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광 (후한)
1. 개요
왕광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채옹과 친교를 맺었으며 하진에게 발탁되어 서주에서 군수 물자 보급을 담당했다. 십상시의 난 당시 원소와 함께 환관 세력에 대항하여 고망을 살해했으나, 하진 사망 후 관직을 사임했다가 하내태수로 임명되었다.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동탁군과 맞섰으나 패배했고, 원소의 명령으로 매부인 호모반을 살해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세력을 모으려 했으나 조조에게 살해당했다.
| 이름 | 왕광 |
|---|---|
| 원어 이름 | 王匡 |
| 로마자 표기 | Wang Kuang |
| 자 | 공절 (公節) |
| 출생지 | 산둥성 타이안 |
| 사망 추정 시기 | 기원후 191년경 |
| 직업 | 관료, 군벌 |
| 임기 시작 | 189년 |
|---|---|
| 임기 종료 | 191년 |
| 군주 | 헌제 |
| 전임자 | 주준 |
| 후임자 | 장양 |
| 친척 | 호모반의 아내 (자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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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장군 -
반초
반초는 후한 시대의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서역 경영에 크게 기여하고 실크로드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
한나라의 장군 -
장건
장건은 한나라의 외교관이자 탐험가로, 한무제의 명을 받아 흉노 견제를 위한 대월지 동맹을 추진하며 서역에 파견되어 실크로드 개척의 계기를 마련하고 중국과 서역의 교류를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후한말 사람 -
화타
화타는 중국 후한 말의 명의로, 약물 처방, 침술, 마취 수술 등 뛰어난 의술을 펼쳤으며, 조조의 치료를 거부하여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후한말 사람 -
유표 (흉노)
유표는 남흉노 선우 우부라의 아들이자 연제씨 일족으로, 흉노 출신 최초로 유씨 성을 사용했으며, 남흉노가 다섯 부로 나뉘었을 때 좌부를 통괄했고, 그의 아들 유연은 한조를 건국했다.
2. 생애
왕광은 젊은 시절 협객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채옹과도 친분이 있었다. 하진 휘하에서 관직을 시작하여 십상시의 난 진압에 참여했고, 동탁 집권 후 하내태수로 임명되었다. 190년 반동탁 연합군에 가담하여 동탁군과 맞섰으나 패배하였다. 이후 연합군 해산을 종용하러 온 호모반을 처형하였다. 왕광은 고향으로 돌아가 세력을 모으려 했으나, 호모반의 친족과 조조에게 살해당했다.
왕광은 하내 태수 시절, 가혹한 통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지』 상림전에 따르면, 죄를 씌워 금품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일족을 처형하는 등 공포 정치를 펼쳤다고 한다.
초평 원년(190년),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났을 때 왕광도 이에 참가하여 군대를 하양진에 주둔시키고 동탁군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동탁군의 교묘한 협공을 받아 대패하였다. 이후 태산으로 도망쳐 돌아가 다시 군대를 모아 장막과 합류하려 했다.
동탁은 화친을 위해 왕광의 사위인 집금오 호모반을 하내로 보냈으나, 왕광은 원소의 명령에 따라 호모반을 살해했다. 이 때문에 훗날 호모반의 유족과 조조가 손을 잡고 왕광을 살해했다. 정확한 사망 시기는 불명이지만, 동탁 생전에 장양이 하내 태수에 임명된 기록으로 보아 늦어도 초평 3년(192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왕광의 종사였던 한호는 훗날 조조의 부하로서 문무에 걸쳐 활약하며 명성을 떨쳤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왕광은 젊은 시절부터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하여 임협으로 이름이 높았고 채옹과도 친교를 맺었다.
처음에는 대장군 하진으로부터 대장군 부연으로 임명되어 서주로 부임해 군수물자 보급 등의 후방 담당 역을 맡았다. 이후 원소가 정권을 잡은 하진에게서 십상시 주살의 지휘권을 일임받자 원소의 계책에 따라 강노수 5백 명을 이끌고 낙양으로 소집되었다. 이때 원소는 동군태수 교모를 성고에 주둔시켰고, 무맹도위 정원을 시켜 맹진을 불태우게 했는데 그 불빛이 낙양에까지 비췄다고 한다.
