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촉 (오호 십육국)
1. 개요
후촉은 405년 초종이 성도왕을 칭하며 건국한 오호 십육국 시대의 국가이다. 동진의 강릉 공격 명령을 거부한 촉군 반란으로 건국되었으며, 건국 초기 동진의 공격에 취약하여 후진에 번속하며 지원을 받았다. 413년 동진의 공격으로 멸망했으며, 초종은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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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십육국 시대의 나라 -
적위 (오호 십육국)
적위는 5호 16국 시대에 정령족 출신 적료가 건국하여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동진, 후연과 대립하다가 모용수의 공격으로 멸망한 나라이다. -
오호 십육국 시대의 나라 -
구지
3세기부터 5세기 말 중국 간쑤성 동남부에서 저족이 세운 구지는 양등이 시작하여 전진에 멸망 후 양정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남북조 시대 혼란 속에서 여러 세력에 복속 및 분열되어 무도, 음평, 무흥 등으로 나뉘어 명맥을 유지하다 수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2. 역사
의희 원년(405년), 동진의 강릉 공격 명령을 거부한 촉 지역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초종을 지도자로 추대하고 성도를 점령했다. 초종은 스스로 성도왕(成都王)을 자칭하며 후촉을 세웠다。
건국 초기 후촉은 동진의 영향력이 약화된 틈을 타 세워졌기에 기반이 불안정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407년 후진에 스스로 번속(藩屬)을 자처하며 의존했고, 408년 동진의 공격을 후진의 도움으로 막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413년, 동진의 유유가 보낸 장수 주영석(朱齡石)의 공격으로 후촉군은 패배하고 성도가 함락되었다. 결국 초종은 자결하였고 후촉은 멸망했다.
2.1. 건국
의희 원년(405년), 동진은 촉 지역 군대에 강릉 공격을 명령했으나, 원정을 원하지 않던 군대는 이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초종을 지도자로 추대하여 성도를 공격해 함락시켰고, 초종은 스스로 성도왕(成都王)을 자칭하며 후촉을 건국했다。
후촉의 건국은 동진의 장강 상류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된 혼란한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국가의 기반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고자 407년, 후진에 사신을 보내 스스로를 번속(藩屬)이라 칭하며 후진에 종속하는 외교 정책을 펼쳤다. 이를 바탕으로 408년 동진의 공격을 받았을 때 후진의 지원을 받아 동진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2.2. 후진과의 관계
후촉은 동진의 장강 상류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된 시기에 건국되어 기반이 불안정했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고자 407년에는 후진에 사신을 보내 스스로를 번속(藩屬)이라 칭하며 종속적인 외교 자세를 취했다. 이 덕분에 408년 동진의 공격을 받았을 때 후진의 지원을 받아 동진 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후진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후촉의 국력은 근본적으로 강화되지 못했다. 결국 413년, 동진이 다시 공격해오자 유유의 부장 주영석(朱齡石)이 이끄는 군대에 패배하고 성도가 함락되었다. 초종은 자결하였고 후촉은 멸망했다.
2.3. 멸망
413년, 동진은 재차 후촉 공격을 감행했다. 유유의 부장 주령석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후촉군은 완전히 패배했으며, 성도 또한 함락되었다. 초종은 자결했고, 후촉은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