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영국 총선
1. 개요
1955년 영국 총선은 앤서니 이든이 이끄는 보수당이 승리하여 집권 연장을 한 선거이다. 보수당은 윈스턴 처칠의 뒤를 이어 긍정적인 분위기를 활용하여 배급제 종식과 경제 성과를 내세웠다. 노동당은 당내 갈등과 새로운 정책 부재로 인해 지지율이 하락했다. 선거 결과 보수당은 다수당 지위를 강화했고, 자유당은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북아일랜드의 신 페인이 2석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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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선거 -
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1955년 2월 27일에 실시되었으며, 일본민주당이 제1당이 되고 자유당과의 합당을 통해 자유민주당을 결성하여 보수 양당 체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
1955년 5월 -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은 1955년 체결되어 제2차 세계 대전 후 연합국 점령 하에 있던 오스트리아의 완전한 독립과 주권 회복, 독일과의 재통합 금지, 군사력 제한, 영구 중립 등을 규정하여 자유롭고 민주적인 오스트리아 재건의 기초를 마련한 조약이다. -
1955년 5월 -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제1차 대만 해협 위기는 1954년부터 1955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 통일을 목표로 금문도와 마쭈 열도에 포격을 가하면서 중화민국과 충돌한 군사적, 정치적 긴장 상황으로, 미국의 개입과 중국의 협상으로 이어졌으며 양안 관계와 중국의 핵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
1965년 5월 -
1965년 칸 영화제
1965년 칸 영화제는 1965년 5월 프랑스 칸에서 개최되었으며, 리처드 레스터의 《요령 ...그리고 그것을 얻는 방법》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
1965년 5월 -
1965년 5월 30일 일식
1965년 5월 30일 일식은 남태평양, 페루 남부, 브라질 남부, 아프리카 남부 등에서 관측된 개기 일식으로, 사로스 주기 127 등 여러 천문학적 주기와 연관되어 연구되었으며, 뉴질랜드 북섬 등에서 여러 국가의 관측대에 의해 관측되었다.
2. 선거 배경
1955년 영국 총선은 새로운 선거구 경계를 기준으로 치러졌으며, 의석 수는 1951년 선거 당시 625석에서 5석이 추가되었다. 보수당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집권하여 이전 노동당 정부가 만든 혼합경제와 복지 국가를 수용함으로써 인기를 높였다. 또한 배급제를 종식하고 대외 무역을 개선했으며, 공공 주택 건설에서도 노동당을 앞지르는 등 경제 정책으로 칭찬을 받았다. 선거 전에 러브 버틀러 재무장관이 발표한 "관대한 예산" 또한 보수당의 인기를 높였다.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끌던 노동당은 20년간의 지도 체제 아래 좌파(비바니스트들)와 우파(게이츠켈리스트들) 사이의 내분으로 인해 지지율이 꾸준히 감소했고, 불분명한 선거 메시지를 내놓았다. 노동당은 여성의 동일 임금, 철강 산업과 도로 운송의 국유화, 포괄적 중등 교육 등을 약속했지만, 새로운 정책은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윈스턴 처칠의 은퇴 후 몇 주 전에 보수당 대표가 된 앤서니 이든은 취임하자마자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총선을 실시했다. 보수당은 식량 배급제 종식과 1953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으로 만들어진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용하고자 했다. 의회는 5월 6일에 해산되었다.
자유당은 지난 선거보다 득표율이 약간 증가했지만, 다시 6석만을 차지했다. 이 6석 중 5석은 지역 차원의 합의에 따라 보수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는데, 이는 득표 분산으로 인해 노동당에 의석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보수당과 노동당 후보 모두를 물리치고 승리한 유일한 자유당 후보는 오크니 셰틀랜드 지역구의 국회의원 조 그리몬드였다.
이번 총선은 텔레비전이 처음으로 선거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례로 기록된다.
2.1. 정치적 상황
1951년 총선 이후 영국은 배급제 종료, 대외 무역 개선, 공공 주택 건설 등 경제 정책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보였다. 러브 버틀러 재무장관의 "관대한 예산" 발표도 보수당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윈스턴 처칠의 뒤를 이어 1955년 4월 보수당 대표 겸 총리가 된 앤서니 이든은 오랫동안 처칠의 후계자로 여겨져 왔으며, 취임 직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보수당은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등으로 조성된 긍정적인 분위기를 활용하고자 했다.
