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리쓰오
1. 개요
호소카와 리쓰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1990년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 일본 사회당, 일본 사회민주당을 거쳐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과 간 나오토 내각에서 후생노동성 부대신과 후생노동대신을 역임했다. 2012년과 2014년 총선에서 연이어 낙선한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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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細川律夫 |
|---|---|
| 원어 이름 (언어) | 일본어 |
| 출생일 | 1943년 8월 8일 |
| 출생지 | 일본 고치현 아가와군 고호쿠촌 (현 이노정) |
| 학력 | 메이지 대학 법학부 졸업 |
| 직업 | 변호사 |
| 소속 정당 | 민진당 |
|---|---|
| 과거 소속 정당 | 일본사회당 사회민주당 (일본) 민주당 (일본, 1996년) 민주당 (일본) |
| 국회 의원 | 중의원 의원 |
| 당선 횟수 | 7회 |
| 지역구 | 사이타마현 제4구 (1947-1993) (구) 비례대표 기타칸토 블록 사이타마현 제3구 |
| 임기 시작 | 1990년 2월 19일 |
| 임기 종료 | 2012년 11월 16일 |
| 직책 | 후생노동대신 |
|---|---|
| 총리 | 간 나오토 |
| 임기 시작 | 2010년 9월 17일 |
| 임기 종료 | 2011년 9월 2일 |
| 이전 | 나가쓰마 아키라 |
| 이후 | 고미야마 요코 |
| 학위 | 법학사 (메이지 대학, 196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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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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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후생노동대신 -
시오자키 야스히사
시오자키 야스히사는 에히메현 출신의 일본 정치인으로,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며 아베 내각에서 내각관방장관 등을 지냈고, 일본회의 회원으로 우익 성향을 보였으며, 2021년 총선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였다. -
일본의 후생노동대신 -
고토 시게유키
고토 시게유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며 재무성 관료 출신으로 나가노현 제4구에서 8선 의원을 지냈고, 후생노동대신, 경제재생담당대신, 감염증 위기 관리 담당대신 등을 역임하며 헌법, 외교·안보, 젠더, 에너지 정책 등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표명해 왔다. -
일본 사회민주당 -
사회민주당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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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민주당 -
도이 다카코
도이 다카코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헌법학자로, 일본사회당과 사회민주당에서 활동하며 일본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이자 중의원 의장을 역임했고,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에 기여, 진보적인 정치 활동을 펼쳤으나, 납북자 문제 대응 및 당 운영에 대한 비판과 친북 성향 논란 등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
고치현 출신 -
고토쿠 슈스이
고토쿠 슈스이는 일본의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언론인, 사상가로서 사회민주당 창당 참여, 러일전쟁 반대 운동 주도, 언론 활동, 무정부주의 전향, 직접행동론 주장 등의 활동을 펼치다 대역사건으로 사형당했으며, 그의 사상은 일본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운동, 문학계, 한국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
고치현 출신 -
아리카와 히로
아리카와 히로는 2003년 《소금의 마을》로 데뷔한 일본의 소설가로, 자위대를 소재로 한 작품과 《도서관 전쟁》 시리즈 등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다양한 작품이 영화 등으로 제작되었다.
2. 생애
고치현 출신으로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1990년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본 사회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첫 당선되었다. 일본 사회당, 사회민주당을 거쳐 1996년 구 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98년에는 구 민주당, 민정당, 신당 우애, 민주 개혁 연합이 합류한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과 간 나오토 내각에서 후생노동성 부대신을 역임했으며, 간 내각 제1차 개조내각에서는 나가쓰마 아키라 후임으로 후생노동대신에 취임했다. 2011년 출범한 간 내각 제2차 개조내각에서도 후생노동대신에 유임되었다.
2010년 9월 29일, 중국 건국 기념 리셉션에 참석했다. 2011년 9월 노다 내각 출범 이후에는 내각에서 물러나 민주당 대의사 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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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변호사 시절
고치현 출신으로, 1966년 메이지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74년 사이타마 변호사회에 변호사로 등록하여 활동했다. 1981년 고시가야 종합 법률 사무소를 개설하였다. 오모리 권업은행 사건에서 피고인의 변호를 맡아 역전 무죄를 이끌어냈다.
