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 개요
1971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은 1971년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의 첫 번째 대회이다.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가 결승전에서 알리야트 알쇼르타가 기권하여 부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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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
1971년 프랑스 뮈니시팔 선거
1971년 프랑스 뮈니시팔 선거는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 임기 중 치러졌으며, 좌파 진영의 약진과 집권 여당의 어려움을 보여주며 프랑스 정치 지형 변화를 예고했다. -
1971년 3월 -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은 1971년 동파키스탄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벌인 무력 투쟁으로, 파키스탄군의 탄압과 인도군의 개입 끝에 파키스탄군의 항복으로 종결되어 방글라데시가 독립했다. -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 시즌 -
1969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69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은 10개국에서 대표팀이 참가하여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 FC가 우승을 차지한 아시아 축구 클럽 대항전이다. -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 시즌 -
1967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67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은 AFC가 주최한 첫 번째 대회로, 7개국 클럽 팀들이 참가하여 하포엘 텔아비브 FC가 셀랑고르 FA를 꺾고 우승한 국제 클럽 축구 대회였다. -
1971년 4월 -
1971년 AFC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1971년 AFC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는 일본에서 16개국이 참가하여 이스라엘이 대한민국을 꺾고 우승한 대회이다. -
1971년 4월 -
제43회 아카데미상
제4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1971년 2월 23일에 열렸으며,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이 작품상 등을 포함해 7개 부문을 수상했고, 릴리언 기시, 오손 웰즈 등에게 공로상이 수여되었다.
2. 참가팀
1971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는 각국 리그 우승팀들이 참가했다. 자세한 내용은 참가팀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2.1. 참가팀 목록
3. 조별 리그
조별 리그는 A조와 B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원래 추첨 이후, 알리야트 알-쇼르타는 예정된 상대인 마카비 텔 아비브와의 경기를 거부하여 두 번째 추첨이 진행되었다.
A조에서는 이란의 타지 테헤란과 대한민국의 ROK 육군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고, 쿠웨이트의 알아라비와 말레이시아의 페락 FA는 각각 3, 4위를 기록했다.
B조에서는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와 이라크의 알쇼르타가 준결승에 진출했고, 태국의 방콕은행 FC와 인도의 펀자브 폴리스는 탈락했다.
3.1. A조
تاج تهران페르시아어과 육군 축구단이 준결승에 진출했다.
3.1.1. A조 경기 결과
3.2. B조
B조에서는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와 이라크의 알쇼르타가 준결승에 진출했다. 알쇼르타는 정치적인 이유로 마카비 텔아비브와의 경기를 거부하여 몰수패(3-0) 처리되었다. 조별 리그에서는 태국의 방콕은행 FC와 인도의 펀자브 폴리스도 참여했지만, 각각 3위와 4위로 탈락했다.
3.2.1. B조 경기 결과
B조는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와 이라크의 알쇼르타가 4강에 진출했다. 태국의 방콕은행 FC와 인도의 펀자브 폴리스는 탈락했다. 알쇼르타는 정치적인 이유로 마카비 텔아비브와의 경기를 거부했다.
4. 결선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승리한 마카비 텔아비브와 알쇼르타가 결승에 진출했다. 3-4위전에서는 타지 테헤란이 ROK 육군을 3-2로 꺾었다. 결승전은 알쇼르타가 정치적인 이유로 마카비 텔아비브와의 경기를 거부하여 마카비 텔아비브가 부전승으로 우승하였다.
4.1. 준결승전
1971년 3월 31일, 태국 방콕의 국립 경기장에서 두 경기가 열렸다.
* 마카비 텔아비브는 ROK 육군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었다. 게르비가 29분과 63분에 골을 기록했다.
* 알리야트 알 쇼르타는 타지 테헤란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었다. 후세인이 6분에, 이스마일이 81분에 골을 기록했다. 이 경기는 12,000명의 관중이 참석했다.
4.2. 3-4위전
1971년 4월 2일, 이란의 타지 테헤란تاج تهران페르시아어과 대한민국 국군 축구단 간의 3-4위전 경기가 방콕 국립 경기장에서 열렸다. 경기 결과는 타지 테헤란이 3-2로 승리하였다. 타지 테헤란의 하지카셈علیرضا حاجقاسم페르시아어은 전반 19분에 선제골을, 마즐루미غلامحسین مظلومی페르시아어는 후반 57분에 추가골을, 자바리علی جباری페르시아어는 후반 80분에 쐐기골을 넣었다. 대한민국 국군 축구단의 정규풍은 후반 63분, 임태주는 후반 87분에 골을 넣었으나,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경기에는 3,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4.3.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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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2일, 태국 방콕의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은 이라크의 알쇼르타가 정치적인 이유로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와의 경기를 거부하여 기권승으로 처리되었고, 마카비 텔아비브가 우승을 차지했다.
5.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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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비 텔아비브의 2번째 우승이다.