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다다즈미
1. 개요
혼다 다다즈미는 1586년 도토미국에서 태어난 인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다이묘로 임명되어 에노모토 번을 세웠다. 그는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도쿠가와 히데타다 진영의 선봉으로 참전하여 217개의 목을 베는 전공을 세웠으며, 이후 시모츠케국 미나가와 주변에서 영지를 추가로 받아 총 2만 8000석을 다스렸다. 1631년 사망했으며, 가신에게 살해당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의 묘는 도치기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들이 요절하여 사위인 혼다 마사모로가 가문을 이었다.
| 씨명 | 혼다 씨 |
|---|---|
| 이름 | 혼다 다다즈미 |
|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 출생 | 덴쇼 14년 (1586년) |
| 사망 | 간에이 8년 12월 13일 (1632년2월 3일) |
| 이명 | 대학 (통칭) |
| 계명 | 젠파쿠 |
| 묘소 | 도치기현도치기시오히라정 에노모토의 다이추지 |
| 관위 | 종5위하, 오스미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번 | 시모쓰케에노모토 번주 |
| 씨족 | 혼다 씨 |
| 부모 | 아버지: 혼다 마사노부 |
| 형제 | 마사즈미, 마사시게, 다다즈미 |
| 배우자 | 정실: 가타기리 가쓰모토의 양녀 (가타기리 사다타카의 딸) |
| 자녀 | 다다쓰구, 딸 (혼다 마사스에 정실), 딸 (하세가와 히로키요 실의 후 후루타 시게히로 실) |
| 양자 | 마사스에 |
| 직책 | 에노모토 번 번주 (혼다 야하치로가) |
|---|---|
| 임기 | 1605년 ~ 1631년 |
| 후임자 | 혼다 마사모로 |
| 대수 | 1 |
-
야하치로 혼다가 -
혼다 마사즈미
혼다 마사즈미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나 도쿠가와 히데타다 시대에 실각하여 유배된 인물이다. -
야하치로 혼다가 -
혼다 마사노부 (1538년)
혼다 마사노부(1538년)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 다이묘, 정치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활약하고 에도 막부 개창 후 막정의 실질적인 주도자가 되었다. -
1586년 출생 -
아사노 나가아키라
아사노 나가아키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섬긴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형의 사망 후 기이 기슈번을 상속받고 오사카 전투에서 공을 세워 아키 히로시마번의 번주가 되었다. -
1586년 출생 -
호소카와 다다토시
호소카와 다다토시는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아들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가문을 상속받아 고쿠라 번주를 거쳐 구마모토 번 초대 번주가 되었으며, 도쿠가와 가문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가문을 번성시켰다. -
암살된 사람 -
제임스 쿡
제임스 쿡은 18세기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군 장교로서, 세 차례의 태평양 탐험을 통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을 탐사하고 지도를 제작하는 등 지리적 발견에 기여했으며 남극권에 진입하고 하와이 제도를 기록했으나,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충돌로 사망했다. -
암살된 사람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2. 생애
혼다 다다즈미는 1586년(덴쇼 14년) 도토미국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다. 1605년(게이초 10년) 시모쓰케국 에노모토(현재의 도치기현도치기시오히라정 에노모토 주변)에 1만 석을 받아 다이묘가 되어 에노모토 번을 세웠다.
1615년(겐나 원년) 오사카 여름 전투의 덴노지・오카야마 전투에서 도쿠가와 히데타다 진영의 선봉을 맡았다. 모리 가쓰나가, 사나다 노부시게 등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진을 공격하고, 오노 하루후사가 히데타다 본진을 공격했을 때, 도도 다카토라, 이이 나오타카의 구원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덴노지에서 217개의 목을 베는 전공을 세우고, 시모쓰케국 미나가와 주변 1만 8000석을 추가로 받아 총 2만 8000석을 다스렸다.
1631년(간에이 8년) 12월 13일, 46세로 사망했다. 가신에게 살해당했다는 설이 있다. 다이추지에 묻혔으며, 묘는 도치기시 지정 문화재(고고 자료)이다. 아들 다다쓰구는 요절했고, 사위 양자 마사모로가 뒤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도쿠가와 가문 섬김
1586년(덴쇼 14년), 도토미국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종5위하에 서임되었다.
1605년(게이초 10년), 시모쓰케국 에노모토(현재의 도치기현도치기시오히라정 에노모토 주변)에 1만 석을 받아 다이묘로 임명되고, 에노모토 번을 세웠다.
