 법보스님이 대웅전을 준공하였다.
2. 1. 창건과 조선 시대
1624년(인조 2년) 불암사의 주지를 역임했던 무공화상이 불암산 중턱의 자연굴에 약사여래불을 봉안하고 학도암을 창건하였다. 1791년(순조 1년)에는 취근선사의 마애사리탑이 조성되었고, 1819년(순조 19년) 10월에는 청신녀 월영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마애부도가 조성되었다. 1872년(고종 9년)에는 명성황후의 시주로 마애관음보살좌상이 조성되었으며, 1878년(고종 15년) 벽운화상이 중창하였다. 같은 해 한씨 일가의 시주로 경선화상이 마애관음보살좌상을 보수하였다.
2. 2. 근현대
1922년 성담스님이 개인 소유로 넘어간 사찰 소유의 산림 10여 정보를 매입하여 사격을 일신하였다. 1966년에는 명호스님이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찰에 불사를 일으켜 석조로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2012년에는 법보스님이 삼성각을 보수하였고, 2013년에는 요사채와 시민선방을 증축하였다. 2015년에는 법보스님이 대웅전을 준공하였다.
3. 주요 전각 및 문화재
학도암은 전통사찰 제77호로 1989년 4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지정되었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2000년 7월 15일에 지정되었고, 학도암 마애사리탑은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62호로 2015년 8월 20일에 지정되었다.
3. 1. 주요 전각
도량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웅전 상단에는 석가모니불좌상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입상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는 104위 신장탱이 모셔져 있다. 자연동굴 속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 약사전은 학도암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이다. 야외에는 마애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 관음전이 있다. 큰 바위 위에 있는 지장전에는 산 아래 남쪽 방향의 중계동과 하계동, 공릉동 방향으로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중계동 1번지에 위치한 삼성각에는 불암산 산신탱과 칠성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요사채와 같은 공간에 종무소가 있으며, 대웅전 아래에는 반 지하 형태의 선원이 있다.
3. 2. 문화재
학도암은 전통사찰 제77호로 1989년 4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지정되었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2000년 7월 15일에 지정되었고, 학도암 마애사리탑은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62호로 2015년 8월 20일에 지정되었다.
4. 고종과 명성황후 이야기
조선 고종 3년(1866년), 민치록의 딸 민자영은 16세에 왕비로 간택되어 가례(결혼)를 올렸으나, 고종(15세)은 이미 후궁 영보당 귀인 이씨를 총애하고 있었다. 가례를 올린 첫날, 고종은 왕비의 처소 대신 귀인 이씨의 처소에 들었다. 1868년 4월, 귀인 이씨가 고종의 첫 아들인 완화군을 낳자 고종은 더욱 총애하였으며, 흥선대원군조차 명성황후와 대소 신료들 앞에서 완화군을 안고 왕실이 튼튼해졌다며 크게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
왕의 사랑을 받은 후궁이 먼저 아들을 낳자 황후는 크게 불안해하였다. 구중궁궐 속에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던 18세의 어린 황후에게 한 궁녀가 부처님을 조성하면 그 가피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며 불사를 권하였다. 그날 밤 명성황후는 큰 바위 위에 앉았던 학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다음 날부터 꿈에 나온 학과 큰 바위가 있는 사찰을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학도암이었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사랑을 얻고 왕자를 낳아 왕통 잇기를 발원하며 불암산 학도암 큰 바위에 관세음보살을 조성하는 불사를 연다. 당시 최고의 불모였던 장엽을 금어로 임명하고 경복궁을 복원하던 왕실 석공 김흥연, 이운철, 원승천, 박천, 황원석에게 명해 관세음보살을 조성하게 한다. 이 마애관음보살상은 13.5m의 초대형이며 한국 내에서도 10번째 안에 든다.
