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용성선사 승탑 및 탑비
1. 개요
합천 해인사 용성선사 승탑 및 탑비는 용성선사의 사리탑과 탑비로, 용탑선원 입구에 위치해 있다. 승탑은 일반적인 승탑 형식을 벗어나 탑 형식을 빌려온 3층 석탑 형태이며, 탑비는 용성선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한용운이 비문을 짓고 오세창이 두전을 썼다. 이 석비는 근대 건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조각 형태와 수법이 우수하며 조선시대 전통을 계승하고 있고, 용성선사의 업적을 기리는 탑비를 근대 문학과 예술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조성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용성선사의 부도는 삼층석탑으로 조성되어 예우를 나타내며, 한용운과 오세창이 참여한 점은 용성선사의 역사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 이름 | 합천 해인사 용성선사 승탑 및 탑비 |
|---|---|
| 유형 |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492 |
| 지정일 | 2009년 12월 3일 |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18-68 |
| 시대 | 일제강점기 |
|---|---|
| 수량 | 승탑 1기, 탑비 1기 |
| 참고 | 해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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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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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규격
합천 해인사 용성선사 승탑은 사리탑(부도)과 탑비로 구성되어 있다. 사리탑은 승려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고, 탑비는 승려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2.1. 부도(舍利塔)
용성선사의 사리탑은 전체 높이가 311cm이다. 각 부분별 크기는 다음과 같다.
| 구분 | 가로 (cm) | 세로 (cm) | 높이 (cm) |
|---|---|---|---|
| 하층 기단 | 186cm | 186cm | 55cm |
| 상층 기단 | 124cm | 124cm | 45cm |
| 1층 탑신 | 51.6cm | 51.6cm | 55.5cm |
| 1층 옥개 | 114.5cm | 114.5cm | |
| 2층 탑신 | 45cm | 45cm | 18cm |
| 2층 옥개 | 89cm | 89.5cm | |
| 3층 탑신 | 32cm | 32cm | 14cm |
| 3층 옥개 | 74.5cm | 74.5cm | |
| 노반 | 31.5cm | 31.5cm | 15cm |
| 보주 | 12.5cm |
2.2. 탑비
| 구분 | 가로 (cm) | 세로/폭 (cm) | 높이 (cm) |
|---|---|---|---|
| 총 높이 | 341.0 | ||
| 귀부 | 146.0 | 211.0 | |
| 귀두 | 39.0 | 70.0 | |
| 비좌 | 146.0 | 48.0 | 5.5 |
| 비신 | 73.5 | 26.5 | 176.0 |
| 이수 | 85.0 | 50.0 | 91.0 |
3. 현상 및 특징
해인사 용성선원 입구 쪽에 용성선사의 사리탑과 탑비가 나란히 있다. 전반적인 상태는 먼지로 인해 표면이 약간 변색된 정도이지만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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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의 묘탑(승탑)은 일반적인 승탑 형식을 벗어나 석탑 형식을 빌렸다. 상하 이중기단 위에 3개의 탑신을 얹은 평면 방형의 일반 석탑형이다. 이 승탑은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탑(1388) 2기 외에는 없는 희소한 형식으로, 전체적인 모습이 단정하며, 비슷한 높이의 이중기단이나 3층의 탑신 형식 등은 해인사 길상탑을 모방하여 조성된 것이다.
3.1. 용성선사 승탑
일반적인 승탑 형식을 벗어나 석탑 형식을 따른 것이 특징이다. 상하 이중기단 위에 3개의 탑신을 얹은 평면 방형의 일반 석탑형이다. 상하 기단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하층기단 위에는 상층기단을 받치기 위한 얕은 기단 받침이 있다. 상층기단 위에도 탑신을 받치기 위한 탑신받침이 있다. 탑신과 옥개(지붕돌)는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옥개는 낙수면이 두껍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옥개의 층급받침은 5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륜부(탑의 꼭대기 장식)는 노반(상륜부의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을 두었다.
이 승탑은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탑(1388) 2기 외에는 없는 희소한 형식으로, 전체적인 모습이 단정하다. 비슷한 높이의 이중기단이나 3층의 탑신 형식 등은 해인사 길상탑을 모방하여 조성된 것이다.
3.2. 용성선사 탑비
용성선사 탑비는 이중 지대석 위에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갖춘 형태이다. 귀부는 사지에 힘을 주고 웅크린 자세이며, 머리는 용두화(龍頭化)되지 않은 모습이다. 귀부 윗면은 전체적으로 귀갑문(龜甲紋)으로 조각되었고, 하단에는 당초문(唐草紋) 띠를 둘렀다. 가운데 마련된 방형 비좌(碑座) 가장자리는 중엽 연판(蓮瓣)으로 장식되어 있다. 비신 위 이수는 마주 보는 두 마리 반룡(蟠龍)으로 장식되어 있다.
비신에는 용성선사의 생애와 업적이 기록되어 있고, 우측면에는 한용운이 비문을 짓고 오세창이 전서(篆書)를 썼다는 기록(龍雲謹撰 吳世昌篆)이 있다.