2.2. 정치 입문
고치현 아가와군 고호쿠촌 (후의 고치현 아가와군 이노정) 출신으로,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오모리 권업은행 사건에서는 피고인의 변호를 맡아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역전 무죄를 쟁취했다.
1983년과 1986년 총선에 입후보했지만 낙선했다.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본 사회당 소속으로 구 사이타마 4구에서 출마하여 첫 당선되었다.
1996년 구 민주당 결성에 참가했다. 1998년에는 구 민주당, 민정당, 신당 우애, 민주 개혁 연합이 합류한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2.3. 중의원 의원 활동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본 사회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첫 당선된 후 7선 의원을 역임했다. 1996년 9월 구 민주당 결성에, 1998년 4월 민주당 결성에 참여했다. 사이타마현 제3구 또는 제4구를 지역구로 활동했다.
1999년 10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중의원 환경위원장을, 2004년 5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중의원 결산행정감시위원장을 역임했다. 2003년 1월부터 2004년 5월까지, 그리고 2005년 11월부터 2006년 9월까지 중의원 예산위원회야당 필두 이사를, 2006년 9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중의원 윤리 선거 특별위원회 야당 필두 이사를 맡았다.
민주당 내에서 후지마에 간척지 문제 프로젝트 팀 사무국장(1998년 11월), "교통사고 문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사무국장(1998년 12월), "일본의 근현대사 조사회" 사무국장(2005년 6월), 비정규 고용 대책 프로젝트 팀 좌장(2008년 12월)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2014년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사이타마 3구에 출마했으나 모두 자유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했다. 두 번 모두 비례 부활에도 실패했다.
2.4. 후생노동성 부대신 및 대신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과 간 나오토 내각에서 후생노동성 부대신을 역임했다(2009년 9월 ~ 2010년 9월). 간 나오토 내각 제1차 개조내각에서 나가쓰마 아키라의 후임으로 후생노동대신에 취임했다(2010년 9월 ~ 2011년 1월). 간 나오토 내각 제2차 개조내각에서도 후생노동대신에 유임되었다(2011년 1월 ~ 2011년 9월).
후생노동성 부대신 시절, 제조업 노동자 파견 금지를 골자로 하는 노동자 파견법 개정안 제출을 추진했다. 긴급 고용 창조 팀 리더를 맡아 사회적 기업 분야 고용 창출에 힘썼다. 아동 수당 도입과 관련하여 "전액 국고 부담"을 주장하는 에다노 유키오 내각관방장관과 대립하기도 했다.
2.5. 정계 은퇴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사이타마 3구 소선거구에 출마했지만, 자유민주당 신인 키카와다 히토시에게 패배하여 낙선했다. 비례대표 부활도 실패하여 7선 중의원 의원직을 잃었다.
2014년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사이타마 3구에 출마했으나 다시 낙선했다. 비례대표 부활도 실패하여 의석을 회복하지 못했다. 투표일 다음 날, 홈페이지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후임은 야마카와 유리코이다.
2015년 11월, 욱일대수장을 수훈받았다.
3. 정책 및 주장
* 영주 외국인 지방 선거권 부여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14년 조사에서는 "어느 쪽인가 하면 찬성"이라고 답했다.
* 제2차 세계 대전 전 및 대전 중의 강제 연행·강제 노동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성실한 대응을 촉구했다.
* 2007년 5월 13일, 중의원에 최저임금법 개정안(각 지역의 지역 최저임금을 평균 1000JPY)으로 하는 것)을 제출했다.
4. 기타
미나미코시가야 아와오도리에 매년 '릿쨩 렌'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연의 일원으로서 참가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날짜를 정하지 않고 부정기적으로 참배한다고 2011년 8월 15일에 밝혔다. 각료로서 종전의 날이나 춘계·추계 예대제에 참배한 적은 없다. 제171회 국회에서 호소카와가 제출자로 참여한 법안은 8건이며, 그 중 필두 제출 법안은 6건으로 전체 의원 중 가장 많았다. 계속 심의 중이던 법안 36건 중 호소카와가 필두 제출자였던 법안이 3건 있었으므로, 제171회 국회에서 심의된 법안 중 9건의 필두 제출자가 호소카와였으며 이 또한 전체 의원 중 최다수이다. 차남 호소카와 다케시는 사이타마현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