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반
1. 개요
호모반은 후한 영제 시기에 재물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도운 '팔주' 중 한 명이다. 190년, 동탁 정권에서 집금오를 지내며 연합군을 설득하려 했으나, 매부인 하내태수 왕광에 의해 옥에 갇혔다. 옥중에서 왕광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썼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이후 그의 친척들은 조조와 협력하여 왕광에게 복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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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의 화 -
곽태
곽태는 후한 시대의 학자로, 굴백언에게 학문을 배우고 이응과 교류하며 명성을 얻었으며, 사도 황경의 초빙을 거절하고 교육에 전념하여 제자 1,000명을 배출했으며, 채옹은 그의 비문만이 부끄럽지 않다고 평했다. -
당고의 화 -
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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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년 사망 -
위자 (삼국지)
위자는 후한 말 장막의 부장으로, 조조를 알아보고 동탁 토벌을 지원했으며, 서영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190년 사망 -
후한 소제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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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호모반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생몰년은 미상이나 190년에 사망했다. 자는 계피(季皮)이며, 연주 태산군 봉고현 출신이다. 시어사, 집금오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호모반은 하내태수 왕광의 매부였다. 그는 탁상, 장막, 왕고, 유유, 진주, 파향, 왕장과 함께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사람들을 구제하여 '팔주(八廚)'라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190년, 원소가 반동탁연합을 일으키자, 호모반은 동탁의 명령으로 연합군을 설득하러 갔으나 왕광에게 붙잡혀 옥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때 왕광에게 보낸 편지가 유명하다.
훗날 호모반의 친척들은 조조와 협력하여 왕광을 죽여 원수를 갚았다.
2.1. 명사로서의 삶
하내태수(河內太守) 왕광의 매부이다.
탁상, 장막, 왕고, 유유, 진주, 파향, 왕장과 함께 재물을 가벼이 여기며 사람들을 구제하여 이름이 높았고, 사람들은 호모반을 포함한 이 여덟 사람을 팔주(八廚)라고 불렀다.
초평 원년(190), 원소가 제후들을 규합하여 당시 정권을 장악한 동탁에게 반기를 들었다(반동탁연합). 당시 호모반은 동탁 정권에서 집금오(執金吾)를 지내고 있었는데, 동탁의 명령으로 산동(山東)으로 가 연합군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왕광은 원소의 명령으로 호모반을 잡아 옥에 가두어 죽이려 하였고, 이에 호모반은 옥중에서 왕광에게 편지를 썼다.
왕광은 편지를 읽고 호모반의 두 딸을 껴안고 울었으나, 결국 호모반은 죽었다.
훗날 호모반의 친척들은 조조와 협력하여 왕광을 죽여 원수를 갚았다.
2.2. 동탁 정권에서의 활동
초평 원년(190), 원소가 제후들을 규합하여 당시 정권을 장악한 동탁(董卓)에게 반기를 들었다(반동탁연합). 당시 호모반은 동탁 정권에서 집금오(執金吾)를 지내고 있었는데, 동탁의 명령으로 산동(山東)으로 가 연합군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왕광은 원소의 명령으로 호모반을 잡아 옥에 가두어 죽이려 하였고, 이에 호모반은 옥중에서 왕광에게 편지를 썼다.
왕광은 편지를 읽고 호모반의 두 딸을 껴안고 울었으나, 결국 호모반은 죽었다.
2.3. 왕광과의 갈등과 죽음
왕광(王匡)의 매부이다.
탁상(度尙) · 장막(張邈) · 왕고(王考) · 유유(劉儒) · 진주(秦周) · 파향(蕃嚮) · 왕장(王章)과 함께 재물을 가벼이 여기며 사람들을 구제하여 이름이 높았고, 사람들은 호모반을 포함한 이 여덟 사람을 팔주(八廚)라고 불렀다.
초평(初平) 원년(190), 원소(袁紹)가 제후들을 규합하여 당시 정권을 장악한 동탁(董卓)에게 반기를 들었다(반동탁연합). 당시 호모반은 동탁 정권에서 집금오(執金吾)를 지내고 있었는데, 동탁의 명령으로 산동(山東)으로 가 연합군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왕광은 원소의 명령으로 호모반을 잡아 옥에 가두어 죽이려 하였고, 이에 호모반은 옥중에서 왕광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은 저를 감옥에 가두고 조리돌리려 하시는데, 이 어찌 포악무도한 짓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동탁의 친척이라도 됩니까? 어찌하여 저를 (동탁과 같이) 미워하십니까? 당신은 범과 이리같은 입을 벌리시고 뱀독을 토하여 동탁에게 맺힌 원한을 제게 옮기어 분노하고 계시는데, 어찌 그리도 가혹하시단 말입니까? 사람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운 것입니다만, 미친 사람처럼 여겨져 해를 입는 것이 치욕스럽습니다. 만약 죽은 이에게 혼령이 있다면, 마땅히 하늘에 당신을 고소할 것입니다. 무릇 혼인이란 재앙과 복의 발단이라 하더니, 오늘에야 (재앙이) 나타났습니다. (지난날에는 서로) 한 몸처럼 감싸주다가 이제 원수가 되었으나, 죽을 사람의 두 딸은 당신의 조카이니, 죽은 후에는 저의 시체를 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중국어
편지를 읽은 왕광은 호모반의 두 딸을 껴안고 울었으나, 결국 호모반은 죽었다.
훗날 호모반의 친척들은 조조(曹操)와 협력하여 왕광을 죽여 원수를 갚았다.
2.4. 사후
왕광(王匡)의 매부이다.
호모반은 탁상, 장막, 왕고, 유유, 진주, 파향, 왕장과 함께 재물을 가벼이 여기며 사람들을 구제하여 이름이 높았고, 사람들은 호모반을 포함한 이 여덟 사람을 팔주(八廚)라고 불렀다.
초평 원년(190년), 원소가 제후들을 규합하여 당시 정권을 장악한 동탁에게 반기를 들었다(반동탁연합). 당시 호모반은 동탁 정권에서 집금오(執金吾)를 지내고 있었는데, 동탁의 명령으로 산동(山東)으로 가 연합군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왕광은 원소의 명령으로 호모반을 잡아 옥에 가두어 죽이려 하였고, 이에 호모반은 옥중에서 왕광에게 편지를 썼다.
왕광은 호모반의 편지를 읽고 그의 두 딸을 껴안고 울었으나, 결국 호모반은 죽었다.
훗날 호모반의 친척들은 조조와 협력하여 왕광을 죽여 원수를 갚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