반면,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은 20년간 집권하며 당내 좌우 갈등이 심화된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명확한 선거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책 제시보다는 기존 정책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자유당은 클레멘트 데이비스 대표 체제하에 또다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보수당과의 후보 단일화 없이는 노동당에 의석을 뺏길 가능성이 높아, 일부 지역에서는 보수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 자유당 후보 중 유일하게 조 그리몬드만이 보수당과 노동당 후보 모두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이번 총선은 텔레비전이 선거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며, 텔레비전 방송 기록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영국 총선이다.
2.2. 주요 쟁점
보수당은 배급제 종식, 대외 무역 개선, 공공 주택 건설 확대를 주요 성과로 내세웠다. 러브 버틀러 재무장관의 "관대한 예산"도 보수당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노동당은 여성의 동일 임금, 철강 및 도로 운송 국유화 등을 공약했지만, 새로운 정책 제시는 부족했다.
보수당은 노동당 정부가 만든 혼합경제와 복지 국가를 수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노동당은 포괄적 중등 교육과 산업 민주주의 확대를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정책 비전은 부족했다.
3. 선거 결과
1955년 영국 총선 결과는 보수당에 큰 승리를 안겨주었다. 보수당은 1951년 선거(625석)보다 5석 늘어난 630석 중 345석을 확보하여, 전후 총선에서 단일 정당으로는 최다 의석을 기록했다. 이는 1867년 개혁법 통과 이후 재임 중 의회 다수당 지위를 강화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노동당은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끈 마지막 총선에서 의석수가 감소했다. 당내 좌우 갈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선거 메시지가 불분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유당은 득표율이 소폭 상승했으나 6석에 그쳤고, 북아일랜드에서는 신 페인이 1918년 이후 처음으로 2석을 차지했다.
이번 총선은 텔레비전이 선거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최초의 선거로 기록되었으며, 관련 방송 기록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영국 총선이다.
총 투표수는 26,759,729표, 투표율은 76.8%였다.
3.2. 분석
1955년 영국 총선은 보수당에게 큰 승리였다. 전후 총선에서 단일 정당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으며, 1867년 개혁법 통과 이후 재임 기간 동안 의회 다수당 지위를 강화한 최초의 정당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집권한 보수당은 이전 노동당 정부가 만든 혼합경제와 복지 국가를 수용하고, 배급제를 종식하고 대외 무역을 개선했으며, 공공 주택 건설에서 노동당을 앞지르는 등 경제 정책으로 칭찬을 받았다.
노동당은 클레멘트 애틀리의 20년간의 지도력 아래 좌파(비바니스트)와 우파(게이츠켈리스트) 사이의 내분으로 인해 지지율이 꾸준히 하락했고, 불분명한 선거 메시지가 나왔다. 노동당은 여성의 동일 임금, 철강 산업과 도로 운송의 국유화, 포괄적 중등 교육, 그리고 비바니스트들이 요구한 더 큰 산업 민주주의와 국유화된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에 대한 모호한 보장을 약속했지만, 그 외에는 새로운 정책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자유당은 지난 선거보다 득표율이 약간 증가했지만, 다시 6석만을 차지하며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6석 중 5석은 지역 차원의 합의에 따라 보수당 후보가 없었는데, 이는 득표 분산으로 인해 노동당에 의석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보수당과 노동당 후보 모두를 물리치고 승리한 유일한 자유당 후보는 오크니 셰틀랜드 지역구의 국회의원 조 그리몬드였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신 페인이 1918년 이후 처음으로 영국 총선에서 2석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4. 선거 이후
앤서니 이든은 1955년 영국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직을 유지하고 보수당 정부를 이끌었다. 이번 총선은 텔레비전이 선거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첫 번째 선거로 기록되었으며, BBC 의회에서 선거일 50주년과 60주년을 맞아 재방송되기도 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보수당이 처음으로 집권하여 혼합경제와 복지 국가를 수용하고 배급제를 종식하는 등 경제 정책으로 칭찬을 받으면서 전후 복지 국가 모델과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4.1. 정치적 영향
앤서니 이든은 총리직을 유지하며 보수당 정부를 이끌었다.
4.2. 사회적 영향
1955년 영국 총선은 텔레비전이 선거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첫 번째 선거로 기록되었다. 1950년과 1951년 선거가 텔레비전으로 생방송되었지만 영상은 녹화되지 않았다. 반면, 1955년 총선은 텔레비전 방송 기록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영국 총선이다. 리처드 딤블비가 진행한 방송분 중 3시간 분량이 보존되어, 선거일 50주년과 60주년을 맞아 BBC 의회에서 재방송되었다.
이 선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보수당이 처음으로 집권하여 이전 노동당 정부가 만든 혼합경제와 복지 국가를 수용하고, 배급제를 종식하는 등 경제 정책으로 칭찬을 받으면서 전후 복지 국가 모델과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