원소의 압박에 낙양 내에서 환관들의 보호세력은 모두 떨어져 나갔고 원소는 하진에게 힘을 잃은 십상시들을 모조리 처형할 것을 권하였으나, 하진이 망설이는 사이에 환관세력은 십상시의 난을 일으켜 반격했고 하진은 살해되고 만다.
왕광은 원소와 합류해 환관들에게 반격을 가했고 중상시 고망을 살해했다. 이후 동탁이 집권하자 직위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다시 하내태수로 임명되었다.
영제 재위 기간(168년 ~ 189년) 동안 왕광은 장군 하진의 부하로 경력을 시작했다. 189년 영제가 사망한 이후, 하진은 경쟁 관계에 있던 십상시 환관 세력에게 암살당했고, 왕광은 잠시 관직을 사임하고 평민으로 살았다. 그러나 같은 해에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곧 하내군 (현재의 허난성, 허베이성, 산시성 일부 지역)의 태수로 임명되었다.
『삼국지』 상림전에 따르면, 왕광은 하내군에 속하는 현의 관민의 죄과를 찾아내어, 의심스러운 자를 체포하여 심문하고, 죄과가 있으면 금이나 곡물을 요구했으며, 즉시 금이나 곡물을 내놓지 않는 자는 일족 모두를 처형하여 위엄을 높였다.
2.2. 동탁과의 대립
190년,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나자 왕광도 이에 참여해 하양진에 주둔하며 동탁군과 맞섰으나 동탁군의 교묘한 협공에 말려들어 군사가 크게 패했다.
이 무렵 동탁은 황제의 이름을 빌어 왕광의 매부인 집금오 호모반(胡母班) 등 명망높은 인물들을 칙사로 보내 연합군의 해산을 종용했다. 하지만 연합군의 맹주 원소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오히려 왕광에게 이들을 모두 처형하여 머리를 전군에 보이도록 명령하여 결국 왕광은 호모반을 살해했다.
2.3. 최후
왕광은 원소와 합류해 환관들에게 반격을 가했고 중상시 고망을 살해했다. 이후 동탁이 집권하자 직위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다시 하내태수로 임명되었다.
190년,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나자 왕광도 참여해 하양진에 주둔하며 동탁군과 맞섰으나 동탁군의 교묘한 협공에 말려들어 군사가 크게 패하고 만다.
이 무렵 동탁은 황제의 이름을 빌어 왕광의 매부인 집금오 호모반 등 명망높은 인물들을 칙사로 보내 연합군의 해산을 종용했다. 하지만 연합군의 맹주 원소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오히려 왕광에게 이들을 모두 처형하여 머리를 전군에 보이도록 명령하여 결국 왕광은 호모반을 살해했다.
이후 왕광은 고향인 태산으로 돌아가 수천 명의 정예병을 모았고 장막의 세력에 합류하려고 했으나, 왕광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호모반의 친족들과 결탁한 조조에게 살해당했다.
3.1.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왕광은 삼국지연의에서 반동탁 연합군의 제5진으로 등장해 호뢰관 전투에서 선봉을 맡았으나, 부하 방열이 여포에게 죽고 겨우 도주한다. 이후 등장은 없다.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왕광은 역사적 인물과 마찬가지로 동탁 토벌전에 참여한다. 호로관 전투에서 자신의 장수 방열(가공 인물)을 여포와 싸우게 하지만, 여포는 불과 다섯 합 만에 방열을 죽인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동탁 토벌 제후 연합에 하내 태수 제5진으로 참가한다. 호로관 전투에서 선봉을 맡지만, 부하 무장 방열이 여포에게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자 당황하여 도주한다. 이후 등장은 없다.
4. 왕광을 섬긴 사람들
* 한호
* 방열 -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