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군
1. 개요
낙선군은 조선 인조와 귀인 조씨의 차남으로, 효종 대에 어머니 귀인 조씨의 저주 사건 연루로 유배되었으나 후에 관작을 회복하고 종친으로 활동했다. 1641년에 태어나 1695년에 사망했으며, 묘는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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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의 자녀 -
숭선군
숭선군은 조선 인조의 아들로, 1639년에 태어나 숭선군에 봉해졌으며, 귀인 조씨의 역모 혐의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뒤 보사원종공신에 책록되었고, 효경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조선 인조의 자녀 -
소현세자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서양 문물을 접하고 조선의 개혁을 시도하려 했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으며, 그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과 부인 및 아들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조선 정치사의 어두운 단면으로 남아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의 왕자 -
의친왕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자 순종의 이복 동생인 의친왕은 대한제국의 황족으로서 독립운동에 투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광복 후에는 남북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한 독립운동가이다. -
조선의 왕자 -
의민태자
의민태자는 고종과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난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로, 영친왕 책봉 후 황태자가 되었으나 일본 유학 및 군 복무, 일본 황족과의 정략결혼, 광복 후 국적 미인정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다 귀국 후 영원에 안장되었으며 사후 의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1641년(인조 19년) 11월 7일 축시에 인조와 후궁 귀인 조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효명옹주와 숭선군의 친동생이며, 소현세자와 효종과는 이복 형제간이다.
낙선군의 어머니 귀인 조씨는 숙원으로 입궁하였다가 몇 번의 진급을 거쳐 종1품 귀인(貴人)에 올랐다. 그러나 조씨는 1651년(효종 2년) 저주 사건을 일으킨 것이 밝혀져 그 해 음력 12월 14일 사사되었다. 봉사 증 의정부좌찬성 김득원(金得元)의 딸과 가례를 올렸다.
2.1. 출생과 왕자 시절
낙선군은 1641년(인조 19년) 인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648년(인조 26년) 음력 12월 19일, 8살 때 정식으로 낙선군(樂善君)에 봉해졌다. 1649년(인조 27년) 아버지 인조가 사망하였고, 이복 형 효종은 숭선군과 낙선군에게 각각 노비 150구를 하사하였다.
1651년(효종 2년) 음력 11월 23일, 생모 귀인 조씨가 저주를 한 사실이 밝혀져 음력 12월 14일 사사되었다. 귀인 조씨의 음모에 가담했던 조성로가 고문 끝에 자복하면서, 귀인 조씨가 "숭선군과 낙선군 중 누가 더 천명(天命)이 긴가"라고 물어본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정태화와 김육 등이 숭선군과 낙선군의 유배를 청하였으나, 효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이후 숭선군과 낙선군은 직접적인 죄가 없다는 이유로 선처를 요청했지만, 결국 작위가 삭탈되어 선원록에 이름만 기록되었다.
1652년(효종 3년) 음력 9월 14일, 숭선군과 낙선군은 소현세자의 3남 경안군이 위배되어 있던 교동에 함께 위배되었다. 효종은 두 형제에게 봄옷, 이불 등을 보내고, 병이 생기면 내의를 보내 치료하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1655년(효종 6년) 음력 10월 18일에는 따로 위배되어 있던 누나 효명옹주도 교동으로 옮겨져 세 남매가 함께 살게 되었다.
1656년(효종 7년) 음력 윤 5월 14일, 효종은 두 형제의 소환을 명하고 관작 회복을 시도하였다. 처음에는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1659년(효종 10년) 음력 1월 16일 최종적으로 관작이 회복되었다. 효명옹주 역시 1658년(효종 9년) 서울로 소환되었다.
이후 낙선군은 편복 차림으로 궁궐에 출입했다가 탄핵을 받았으나 현종의 배려로 무사했다. 현종이 온양온천으로 행차할 때 동행하기도 하고, 1670년(현종 11년) 음력 3월 9일에는 종친 자격으로 왕세자(훗날의 숙종)의 관례에 참석하였다. 1673년(현종 14년)에는 행중추부판사에 올랐다.
2.2. 유배 생활과 관작 회복
1652년(효종 3년) 음력 9월 14일 소현세자의 아들(훗날의 경안군)이 위배되어 있던 교동에 함께 위배되었다. 이후 효종은 낙선군 형제에게 봄옷 이나 이불 등을 보내고, 병이 생기면 내의를 보내 치료하였다. 1655년(효종 6년) 음력 10월 18일에는 효명옹주도 교동으로 옮겨와 함께 살았다.
1656년(효종 7년) 음력 윤 5월 14일 효종은 낙선군에 대해 소환을 명하고, 여러 차례 관작 회복을 시도하였다. 처음에는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1659년(효종 10년) 음력 1월 16일 최종적으로 관작이 회복되었다.
2.3. 종친 활동과 사망
낙선군은 현종, 숙종 대에 종친으로 활동하며, 왕실의 관례 등 행사에 참여하였다. 1673년 행중추부판사에 올랐다. 1695년(숙종 21년) 음력 3월 14일 향년 5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낙선군이 죽자 숙종은 직접 희정당에 나가 곡을 하였으며, 거마(車馬)를 부의하고 승지를 통해 조문하였다. 낙선군의 신위는 1772년(영조 48년) 음력 8월 28일 수진궁에 봉안되었다.
낙선군의 장지는 양주 청송면으로 정해졌는데,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이다. 부인 동원군부인 김씨와 합장되었으며, 1986년 4월 10일 연천군 향토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3. 가족 관계
낙선군의 아버지는 조선 인조이고, 어머니는 귀인 조씨이다. 형제로는 숭선군 징과 효명옹주가 있다. 부인은 동원군부인 강릉 김씨이다. 의창군의 손자인 임양군 이환을 양자로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