조성을 시작하자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인해 명성황후는 차츰 고종의 사랑을 얻게 되었고, 조성 완료(1870년) 후 몇 년 되지 않아 훗날 순종이 되는 왕자 이척을 낳게 된다. 이후부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은 첫째 사랑을 얻고, 둘째 자녀를 얻으며, 셋째 자녀가 성공하는 세 가지 가피를 주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훗날 고종은 명성황후 시해 후 1년 뒤 덕수궁에서 영휘원까지 전화를 연결해 매일 아침 명성황후의 무덤에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1년을 매일 같이 전화해도 답변이 없자 고종은 ‘양인들이 만든 이 전어기(전화기의 옛말)라는 것은 멀리 있는 사람의 소식도 전해준다 하더니 하늘까지는 닿지 않는가 보오.’라며 슬퍼하였다. 명성황후가 고종의 사랑을 얻길 기원하며 학도암 관세음보살좌상을 조성하였는데, 그 사랑은 그녀의 죽음 이후까지도 이어졌다.
5. 학도암의 인물
김운공(金耘空, 1907년 ~ 1981년)은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이다. 범패승으로, 박송암, 장벽응과 함께 20세기 서울 경기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1973년 영산재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을 때 박송암, 장벽응과 함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07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상계동 불암산 학도암에서 주지로 오래 머물다 1981년 입적하였다. 서만월의 제자인 이범호에게 홑소리를, 동만월의 제자인 벽동스님에게 예수(豫修)와 짓소리를 배웠고, 봉원사, 청량사, 학도암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20세기 후반 영산재의 복원과 계승에 힘썼던 ‘영산재 1세대’로, 범패승들 사이에는 ‘청이 높고 성음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6. 학도암을 소재로 한 한시
박윤묵(朴允默, 1771~1849)의 존재집(存齋集)과 신석우(申錫愚, 1805 ~ 1865)의 해장집(海藏集)에는 학도암을 소재로 한 한시가 전한다.
박윤묵은 「제학도암(題鶴到庵)」이라는 시에서 학도암의 풍경을 묘사하였다. 시의 내용을 보면, "산 돌들 연이어져 마치 철 색깔처럼 푸르고, 깍아지른 절벽 골짜기는 뜰앞 계단에 맏다은 듯"이라는 구절을 통해 학도암 주변의 험준한 산세를 묘사하였다. "앞의 강물 시원히 흘러 가을마다 달을 맞이하고, 가운데 골짜기 단은 깊어 밤마다 별들이 제사지네는듯 하네."라는 구절에서는 학도암 앞을 흐르는 강과 주변의 자연 경관을 묘사하고 있다. "옛 석굴엔 신선의 향기 부처님 자리에 서리고, 회랑엔 맑은 경쇠소리 사람들 귀에 깜짝 울리네."라는 구절을 통해 학도암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바람이 외로운 소나무 그림자를 흔드니, 마치 당년에 학이 춤 추는 형상인듯 보이는구나."라는 구절을 통해 학도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하게 한다.
신석우는 「학도암(鶴到庵)」이라는 시에서 "스님이 나를 불러 일으키니, 가을산 나뭇잎 누렇구나."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가을날 학도암의 풍경을 묘사한다. "차가운 구름 석벽에 흘러가고, 노을진 해 개울못에 찰랑이네."라는 구절을 통해 학도암 주변의 자연을 묘사하고, "시에는 높은 산 오던 고인들 기억하고, 노래에는 땅을 가르던 비범한 화랑들 아련하건만, 어찌 두보가 홀로 찬공의 방에 머물머 지은 시에 비길까나."라며 두보(老工部)가 찬공의 방에 머물며 지은 시를 언급하며 자신의 시상을 드러냈다.
7. 교통 및 편의시설
학도암은 매일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셔틀버스는 불암고등학교와 학도암 사이를 운행하며, 농협중계본동지점 앞에서 출발하여 학도암에 도착한다. 셔틀버스는 오전 8시부터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막차는 오전 10시에 농협중계본동지점 앞에서 출발한다.
농협중계본동지점 앞 출발 시간 | 학도암 도착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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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 08:05 |
08:20 | 08:25 |
08:40 | 08:45 |
09:00 | 09:05 |
09:20 | 09:25 |
09:40 | 09:45 |
10:00 | 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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