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사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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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안 사발라는 아르헨티나의 육상 선수로,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31년 30k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1932년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 육상 선수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20세 10개월의 나이로 올림픽 남자 마라톤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10,000m에서 6위를, 마라톤에서 기권했다. 1936년 올림픽 개막식에서 아르헨티나 기수를 맡았으며, 1983년 아르헨티나 세기 최고의 육상 선수로 선정되었다.

후안 사발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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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의 사발라
전체 이름후안 카를로스 사발라
별칭엘 뇨키 (El Ñandú Criollo)
국적아르헨티나
출생일1911년 10월 11일
출생지로사리오, 산타페 주, 아르헨티나
사망일1983년 1월 24일
사망지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165 cm
몸무게55 kg
선수 정보
스포츠육상
종목5000m, 10000m, 마라톤
최고 기록5000 m – 14분 55.8초 (1932년)
10000 m – 30분 56.2초 (1936년)
마라톤 – 2시간 31분 36초 (1932년)
메달 기록
올림픽올림픽 게임
금메달1932 로스앤젤레스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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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및 선수 경력

후안 사발라는 로사리오에서 태어나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다. 1931년 10월 말 처음 마라톤에 도전한 후, 불과 10일 만에 30km 부문에서 1시간 42분 30.4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1936년 하계 올림픽 전에는 20km에서 1시간 4분 0초 2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며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사발라는 1932년 대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20세 10개월의 나이로 2022년 현재까지도 올림픽 남자 마라톤 최연소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1936년 대회에서는 10,000m 6위, 마라톤은 기권했다.

1983년, 사발라는 아르헨티나 세기 최고의 육상 선수로 선정되었다.

2.1. 초기 생애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후안 사발라는 축구농구를 했다. 1931년 10월 말에 처음으로 마라톤을 달린 사발라는 10일 후 30 km 부문에서 1시간 42분 30.4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2.2. 선수 경력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후안 사발라는 축구농구를 했다. 1931년 10월 말에 처음으로 마라톤을 달린 사발라는 10일 후 30km 부문에서 1시간 42분 30.4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1936년 하계 올림픽 전에는 20km에서 1시간 4분 0초 2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사발라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였다. 1932년 대회에서는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1936년 대회 10,000m에서는 6위를 기록했으며, 마라톤은 기권했다.

1983년, 아르헨티나의 세기 최고의 육상 선수로 선정되었다.

2.2.1.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사발라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에서 거의 모든 구간을 선두 그룹에서 달렸다. 4km를 남겨두고 선두로 치고 나가 영국의 샘 페리스를 19초 차이로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20세 10개월의 금메달 획득은 2022년 현재까지도 올림픽 남자 마라톤 최연소 기록이다.

2.2.2.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사발라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이어 1936년 하계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10,000m 경기에서 6위를 기록했다. 마라톤 경기에서는 초반 선두를 유지했으나, 28km 지점에서 넘어졌고, 33km 지점에서 경기를 포기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사발라에게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대회 1년 전부터 독일 현지에서 훈련을 진행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버 페이스와 고온으로 인해 페이스가 늦춰졌고, 결국 29km 지점에서 손기정(일본), 어니스트 하퍼(영국)에게 선두를 내주었다. 32km 지점에서 4위로 처진 사발라는 결국 쓰러져 기권했다.

3.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후안 사발라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손기정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194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델포 카브레라가 금메달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