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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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효명옹주는 조선 인조의 딸로, 1638년에 태어나 1647년 효명옹주에 봉해졌다. 어머니 귀인 조씨는 권력가 김자점의 손자와 옹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사주를 조작했으며, 옹주는 이복 오라비 인평대군 부부와의 갈등을 겪었다. 효종 즉위 후, 어머니 조씨의 저주 사건에 연루되어 옹주 또한 혐의를 받아 유배되었으며, 1700년에 사망했다.

효명옹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효명옹주
한글효명옹주
한자孝明翁主
로마자 표기Hyomyeong ongju
신분
작위옹주
왕조조선
재위해당사항 없음
가문전주 이씨 (출생 시)
안동 김씨 (결혼 후)
가족 관계
아버지인조
어머니귀인 조씨
배우자김세룡
자녀없음
생애
출생1638년
사망1700년 9월 (향년 62-63세)
기타 정보
사망 당시 나이62~63세
혼인1647년
사별1651년, 김세룡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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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효명옹주는 인조의 유일한 딸로, 아버지 인조와 어머니 귀인 조씨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했다. 1647년 효명옹주에 봉해졌고, 김자점의 손자 김세룡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인조 사후, 어머니 귀인 조씨가 장렬왕후 등을 주술했다는 혐의로 사약을 받았고, 남편 김세룡도 연좌되어 처형당했다. 효명옹주는 옹주 작위를 박탈당하고 유형에 처해져 1700년 64세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2.1. 어린 시절

인조의 유일한 딸로, 아버지 인조의 총애가 컸다. 어머니는 귀인 조씨이다. 1647년 효명옹주(孝明翁主)에 봉해졌다.

2.2. 혼인

인조의 유일한 딸로, 아버지의 총애가 컸다. 1647년(인조 25년) 효명옹주(孝明翁主)에 봉해졌다. 같은 해, 귀인 조씨는 딸을 세도가인 김자점의 손자 김세룡과 혼인시키기 위해 김자점의 동의 하에 김세룡의 사주팔자를 조작했고, 그 결과 김세룡은 옹주의 부마로 선발되었다. 옹주의 어머니인 조씨는 인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에 혼인에 쓰인 옷과 물건이 무척 호화로웠다.

혼인 후에도 2년간 궁에서 살았으며 1649년에야 비로소 출궁하여 사가에서 생활했다.

2.3. 권력 투쟁과 몰락

인조의 유일한 딸로, 아버지의 총애가 컸다. 어머니는 귀인 조씨이다. 1647년 효명옹주(孝明翁主)에 봉해졌다.

같은 해, 인조는 옹주의 신랑감을 간택하게 했는데, 귀인 조씨는 딸을 세도가인 김자점의 손자 김세룡과 혼인시키기 위해 김자점의 동의 하에 김세룡의 사주팔자를 조작했고, 그 결과 김세룡은 옹주의 부마로 선발되었다. 옹주의 어머니인 조씨는 인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에 혼인에 쓰인 옷과 물건이 무척 호화로웠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효명옹주는 자기중심적이고 행동이 방자했는데, 궐 안에 잔치가 벌어지자 이복 오라비 인평대군의 처인 복천부부인 오씨와 누가 윗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 이때 인조는 옹주의 편을 들어 딸이 윗자리에 앉도록 했는데, 이 일 이후로 옹주와 인평대군 부부는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옹주의 혼례 때 인평대군은 저주의 뜻이 담긴 베개를 들여보내기도 했다. 또 옹주는 혼인 후에도 2년간 궁에서 살았으며 1649년에야 비로소 출궁하여 사가에서 생활했다.

인조 사후 1651년 귀인 조씨장렬왕후와 효종을 저주한 일에 관해 여종들을 추국할 때 효명옹주가 옷소매 속에다 사람의 뼈가루를 담아서 대궐과 이복 오라비인 인평대군의 집에다 뿌리고 흉한 물건을 궁궐 주변에 묻었다는 자백이 나왔다. 이에 효명옹주와 남편 김세룡을 국문하라고 요청했으나 효종은 김세룡만 국문하였다. 남편 김세룡, 시조부 김자점이 사형당하자 작위를 박탈당하고 김처(김세룡의 처)라 불리게 됐다. 이후 통천으로 유배되었으며, 이듬해인 1652년 통천의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이천으로 옮겨졌다. 1655년에는 효종의 명으로 유배지를 교동으로 옮겨 동생들인 숭선군, 낙선군과 함께 살게 하였고, 마침내 1658년에 석방하였다. 옹주는 평생을 감시 속에 살다가 1700년(숙종 26년) 64세의 나이로 죽었다.

2.4. 유배와 죽음

1651년 조씨가 장렬왕후와 효종을 저주한 일에 관해 여종들을 추국할 때 효명옹주가 옷소매 속에다 사람의 뼈가루를 담아서 대궐과 이복오라비인 인평대군의 집에다 뿌리고 흉한 물건을 궁궐 주변에 묻었다는 자백이 나왔다. 이에 효명옹주와 남편 김세룡을 국문하라고 요청했으나 효종은 김세룡만 국문하였다. 남편 김세룡, 시조부 김자점이 사형당하자 작위를 박탈당하고 김처(김세룡의 처)라 불리게 됐다. 이후 통천으로 유배되었으며, 이듬해인 1652년 통천의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이천으로 옮겨졌다. 1655년에는 효종의 명으로 유배지를 교동으로 옮겨 동생들인 숭선군, 낙선군과 함께 살게 하였고, 마침내 1658년에 석방되었다. 옹주는 평생을 감시 속에 살다가 1700년(숙종 26년) 64세의 나이로 죽었다.

3. 가족 관계

효명옹주는 조선의 왕족으로, 전주 이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선 제16대 왕 인조이며, 어머니는 폐귀인 조씨이다. 남동생으로는 숭선군낙선군이 있었다.

효명옹주는 (구)안동 김씨 가문으로 시집갔다. 시아버지는 곡성현감 김식이며, 부마(남편)는 낙성위 김세룡이다.

3.1. 왕가 전주 이씨

* 조부 : 추존 원종 (1580~1619)
* 조모 : 추존 인헌왕후 능성 구씨 (1578~1626)
* 아버지 : 제16대 인조 (1595~1649, 재위 1623~1649)
* 외조부 :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조기 (1574~미상)
* 외조모 : 정부인 청주 한씨
* 어머니 : 폐 귀인 순창 조씨 (미상~1652)
* 동생 : 숭선군 징 (1639~1690)
* 동생 : 낙선군 숙 (1641~1695)

3.2. 시가 (구)안동 김씨

* 시조부: 의정부 영의정 낙흥부원군 김자점(1588~1651)
* 시조모: 미상
* 시아버지: 곡성현감 김식(1620년~1651)
* 시어머니: 미상
* 부마: 낙성위 김세룡(미상~1651)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孝明翁主중국어를 다룬 작품은 다음과 같다.

*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 (JTBC, 2013년 배우: 이채미이영은)
** 이채미는 어머니인 폐귀인 조씨의 어린 시절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