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베르투 히벨리누
1. 개요
호베르투 히벨리누는 브라질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코치로,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윙어로 활약했다. 1965년 코린치안스에서 데뷔하여 "공원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플루미넨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1970년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펠레 은퇴 후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아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축구 해설가와 코치로 활동했으며, 1999년 월드 사커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100인 중 38위에 올랐다. 그는 강력한 왼발 슈팅과 엘라스티코 기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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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호베르투 히벨리누 |
|---|---|
| 출생일 | 1946년 1월 1일 () |
| 출생지 | 상파울루, 브라질 |
| 신장 | 1.69m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 애칭 | 히바 |
| 유소년 클럽 | CA 바르셀로나 (1962년) 코린치앙스 (1963–1964년) |
|---|---|
| 클럽 | 코린치앙스 (1965–1974년) 플루미넨시 (1975–1978년) 알힐랄 (1978–1981년) |
| 출장 및 득점 | 코린치앙스: 236경기 70골 플루미넨시: 45경기 10골 알힐랄: 57경기 25골 |
| 총 출장 및 득점 | 338경기 105골 |
| 국가대표팀 | 브라질 (1965–1978년) |
|---|---|
| 국가대표 출장 및 득점 | 92경기 26골 |
| 감독팀 | 시미즈 에스펄스 (199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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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 에스펄스의 축구 감독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시미즈 에스펄스의 축구 감독 -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오스발도 아르딜레스는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고,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하며 사랑받았으며, 은퇴 후에는 여러 클럽과 J리그 팀들을 지도했다. -
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브라질인 -
파비뉴
파비뉴는 브라질 출신 프로 축구 선수로, 플루미넨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AS 모나코와 리버풀을 거쳐 현재 알 이티하드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수비력과 패스 능력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인정받고 있다. -
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브라질인 -
헤낭 로지
헤낭 로지는 브라질의 축구 선수로,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노팅엄 포레스트, 마르세유 등을 거쳐 현재 알 힐랄 SFC에서 뛰고 있으며, 브라질 국가대표팀으로 2019년에 데뷔하여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
FIFA 월드컵 우승팀 선수 -
펠레
펠레는 에드손 아란치스 두 나시멘토라는 본명으로 브라질에서 태어나, 산토스 FC와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FIFA 월드컵 3회 우승과 1,000골 이상 기록을 세운 "축구 황제"로 불린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다. -
FIFA 월드컵 우승팀 선수 -
카푸
카푸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로,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하며 브라질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1994년과 2002년 FIFA 월드컵 우승, 월드컵 결승전 세 번 출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털컵, 세리에 A, UEFA 챔피언스리그 등 다수의 우승을 경험했으며 "일 펜돌리노"라는 별명을 얻은 리더십과 인성을 갖춘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히벨리누는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코린치안스와 플루미넨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 세 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1962년 코린치안스에 입단하여 1965년에 1군 공식 경기에 데뷔했고, 같은 해 19세의 나이로 브라질 대표팀에 처음 선출되어 헝가리전에 출전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왼쪽 윙 포워드로 출전,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1골, 8강 페루전에서 1골 2어시스트, 준결승 우루과이전에서 1골, 결승 이탈리아전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3골 3어시스트로 브라질의 우승에 기여했다. 펠레, 토스타웅, 자일지뉴 등이 활약한 브라질은 7전 전승으로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불렸다.
펠레 은퇴 후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등번호 8번을 물려받았고, 1974년부터는 10번을 달고 펠레의 후계자로 활약했다. 1974년 월드컵에서는 3골을 기록했다. 준결승에서는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에 고전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히벨리누는 월드컵에 총 3번 출전하여 15경기에서 6골을 기록했으며, 대표팀 공식 경기에는 통산 122경기 출전, 43골을 기록했다. 선수 생활 만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에서 활약하다가 1982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1994년)과 코린치안스 제너럴 매니저(2003~2004년)를 역임했다. 1999년에는 월드 사커지의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100인'에서 38위에 선정되었다.
2.1. 클럽 경력
히벨리누는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풋살 선수로 시작했다. 1965년, 브라질 명문 클럽 코린치안스에서 프로 축구 선수로 데뷔하여, "공원의 왕(O Rei do Parque)"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코린치안스에서 10년 가까이 활약했지만, 팀은 1954년부터 1977년까지 상파울루 주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74년, 코린치안스는 라이벌 파우메이라스에게 패배했고, 히벨리누는 팬들의 비난을 받으며 리우데자네이루의 플루미넨세로 이적했다. 플루미넨세에서 "트리콜로 머신"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75년, 1976년 리우데자네이루 주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1970년대 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로 이적하여 1978-79 시즌 리그 우승, 1980년 킹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1981년, 프로 축구 선수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히벨리누는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강력한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멕시코 팬들로부터 "파타다 아토미카(Patada Atómica)"(원자 킥)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74년 FIFA 월드컵과 1978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각각 4위와 3위를 기록했다.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골 |
|---|---|---|---|
| 브라질 | 1965 | 1 | 0 |
| 1968 | 17 | 6 | |
| 1969 | 1 | 1 | |
| 1970 | 8 | 5 | |
| 1971 | 7 | 1 | |
| 1972 | 5 | 0 | |
| 1973 | 9 | 3 | |
| 1974 | 15 | 6 | |
| 1976 | 8 | 1 | |
| 1977 | 12 | 3 | |
| 1978 | 8 | 0 | |
| 합계 | 91 | 26 | |
1965년, 19세의 나이로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했다.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펠레 등과 함께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펠레 은퇴 후에는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아 브라질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3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197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브라질은 3위를 차지했다.
