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노르쿠스
1. 개요
헤르베르트 노르쿠스는 1932년 공산주의자들과의 충돌 중 사망한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다. 그는 베를린의 노동 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피아노 연주와 그림 그리기를 즐겼으며, 1931년 해군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했다. 나치당은 노르쿠스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선전에 활용했으며, 그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물과 작품이 제작되었다. 작가 카를 알로이스 쉔징거는 노르쿠스를 모델로 한 소설 《히틀러 소년 퀘스》를 발표했고,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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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헤르베르트 노르쿠스 |
|---|---|
| 출생 | 1916년 7월 26일 |
| 사망 | 1932년 1월 24일 (15세) |
| 사망 장소 | 독일 베를린 모아비트 |
| 사인 | 칼에 찔림 |
| 국적 | 독일 |
| 소속 | 히틀러 청소년단 |
|---|---|
| 별칭 | 히틀러 청소년단 노르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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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청소년단 단원 -
베르트 트라우트만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영국에서 포로 생활을 거쳐 1949년부터 맨체스터 시티 FC의 골키퍼로 활약하며 1956년 FA컵 우승을 이끄는 등 전설적인 선수로 인정받았고, 은퇴 후에는 여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
히틀러 청소년단 단원 -
알프레트 체흐
알프레트 체흐는 나치 치하에서 독일 소년단에 가입하고 소련군 공격으로 부상당한 독일군을 구출한 후 철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이후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 후 서독으로 이주하여 노동자로 일했으며, 영화 《몰락》에서 그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
1932년 살인 사건 -
5·15 사건
5·15 사건은 1932년 일본 해군 청년 장교들이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암살하고 주요 시설을 공격했으나 실패한 쿠데타 미수 사건으로, 정당 내각 붕괴와 군부 영향력 강화로 이어져 일본이 군국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
1932년 살인 사건 -
폴 두메르
폴 두메르는 철도 노동자 출신으로 수학 교수를 거쳐 정계에 입문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 하원의장, 상원의원 등을 역임하고 프랑스 제14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러시아 출신 망명자에게 암살당했다. -
1916년 출생 -
송지영
송지영은 남경중앙대학 출신으로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한국번역가협회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등을 역임하며 언론 및 문화계에서 활동했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국토통일원 고문,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제11대 국회의원, 한국방송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
1916년 출생 -
김철주 (군인)
김철주는 김형직과 강반석의 아들이자 김일성의 동생으로, 일제강점기 항일유격대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1935년 전사한 항일운동가이다.
2. 생애
헤르베르트 노르쿠스는 나치 독일 시대에 활동했던 히틀러 유겐트 단원으로, 어린 나이에 정치적 폭력으로 사망하여 나치 선전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2.1. 어린 시절
베를린 티어가르텐구의 노동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부상을 입었으며, 초기에는 공산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노르쿠스에 대한 나치 공식 전기에서는 그의 아버지가 처음에는 아들의 나치 활동을 반대했지만 결국 생각을 바꿔 나치당원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노르쿠스는 피아노 연주와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고 한다.
1931년에 해군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했다. 그의 동료들은 그가 "수은( Quecksilber독일어 )처럼 명령을 빠르게 수행했기" 때문에 'Quex'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2. 죽음
1932년 1월 24일, 당시 15세였던 헤르베르트 노르쿠스는 다른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과 함께 곧 있을 나치 집회를 홍보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공산주의자들과 마주쳤다. 노르쿠스는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가 도망쳐 도움을 구하기 위해 근처 집으로 달려갔다. 한 남자가 문을 열었으나, 그를 보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뒤쫓아온 공산주의자들은 노르쿠스를 여섯 차례 칼로 찔렀다. 노르쿠스는 다른 집 문을 두드렸고, 이번에는 한 여성이 문을 열어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병원 도착 직후 사망했다. 나치당 기관지 《Völkischer Beobachter》는 노르쿠스의 죽음을 이용하여 공산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즉각적인 금지를 요구하는 선전 활동을 벌였다.
3. 나치의 선전
나치당은 헤르베르트 노르쿠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했다. 그들은 노르쿠스를 나치즘의 '순교자'로 선전하며, 그의 죽음을 독일 공산당 등 좌파 세력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데 이용했다. 이러한 선전의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카를 알로이스 쉔징거의 소설 《히틀러 소년 퀘스》와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이다.
3.1. 《히틀러 소년 퀘스》
작가 카를 알로이스 쉔징거는 당시 인기를 끌었던 나치 소설 《히틀러 소년 퀘스》( Der Hitlerjunge Quex독일어 )(1932)에서 노르쿠스를 롤 모델로 삼아 히틀러 유겐트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은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다. 1933년에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 감독은 한스 슈타인호프가 맡았고, 실제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던 위르겐 올젠이 주연을, 하인리히 게오르게가 소년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