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1. 개요
1964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의 선수단이다. 대회 직전까지 선수단 규모를 결정하는 데 혼선이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선수 9명과 임원 2명으로 구성된 11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선수단은 스피드 스케이팅, 알파인 스키, 크로스컨트리 종목에 출전했으며, 재일 교포 출신 스키 선수 조영석이 추가로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실제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 NOC | KOR |
|---|---|
| NOC 명칭 | 대한올림픽위원회 |
| 대회 | 동계 올림픽 |
| 연도 | 1964 |
| 위치 | 인스브루크 |
| 참가 선수 | 7 |
| 종목 | 3 |
| 기수 | 최영배 |
| 임원 | 4 |
| 웹사이트 | 대한체육회 공식 웹사이트 (한국어/영어) |
| 금메달 | 0 |
|---|---|
| 은메달 | 0 |
| 동메달 | 0 |
| 동계 올림픽 참가 횟수 | 자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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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대한민국 -
한일회담
한일회담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1951년부터 1965년까지 국교 정상화를 위해 진행한 회담으로,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이어졌으나 과거사 문제, 재산 청구권, 재일교포 지위, 어업 문제, 문화재 반환 등 다양한 쟁점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
1964년 대한민국 -
인민혁명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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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동계 올림픽 선수단 -
1964년 동계 올림픽 몽골 선수단
1964년 동계 올림픽에 몽골 선수단은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 남녀 선수들을 파견하여 여러 거리의 경기에서 경쟁하였다. -
1964년 동계 올림픽 선수단 -
1964년 동계 올림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수단
1964년 동계 올림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 참가하여, 한필화가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
1964년 동계 올림픽에 관한 -
1964년 동계 올림픽 루지
1964년 동계 올림픽 루지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의 루지 종목 경기로, 총 3개의 세부 종목으로 진행되었으며 독일 연합 선수단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남자 1인승에서는 독일 연합 선수단이 메달을 모두 석권했다. -
1964년 동계 올림픽에 관한 -
1964년 동계 올림픽 몽골 선수단
1964년 동계 올림픽에 몽골 선수단은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 남녀 선수들을 파견하여 여러 거리의 경기에서 경쟁하였다.
2. 배경
선수단은 1964년 1월 23일 항공편을 통해 일본으로 향했고, 1월 27일에는 열차편을 통해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현지에 도착했다. 당시 서독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과 현지 유학생 등이 대한민국 선수단을 맞이하였다. 이후 선수단은 선수촌에 입촌하였는데, 대한민국 선수단은 제1동 8층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수단은 4층에 입촌하였다고 전한다.
2.1. 선수단 규모 결정 과정
지난 대회와는 달리, 이번에는 대회를 불과 보름 앞두고도 선수단 규모가 결정되지 못하는 등 혼전이 있었다. 처음에는 20명 규모로 선수단을 계획했으나, 1964년 1월 9일 선수 9명, 임원 9명, 총 18명을 파견하기로 책정되었다.
하지만 국내 외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의견으로 임원 2명을 줄였고, 1월 15일에는 정부 측에서 선수 2명, 임원 3명, 총 5명을 다시 줄여 11명으로 선발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대한올림픽위원회 측은 "수확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북괴(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올림픽에 처음 나오는 기회라는 점에서 보내야 한다"며 15명으로 재요구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정부 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져 11명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하게 되었다.
1964년 1월 20일, 대한올림픽위원회는 인스부르크 선수단에 재일교포 출신 스키 선수인 조영석 선수를 추가로 합류시킨다고 발표하였으나, 어째서인지 본 경기에는 출전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2.2. 선수단 파견 및 현지 도착
지난 대회와는 달리 이번에는 대회를 불과 보름 앞두고도 선수단 규모에 대해 결정되지 못하는 등 혼전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상 처음으로 20명 규모로 계획되던 선수단 규모는 1964년 1월 9일 선수 9명, 임원 9명에 총 18명을 파견하기로 책정되었다.
하지만 국내 외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의견으로 임원 2명을 줄였고, 1월 15일에는 정부 측에서 선수 2명에 임원 3명, 총 5명을 다시 줄여 11명으로 선발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대한올림픽위원회 측은 "수확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북괴(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올림픽에 처음 나오는 기회라는 점에서 보내야 한다"며 15명으로 재요구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정부 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져 11명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하게 되었다.
1964년 1월 20일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인스부르크 선수단에 재일교포 출신 스키 선수인 조영석 선수를 추가로 합류시킨다고 발표하였으나, 어째서인지 본 경기에는 출전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선수단은 1964년 1월 23일 항공편을 통해 일본으로 향했고, 이후 1월 27일에는 열차편을 통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현지에 도착했다. 당시 서독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과 현지 유학생 등이 대한민국 선수단을 맞이하였다. 이후 이들은 선수촌에 입촌하였는데, 대한민국 선수단은 제1동 8층에 입촌하는 한편, 4층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수단이 입촌하였다고 전한다.
3. 종목별 성적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에 스피드스케이팅,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세 종목에 선수단을 파견했다.
3.1. 스피드스케이팅
1964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는 남자부에 최영배, 최남윤이, 여자부에는 김혜숙, 김귀진이 출전하였다.
3.1.1. 남자
| 선수 | 종목 | 기록 | 순위 |
|---|---|---|---|
| 최영배 | 500m | 44.8 | 42 |
| 1500m | 2:20.3 | 40 | |
| 5000m | 8:03.4 | 17 | |
| 10000m | 17:31.3 | 31 | |
| 최남윤 | 1500m | 2:30.2 | 52 |
| 5000m | 8:28.0 | 36 |
3.1.2. 여자
| 선수 | 종목 | 기록 | 순위 |
|---|---|---|---|
| 김혜숙 | 500m | 49.6 | 20 |
| 1000m | 1:45.1 | 26 | |
| 김귀진 | 1500m | 2:39.7 | 27 |
| 3000m | 5:41.6 | 19 |
3.2. 알파인스키
1964년 동계 올림픽 알파인스키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남자 선수 조정수와 김동복이 대회전에 출전하였으나, 김동복은 예선에서 탈락했고, 조정수는 2분 55.74초의 기록으로 77위를 기록했다.
3.2.1. 남자
| 선수 | 세부 종목 | 기록 | 순위 |
|---|---|---|---|
| 조정수 | 대회전 | 2:55.74 | 77 |
| 김동복 | 대회전 | 예선 탈락 | - |
3.3. 크로스컨트리
1964년 동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에는 양용옥 한 명이 출전하였다. 양용옥은 15km에서 예선 탈락했고, 30km에서 66위, 50km에서는 완주하지 못했다.
3.3.1. 남자
| 선수 | 종목 | 기록 | 순위 |
|---|---|---|---|
| 양용옥 | 15km | 예선 탈락 | - |
| 30km | 2:28:54.7 | 66 | |
| 50km | 완주 못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