1974년 월드컵 동독전에서는 상대 선수가 만든 수비벽 사이에 들어간 자일지뉴가 히벨리누가 볼을 차기 직전에 웅크리면서 그 좁은 틈을 통과시키는 트릭 골을 넣기도 했다.
197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발 부상으로 3경기 출전에 그쳤다.
3. 은퇴 후 경력
은퇴 후, 히벨리누는 축구 해설가와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 J.리그의 시미즈 에스펄스를 감독했다. 1994년 세컨드 스테이지부터 시미즈 에스펄스의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그 해를 마지막으로 사임했다. 또한, 후에 브라질 대표 선수가 되는 자우미냐를 입단시켰다.
| 팀 | 시작 | 종료 | 기록 | ||||
|---|---|---|---|---|---|---|---|
| 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 시미즈 에스펄스 | 1994년 | 1994년 | 22 | 11 | 0 | 11 | 50.00 |
| 총합 | 22 | 11 | 0 | 11 | 50.00 | ||
1999년, 월드 사커지의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100인에서 38위로 선정되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코린치안스에서 제너럴 매니저를 맡았다.
그의 조국에서 열린 2014년 FIFA 월드컵과 관련하여, 히벨리누는 개최 장소에 아마존 도시인 마나우스와 그 경기장인 아레나 다 아마조니아를 포함시킨 것에 대해 비판하며 "마나우스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라커룸을 나서는 순간부터 땀이 나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히벨리누는 주로 왼발을 사용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윙어였다. "파타다 아토미카(Patada Atómica, 원자 킥)"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하고 정확한 왼발 슈팅이 가장 큰 무기였다. 토스탕은 "번개 같은 슈팅"이었고 "때로는 '폭탄'이라고 불렸다"라고 회상하며 그의 슈팅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공격을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도 수행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왼쪽 윙 포워드로 출전하여 3골 3도움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우승에 기여했다. 펠레 은퇴 후에는 제르송의 등번호 8번을 물려받았고, 1974년부터는 10번을 달고 펠레의 후계자로 활약했다.
현란한 드리블 기술, 특히 "엘라스티코(Elastico)"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엘라스티코는 왼쪽 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가볍게 터치하여 상대방을 속인 후, 같은 발 인스텝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제치는 기술이다. 히벨리누는 이 기술을 세르지우 에고에게서 배웠으며, 세르지우는 "내가 발명했고, 네가 완벽하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5.1. 클럽
| 구단 | 대회 | 우승 연도 |
|---|---|---|
| 코린치안스 | 리우-상파울루 토너먼트 | 1966 |
| 플루미넨세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 1975, 1976 |
| 알 힐랄 | 사우디 프로페셔널리그 | 1978–79 |
| 알 힐랄 | 킹스컵 | 1980 |
5.2. 국가대표팀
1965년 19세의 나이로 브라질 대표팀에 처음 선출되어 헝가리전에 출전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왼쪽 윙 포워드로서,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1골, 8강 페루전에서 1골 2어시스트, 준결승 우루과이전에서도 1골, 결승 이탈리아전에서 1어시스트로 3골 3어시스트의 활약을 펼쳐 우승에 기여했다. 펠레, 토스타웅, 자일지뉴, 제르송, 클로도아우두 등을 보유한 브라질은 7전 전승으로 강력함을 보여주며, 역사상 최강의 브라질 대표팀으로 불렸다.
펠레 은퇴 후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제르송의 등번호 8번을 물려받아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1974년부터 등번호 10번을 달고, 펠레의 후계자로서 활약했다.
1974년 월드컵에서는 2차 리그 3경기에서 2골을 넣는 등, 총 3골을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는 동독전에서 상대 선수가 만든 수비벽 사이에 들어간 자일지뉴가 히벨리누가 볼을 차기 직전에 웅크리면서 그 좁은 틈을 통과시키는, 트릭 골을 넣었다.
1978년 월드컵에서는, 전에는 히벨리누의 대회라고 불렸다. 첫 경기 스웨덴전에서 풀 출전했지만, 발 부상으로 3경기 출전에 그쳤다.
히벨리누는 월드컵에 3번 출전, 15경기 6골. 대표팀 공식 경기에는 통산 122경기 출전, 43골을 기록했다.
5.3. 개인
| 수상 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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