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우루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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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세 마리아 우루티아는 아틀레틱 빌바오의 유소년팀을 거쳐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활약한 축구 선수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1군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1997-98 시즌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기여했다. 2003년 은퇴할 때까지 401경기에 출전했다. 2011년에는 아틀레틱 빌바오 회장으로 선출되어 구단을 운영했으며, 2018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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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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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우루티아
본명호수 우루티아 텔레리아
출생일1968년 4월 10일
출생지빌바오, 스페인
1.76m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은퇴)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아틀레틱 빌바오 (1977–1986)
클럽빌바오 아틀레틱 (1984–1990): 109경기 (13골)
아틀레틱 빌바오 (1988–2003): 348경기 (10골)
총 출장 수 (골)457경기 (23골)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바스크 (1990–2001): 6경기 (2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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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1990-91 시즌부터 우루티아는 아틀레틱 빌바오 1군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아 공 가로채기, 체력, 기술을 바탕으로 훌렌 게레로와 같은 공격적인 선수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바스크주 연고 구단인 아틀레틱 빌바오는 1997-98 시즌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2.1. 유소년 시절

비스카이아 주 빌바오에서 태어나 아틀레틱 빌바오의 유소년부 (레사마)를 졸업했다. 1984년 9월 9일, 프로 선수들의 파업으로 16세의 나이에 2군 소속으로 현역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살라망카와의 세군다 디비시온 경기에서 67분간 출전해 3-1 승리에 기여했다.

1987-88 시즌 스포르팅 히혼과의 안방 경기에서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1군 데뷔전을 치렀고, 다음 시즌에는 5경기에 더 출전하며 2군 소속으로 2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1989-90 시즌 도중 2군에서 1군으로 승격되었고, 1990년 4월 1일 바야돌리드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이 경기는 이웃 레알 소시에다드 구장 아토차에서 열렸으며, 2-2 무승부로 끝났다.

2.2. 프로 데뷔 초기

비스카이아 도 빌바오 출신으로, 레사마의 아틀레틱 빌바오 유소년부를 졸업했다. 1984년 9월 9일, 프로 선수들의 파업으로 그는 불과 16세의 나이에 2군 소속으로 현역 신고식을 치렀고, 살라망카와의 경기에서 67분 출전해 3-1 승리에 기여했다.

1987-88 시즌스포르팅 히혼과의 안방 경기에서 90분을 소화하며 1군 경기에 한 차례 출전했고, 그 다음 시즌에는 라 리가에 5번 더 출전해 2군 소속으로 2부 리그 승격을 이룩했다. 1989-90 시즌 도중 2군에서 1군으로 승격되었고, 1990년 4월 1일에 바야돌리드와의 안방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는데, 당시 경기는 이웃 레알 소시에다드 구장 아토차에서 치러졌다.

2.3. 아틀레틱 빌바오 1군

우루티아는 비스카이아 도 빌바오 출신으로, 아틀레틱 빌바오의 유소년부를 졸업했다. 1987-88 시즌에 1군 경기에 처음 출전하여 스포르팅 히혼과의 경기에서 90분을 소화했고, 다음 시즌에 5경기에 더 출전했다. 1989-90 시즌 도중에 1군으로 승격되었고, 1990년 4월 1일 레알 바야돌리드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1990-91 시즌부터 우루티아는 1군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공 가로채기, 체력, 기술이 뛰어난 미드필더로 두각을 나타냈고, 훌렌 게레로와 같은 공격적인 선수를 상호 보완했다. 바스크 주 연고 구단은 1997-98 시즌에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출전 횟수가 줄어들었고, 2002-03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경기 한 번 출전에 그쳤다. 우루티아는 35세에 오른쪽 무릎의 고질적인 문제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401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했다.

2.4. 은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도합 25경기 출전에 그쳤고, 2002-03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 경기 출전이 단 한 번이었다. 우루티아는 35세에 오른쪽 무릎의 고질적인 문제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그때까지 401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했다. 현역 기간 중 9번의 퇴장 처분을 받아 클럽 최다 퇴장 기록을 세웠지만, 이 기록은 2011년에 페르난도 아모레비에타에 의해 갱신되었다.

3. 회장 임기

2011년 7월 7일, 우루티아는 54.36%의 득표율로 아틀레틱 빌바오 회장에 당선되어 선수 출신으로는 4번째로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 선임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회장 취임 후 이를 실현했다.

2015년 3월, 우루티아는 단독 후보로 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 4년간 더 구단을 이끌게 되었다. 임기 초, 그는 전 동료였던 호세 앙헬 시간다를 2군 감독으로 임명했고, 6년 후에는 시간다를 1군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시간다는 또 다른 현역 시절 동료였던 에르네스토 발베르데의 뒤를 이었다.

2018년 11월, 우루티아는 아틀레틱 빌바오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후임 회장이 선출되기 전까지 '임시 회의'를 소집했고, 우루티아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에두아르도 베리소 감독을 해임한 것이었다. 베리소는 시간다의 후임으로 몇 달 전 취임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가이스카 가리타노가 다시 2군 감독에서 1군 감독으로 승격되어 팀을 이끌게 되었다. 12월 27일, 회장 선거가 열렸고, 아이토르 엘리세기가 새로운 회장으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