1615년(게이초 20년/겐나 원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는 덴노지・오카야마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다다즈미는 오카야마에 진을 친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진영의 선봉을 마에다 도시나가, 가토 요시아키, 구로다 나가마사 등과 함께 맡았다. 성 쪽의 모리 가쓰나가, 사나다 노부시게가 덴노지 구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진에 맹공을 가했고, 오노 하루후사도 오카야마의 히데타다 본진을 공격했다. 오카야마구에서 도도 다카토라, 이이 나오타카가 구원군으로 달려온 덕분에 이에야스 본진은 위기를 벗어났다. 『간세이 중수 제씨보』에 따르면, 다다즈미는 덴노지 구에서 217개의 목을 베는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전투 후, 시모쓰케국 미나가와 주변에서 1만 8000석을 추가로 받아 총 2만 8000석이 되었다.
1631년(간에이 8년) 12월 13일, 다다즈미는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다즈미는 쓰가군 미즈시로 촌의 다이추지에 묻혔다. 다다즈미의 묘는 에노모토 다이추지에 현존하며, "혼다 오오스미노카미 다다즈미의 묘"로서 도치기시 지정 문화재(고고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친아들 다다쓰구가 있었지만 요절했고, 사위 양자인 마사모로가 뒤를 이었다. 마사모로는 가가 번가로・혼다 마사시게(혼다 마사노부의 차남)의 아들로, 다다즈미에게는 조카에 해당한다.
2.2. 에노모토 번주
1605년(게이초 10년), 시모쓰케국 에노모토(현재의 도치기현도치기시오히라정 에노모토 주변)에 1만 석을 받아 다이묘로 임명되고, 에노모토 번을 세웠다.
1615년(겐나 원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는 덴노지・오카야마 전투에 참가했다. 다다즈미는 오카야마에 진을 친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진의 선봉을 마에다 도시나가, 가토 요시아키, 구로다 나가마사 등과 함께 맡았다. 성 쪽의 모리 가쓰나가, 사나다 노부시게가 덴노지 구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진에 맹공을 가했고, 오노 하루후사도 오카야마의 히데타다 본진을 공격했다. 오카야마구에서 도도 다카토라, 이이 나오타카가 구원군으로 달려온 덕분에 이에야스 본진은 위기를 벗어났다. 『간세이 중수 제씨보』에 따르면, 다다즈미는 덴노지 구에서 217개의 목을 베는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전투 후, 시모쓰케국 미나가와 주변에서 1만 8000석을 추가로 받아 총 2만 8000석이 되었다.
2.3. 오사카 전투 참전과 전공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의 덴노지・오카야마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다다즈미는 오카야마에 진을 친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진영의 선봉을 마에다 도시나가, 가토 요시아키, 구로다 나가마사 등과 함께 맡았다. 성 쪽의 모리 가쓰나가, 사나다 노부시게가 덴노지 방면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진에 맹공을 가했고, 오노 하루후사 역시 오카야마의 히데타다 본진을 공격했다. 오카야마 방면에서 도도 다카토라, 이이 나오타카가 구원군으로 달려와 이에야스 본진은 위기를 벗어났다. 『간세이 중수 제씨보』에 따르면, 다다즈미는 덴노지 방면에서 217명의 목을 베는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전투 후, 시모쓰케국 미나가와 주변에서 1만 8000석을 추가로 받아 총 2만 8000석을 소유하게 되었다.
2.4. 죽음
간에이 8년(1631년) 12월 13일, 다다즈미는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가신에게 살해당했다는 전승이 있으며, 『디지털판 일본인명대사전+Plus』는 이 설을 채택했다. 다다즈미는 쓰가군 미즈시로 촌의 다이추지에 묻혔으며, 묘는 에노모토 다이추지에 현존한다. "혼다 오오스미노카미 다다즈미의 묘"로서 도치기시 지정 문화재(고고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친아들 다다쓰구는 요절했고, 사위 양자인 마사모로가 뒤를 이었다. 마사모로는 가가 번가로・혼다 마사시게(혼다 마사노부의 차남)의 아들로, 다다즈미에게는 조카에 해당한다.
2.5. 가독 상속
혼다 다다쓰구(친아들)가 요절하여, 사위이자 양자인 혼다 마사모로가 뒤를 이었다. 마사모로는 가가 번가로・혼다 마사시게(혼다 마사노부의 차남)의 아들로, 혼다 다다즈미에게는 조카에 해당한다.
3. 인물
혼다 다다즈미는 호걸로 명성을 떨쳤으나, 성격이 매우 급했다. 가신이 사소한 실수를 해도 용서하지 않고 바로 처형했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에도에서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던 중, 구리하시(현재의 사이타마현 구키시 구리하시 지구)에서 가신에게 찔려 살해당했다고 전해진다.
번한보에는 다다즈미의 가문이 불의의 재앙으로 끊어졌으며, 다다즈미가 "스스로 낭당을 주살하려다 실수로 죽었다"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