3.2.1. 비문 내용
용성선사의 출생, 수행, 활동, 입적에 관한 내용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비신 우측면에는 한용운이 비문을 짓고, 오세창이 비문의 전서(篆書)를 썼다는 기록(龍雲謹撰 吳世昌篆)이 있다. 비문에 기록된 용성선사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龍城大禪師舍利塔碑銘幷序중국어
師曹溪直下第三十五代法孫喚惺志安之後裔而法諱震鍾號龍城白氏子系出水原世居全羅南道原竹/林村父曰南賢母孫氏母夢一異僧著法衣入室因以有娠以李朝高宗甲子五月八日生師師生而頴悟不喜/羶葷每有不忍之行六七歲時見其父釣魚擇其未死者放之水父詰之師曰安忍見其死父異之九歲能詩見/兒童摘花直吟摘花手裏動春心人稱其才嘗告父母以出家父母初則難之大事因緣竟莫能遏遂許之十九/歲入伽倻山海印寺依華月和尙落髮後參義城孤雲寺水月長老問生死事大無常迅速如何見得性長老曰/世屬像季法遠根鈍驟難超入莫若先誦大悲呪業障自除心光頓發師遂信而不疑自此誦大悲呪口口聲誦/心心黙念後至楊州寶光寺兜率菴猛加精進一日忽疑森羅萬像皆有本源我此見聞覺知從何而生疑來疑/去疑到十二畫夜猛覺一念如桶底脫相似徃參金剛山無融禪師具述前緣融日不道不是更參話頭師自是/參狗子無佛性話到兜率庵精進一日忽然失笑云去年貧未始貧無立錐之地今年是始貧錐也無正爲我準/備語也自此有契二十七歲扵通度寺金剛戒壇師禪谷律師受具戒及大契其後曹溪山松廣寺三日庵夏安/居時閱傳燈錄至黃蘖法語月似彎弓少雨多風處猛然大悟不啻扵月面佛日面佛活狗子無佛性話煥然明/白百千公案了如氷釋乃作偈曰金烏千秋月洛東萬里波漁舟何處去依舊㝛蘆花更閱一大時敎以度生爲/已住入泥入水京城各處高擧祖令大闡弘猷未幾創敎會特明大覺之玄㫖大欲傳布海外別設屬會于間島/島且譯華嚴圓覺楞嚴金剛起信等經傳廣布內外其外所著不尠常好放生其數不億可謂兼行六度無一不/備六十一歲舍利一粿出齒間色紫光潤形似頂骨庚辰春忽示疾付囑門徒吾將滅度切莫擧哀掛孝但誦無/無上大涅槃圓明常寂照足矣二月二十四日黎明微笑入寂異香動人一大事因緣至是而畢世壽七十七僧/臘五十九翌年門徒等起塔扵海印寺之西麓以安師之舍利立石而記銘曰 法貴度生 隨機從緣 恒沙/方便 無闕佛玄 以燈傳燈 有正無像 是故大德 旣龍且象 有師龍城 錐也不留 未設一偈/山河黙頭 非珠有珠 離色離空 塔而安之 伽倻之中 知音千載 少亦何傷 古桐離絃山峨水洋중국어
이 석비는 근대 건조물이지만 조각 형태와 수법이 우수하고, 조선시대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다. 무엇보다 탑비가 중요한 이유는 용성선사의 뛰어난 업적을 근대 문학과 예술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참여하여 조성했다는 점이다.
4. 역사적 의의
용성선사의 부도는 일반적인 승려의 부도와 달리 삼층석탑 형태로 조성되어, 그를 더욱 예우하고 추앙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부도 옆 탑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한용운이 비문을 짓고, 오세창이 탑비의 두전(頭篆)을 썼다는 사실은 용성선사가 근대사에 남긴 큰 발자취를 짐작하게 한다. 예술적 가치는 다소 미흡할 수 있으나, 독립운동가 3인이 함께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4.1. 독립운동과의 연관성
용성선사의 탑비는 근대 조형물이지만, 조각 형태와 기법이 뛰어나 조선시대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다. 특히, 용성선사의 업적을 기리는 이 탑비는 근대 문학과 예술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탑비의 비문은 한용운이 짓고, 비신의 머리글(두전)은 오세창이 썼다. 이는 용성선사가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한용운, 오세창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비록 예술적인 가치는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독립운동가 3인이 함께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합천 해인사 용성선사 승탑 및 탑비는 단순한 종교 유물을 넘어,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4.2. 근대 불교미술의 특징
이 승탑은 고려 시대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탑(1388) 2기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이며, 비슷한 높이의 이중 기단이나 3층의 탑신 형식 등은 해인사에 있는 길상탑을 본떠 만든 것이다.
일반적인 승탑 형식에서 벗어나 탑 형식을 빌렸다. 상하 이중 기단 위에 3개의 탑신을 얹은 평면 방형(사각형) 일반 석탑 형태이다. 각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상하 기단에는 모서리 기둥(우주)과 각 면에 1개씩의 기둥(탱주)이 새겨져 있다.
* 하층 기단 위에는 상층 기단을 받치기 위한 얕은 기단 받침이 몰딩되어 있다.
* 상층 기단 위에도 탑신을 받치기 위한 탑신 받침이 있다.
* 탑신과 옥개(지붕돌)는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 옥개는 낙수면이 두껍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옥개의 층급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다.
* 상륜부에는 노반(상륜부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 장식)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